중국집 옆 원룸의 추억

by 서성우

난생처음 바퀴벌레

주인집에서의 하숙을 끝내고 원래 계약한 1층 집으로 왔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 주인집에서 잘해주셨지만 남의 집에 사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얼마 없는 짐을 싸들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집으로 왔다. 하지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보였던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집 곳곳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벽에도 바닥에도 화장실에도 온통 바퀴벌레판이었다. 난생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었기에 더 당황했다. 바퀴벌레가 나를 공격하지도 않는데 덩치가 2만배는 더 큰 180cm의 남자는 방 문 앞에서 얼어버렸다. 타이밍을 보고 바퀴벌레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타 순간적으로 집을 뛰처나왔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트에서 뿌리는 바퀴벌레 약 두 통을 샀다. 도저히 한 통으로는 안될 양이었다. 내 당황한 마음을 가득 담아 강렬한 약으로 바퀴벌레를 퇴치하기 시작했다. 쳐다볼 때는 천천히 움직이던 놈들이 약을 뿌리니까 속도가 빨라졌다. 혹시 나한테 올까 무서워 약 두 통을 양 손에 붙잡고 한 번에 분사했다.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죽여주는 게 바퀴벌레에 대한 나름의 예의였다. 약에 빠져 바퀴벌레들이 죽어갔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니 집은 바퀴벌레의 시체들과 바퀴벌레 약 냄새로 가득했다. 이곳이 앞으로 여수에서 내가 살 집이었다.


20170912_221012.jpg 어딘가 바퀴벌레가 있을 수도 있다!


사실 계약하기 전에는 바퀴벌레가 있을 줄 몰랐다. 가구를 치우니 바퀴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자세히 살필 걸. 이런 순간이 오면 지나갔던 엄마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여기 별론데."

내가 큰 집을 원했기 때문에 20평에 가까운 크기의 통 원룸이 눈에 띄었다. 입사까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덜컥 1층 원룸으로 결정했다. 바퀴벌레를 다 해치우고 나니 그때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이 집에는 바퀴벌레가 이렇게 많을 걸까. 이 바퀴벌레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할 수 있다. 순간 세스코 직원의 마음으로 바퀴벌레의 습성과 이동경로를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들과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20170912_221020.jpg 창문 너머 중국집 주방이 있었다


집 옆에 바로 중국집이 있었다. 우리 집과 중국집 주방과 부엌이 마주 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기름 가득한 요리를 하고 찌꺼기 가득한 설거지를 했다. 그런 환경이 옆에 있으니 바퀴벌레들이 살기 적합할 수밖에 없다. 이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주택가에 바퀴벌레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구글에 검색해봤다. 중국집 근처에 살았던 다수의 경험담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바퀴벌레 때문에 고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집뿐만 아니라 기름으로 요리하는 치킨집, 고깃집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점과 마주하고 있는 구조의 원룸은 음식점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퀴벌레뿐만 아니다. 냄새가 났다. 기름 가득한 중국요리 냄새와 주방의 설거지가 쌓인 물 냄새가 섞여 냄새의 대환장 파티가 벌어졌다. 여름에 창문도 못 열어놓는다. 다행히 당시는 겨울이었지만 겨울에도 문을 열 수 없었다. 여는 순간 집은 바로 중국집 주방으로 변했다. 집에 환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는 사람에게 치명적이었다.


20170926_233721.jpg 간단한 임시거처 느낌



나는 왜 집 옆에 중국음식점이 있는지도 몰랐을까. 집을 계약할 때는 최소한 주변에 뭐가 있는지는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뭐에 홀려서 중국집 옆 1층 원룸을 계약한 걸까. 나는 이미 저질러버린 실수를 다시 복기하면서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습성이 있다. 시행착오를 꼭 내가 느껴보려는 변태적인 습성이다. 인터넷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이미 해본 일을 공유하고 그 정보를 원하는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지식백과사전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으로 모든 걸 직접 깨져보고 정보로 얻는다. 그 때는 '경험'이라는 단어로 하지 않아도 될 고생과 그로 인해 얻는 정보를 퉁처버린다.


주변을 살펴보지 않을 정도로 이 집을 마음에 들어했던 이유는 단지 스타벅스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 신호등 두 개를 건너면 초록빛깔의 커피 가게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겨우 그 이유였다. 창문만 열어도 중국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보지 않고 집을 계약한 것이. 스타벅스가 뭐라고.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방을 얻을 때면 항상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작은 도시에서 부모님과 자식이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대도시가 주는 위압감에 부모와 자식은 한 껏 위축돼있다. 고향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보증금과 월세는 대도시의 위용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경제적 형편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지 하나 옥탑방, 아니면 작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북향의 1층 집을 구한다. 그런 집에 자식을 두고 가는 부모의 마음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런 부모를 보는 자식의 마음도 복잡하다. 둘의 복잡한 심경이 얽히는 공간은 평소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에 자식을 혼자 두고 가면서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는 공간이다. 맛있는 것을 먹지만 자식은 마냥 편하게만 음식을 먹지 못한다. 복잡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주저리 이야기를 해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로 이 순간을 밀어내고 있을 뿐이다. 서울로 자식을 보내는 보통의 이야기가 이렇다.


그럼 정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서울에서 작은 도시로 자식을 보내는 상황의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을 얻는 상황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부모와 자식이 떨어지는 상황은 어디서나 아쉬운 일이겠지만 지역에서 서울로 보내는 마음과 서울에서 지역으로 보내는 마음은 미세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27년을 서울에 살다가 전라남도 여수로 방을 구하러 오던 2017년 여름의 기억은 뜨거웠던 여름 햇살만큼이나 강렬하게 남아있다.


엄마랑 어딘가로 버스를 타고 단 둘이 간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정말 어렸을 때, 혼자 버스를 탈 수 없었을 때를 제외하고 다 커서 엄마와 둘이 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 고속버스가 아니라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도 포함해서다. 주부인 엄마는 집에 있거나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있는 모습만 생각난다. 엄마가 서울 어딘가에서 쇼핑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람, 엄마는 둥지를 지키는 사람, 그 정도로 엄마를 인식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랑 지하철을 타고 강남 고속터미널까지 가고 고속버스에 나란히 앉아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상황이 굉장히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엄마랑 어딘가를 간다는 게 좋으면서도 착잡했다. 버스 타고 4시간 15분이 걸리는 남쪽 끝 여수에는 나 혼자 남고 엄마는 다시 구리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의 처음인 여행의 끝이 이별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고 착잡했다.


4시간을 달려 여수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를 나서자 다가오는 공기에는 조금의 바다내음이 섞여있는 듯했다. 실제로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느낌은 감상에 젖은 이주민의 심경이 아니었을 거다. 엄마는 바다와는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논산에서 나고자란 엄마는 바다보다는 산과 들에 친숙했다. 그래서 여수에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간장게장은 눈에 붉을 켜고 먹는 걸 보면 사람은 참 입체적인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여수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방을 구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도 먹고 저녁에는 바다를 보면서 소주도 한 잔 하자는 계획을 짰다. 여수에서 하루 밤 자고 구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회사가 있는 문수동 근처의 부동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책 없는 모자이긴 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우선 여수mbc 근처로 가달라고 했다. 가면서 택시 기사님에게 "이 동네는 여기 어디가 살기가 좋아요?" "괜찮은 부동산 아시는 데 있으세요?"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길거리 민심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인터넷으로 괜찮은 동네를 선택하고 그 근처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매물들을 파악하고 여수에 가서는 집을 보러 가기만 할 수 있게 준비를 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여수에 도착해서 그 작업을 하려니 처음부터 앞이 깜깜했다. 스스로가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고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손에 패 하나 안 쥐고서 만만찮은 부동산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건 무모했다. 엄마가 구리 부동산계에서 숨은 고수였기 때문에 엄마만 믿고 있었던 나의 잘못이었다.


택시 기사분이 추천해준 원룸촌에 갔다. 어느 도시에 가든 볼 수 있는 회색깔 대리석으로 마감을 한 원룸 건물들이 가득한 동네였다. 그래 이 정도 동네면 깔끔하고 괜찮네 싶었다. 우리가 찾는 매물은 적당한 크기의 1.5룸이었고 계약 조건은 무조건 전세였다. "뭐하러 월세를 내고 사냐"며 전세를 신봉했던 엄마였기 때문에 거대한 월세의 숲에서 전세라는 보석을 찾아내야 했다. 우리는 또다시 원시적인 방법으로 원룸 건물에 붙어있는 '임대문의' 표시를 보고 전화를 걸어 일일이 매물을 확인했다. 방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전세 매물은 없고 월세만 받는 집주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건이 안 맞으니 이 많은 원룸 건물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8월 한 여름에 걸어 다니면서 매물을 확인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엄마랑 나는 그래도 처음 여수에 오는 거니까 나름 격식을 차리고 집을 구하러 다녔다. 나는 긴 바지에 셔츠를 입고 엄마는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었다. 한 여름 태양볓에 우리는 불과 한 시간 만에 녹초가 돼버렸다. 더운 것은 둘째고 원룸 전세 매물이 아예 없으니 이대로 돌아다니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이대로라면 집 한 번 못 보고 다시 구리로 가야 할 판이었다.


부동산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물건을 구하는 사람이 해야 할 수고를 부동산에서 해주기 때문이다. 바닥부터 매물을 찾아다녔던 우리는 동네를 잘 알고 매물도 가지고 있는 부동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여수로 직장을 구해서 왔고 여수mbc 근처에 있는 원룸 전세를 찾고 있다는 조건을 말했다. 처음 갔던 부동산에서는 원룸 전세가 귀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서울에서나 원룸 전세가 귀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수에서도 원룸 전세는 귀한 존재였다.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생리로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만 치열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지역에서도 각자의 치열함으로 도시는 움직이고 있었다.


직접 들어가 본 원룸


회사 근처에 있는 부동산은 거의 다 돌아다녔다. 귀했지만 몇 개 있었던 원룸 전세 매물도 봤다. 어느 곳은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마트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네가 조금 삭막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동네는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곳은 상가를 개조해서 원룸형으로 만든 곳이었다. 집은 널찍하고 좋았지만 엄마가 상가 안에 있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임대형 아파트에 가봤다. 여수에는 부영아파트가 많은데 대부분 부영에서 소유하면서 세입자에게 임대금을 받는 형식이었다. 아파트인데도 전세금이 저렴했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임대아파트라는 게 주인이 없는 아파트다 보니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안돼 있었다. 95년도에 지어졌는데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흘러 보였다. 낡은 복도식 아파트를 걸어가며 엄마는 말했다. "다른 데 가자. 여기에는 너 두고 못 가겠다." 나도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책 없이 부딪혔던 집 구하기는 부동산도 닫을 시간이 되면서 성과 없이 끝났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오늘처럼 했다가는 내일도 못 구할 것 같아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했다. 스마트폰으로 가볼만한 부동산을 정했고 내일 아침에 전화로 다 돌려보기로 했다. 너무 더웠으니까 갈아입을 반바지와 반팔을 사러 유니클로를 들렀다 왔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허름한 달방 같은 모텔을 잡았다. 8월은 하필 극성수기여서 관광지인 여수에서는 방을 구하려면 돈을 많이 줘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4만 5천 원짜리 모텔을 잡았다. 침대도 없이 이불을 깔고 자는, 말 그대로 노동자들이 달방으로 얻어서 쓰고 나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엄마와 처음 보내는 여행 아닌 여행을 보내기로 했다.


숙소에서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저녁도 거른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여수에 대해 하나도 몰랐기에 제일 유명하다는 '낭만포차'에 갔다. 역시 극성수기의 여수는 기다리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 20곳 정도 되는 포차에 거의다 줄이 있었다. 원래라면 기다리기 싫어하는 나나 엄마는 다른 곳에 가서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은 그러기 싫었다. 기다려서라도 남들이 하는 좋은 거 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집은 못 구했지만 우리가 나쁜 이유 때문에 여수에 온 건 아녔으니까 오늘을 좋은 날로 만들고 싶었다. 줄이 빠지고 우리 차례가 와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삼겹살과 해물, 김치를 한 데 놓고 볶아먹는 해물 삼합을 시키고 엄마가 좋아해서 무려 계모임 이름이 '이슬'일 정도인 소주 한 병도 빠트리지 않았다. 엄마랑 이렇게 술을 놓고 마주 보고 있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가족끼리는 그래도 종종 마시는데 엄마랑 둘이 마주 보며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성인이 된 지도 7년이 지났는데 왜 부모님이랑 둘이 술을 마실 생각을 안 해봤을까. 친구와 선배와 마셨던 술과 쏟았던 시간을 부모님과도 보냈으면 어땠을까. 여수에 직장을 얻어 혼자 살게 되면서 새삼 부모님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같이 살면서 공기처럼 느꼈던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인간은 참 간사하게도 항상 옆에 있는 존재는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른다. 그래서 부모가 떠나고 나서 후회한다. 나도 여수에 혼자 떨어져 살지 않았다면 평생 부모님은 공기처럼 존재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님이 늙어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항상 있었던 공기가 사라진 느낌을 느낄 것이다. 공기가 사라진 채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 부모님의 존재를 직면할 수 있게 돼서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낭만포차에서 먹은 해물삼합과 소주


"아들이랑 이렇게 소주 마시니까 좋다."

엄마도 아들과 처음 술을 마시는 이 순간을 기뻐했다. 아들이 원하던 일을 하게 됐고 그 순간에 함께 여수에서 바다를 보며 술을 먹고 있는 게 엄마는 좋다고 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나도 엄마에게 그런 순간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 삼겹살과 해물, 김치를 같이 볶은 해물 삼합은 뭘 볶아도 맛없을 수 없는 고기와 해물에 푹 익은 김치까지 곁들이니 상상 가능한 맛있는 맛이었다. 마치 아무리 집 구하기가 힘들었더라도 엄마랑 같이 처음 여행 비슷한 걸 왔고 직장도 구했으니 이 행복한 조합을 망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바다를 보며 시원한 소주를 마시니 절로 낭만스러웠다. 이 순간만큼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낭만을 맘껏 즐겼다.




다음 날 원룸을 구했다. 엄마는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나마 여기가 낫겠다 싶었다. 우선 방이 컸다. 18평 정도 됐다. 1층에 그 방이 그곳 하나만 있어서 넓었다. 서울에서 고시원 살 때 좁은 집에 사는 게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있어서 강박적으로 큰 집을 찾았다. 그리고 집 근처에 스타벅스도 있었다. 문제의 그 스타벅스, 나는 그 초록빛깔에 홀려버렸다.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가면 영어를 모국어처럼 느낀다. 태국어나 베트남어는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낯선 해외에서 그 낯섦이 가끔 버거워질 때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가 안식처처럼 느껴진다. 태국 카오산로드에 있는 맥도날드나 한국의 동네에 있는 맥도날드의 매장 인테리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맥도날드 마스코트가 서있고 메뉴판에는 익숙한 빅맥이 있다. 그래서 타국의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먹고 있을 때면 쿰쿰한 시장 포장마차의 똠양꿍에서 오는 낯선 충격이 아니라 한국 동네에서 친구랑 먹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일관성이 낯선 환경에 있는 개인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원룸과 가까이 있던 스타벅스도 해외여행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을 덜 수 있는 안식처같은 곳이었다. 스타벅스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든 데이트를 하든 편하게 언제든 쉬러 갔던 휴식의 플랫폼이었다. 여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도 서울에서 하던 습관을 지켜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스타벅스가 가까이있다는 사실은 여수라는 공간에서 겪을 낯선 충격을 완화해줄 연착륙으로 다가왔다. 태국의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맥도날드와 난생 처음 살게 된 여수에서의 스타벅스는 나라는 사람이 가진 일관성을 유지해줄 장치였다. 그래서 스타벅스만을 보고 홀린 듯이 집을 선택했다. 그 결정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룸 계약을 하고 구리로 돌아가기 전에 김가네에서 밥을 먹었다. 떡볶이와 볶음밥을 시켰다. 힘들었던 일정이 우리를 녹초로 만들었다. 크게 이야기 없이 밥을 먹었다. '여기서 잘 살아', '전화 자주 하고', '밥 잘 챙겨 먹어' 같은 말들을 엄마는 생각했을지라도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김가네가 집 근처에 있으니까 밥 해 먹기 귀찮을 때 나와서 사 먹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나 역시 이곳이 좋은 점들을 열심히 포장했다. 길만 건너면 스타벅스가 있으니까 시간 있을 때 스타벅스에 가서 공부하면 되겠다고 서울에서도 자주 그렇게 했으니까 여기서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집도 크고 회사도 가까워서 집을 잘 구했다고 만족해하면서 말이다.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살게 되는 그 순간의 묘한 감정은 서울이든 지역이든 마찬가인 것 같다. 다만 부모님은 지역에서 서울로 보낼 때보다는 걱정을 덜한 것 같았다. 심심하더라도 위험한 것 없어 보이니까. 바다도 근처에 있으니까 바다도 맘 껏 보면서 살면 되니까. 그에 비해 지역에 남게 될 나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느라 혼났다. 아무리 스타벅스가 있더라도 여기서 나 혼자 뭘 하면서 살까. 생활의 모든 것이 바뀌는데 추가되는 것보다 없어지는 게 더 많아지는 이 상황이 너무도 막막했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자식을 보내는 건 그래서 부모님의 걱정은 덜하지만 자식은 '여기서 어떻게 살 지'에 대한 걱정이 많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식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자식과 부모로서의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도 같다. 자식은 부모의 존재를 느끼면서 부모에게 자식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부모 역시 자식을 키우고 보호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 인격체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건 둘 다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건 서울로 가든 지역으로 가든 마찬가지다. 27살이 돼서 멀리 떨어져 살게 된 나는 이제야 부모로부터 독립을 했다.




이사오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는 없었다. 대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바퀴벌레를 차단하고 환기는 포기하며 사는 수밖에. 바퀴벌레를 먼저 잡기로 했다. 큰 마트와 다이소에서 바퀴벌레와 관련된 약은 다 사 왔다. 붙여놓는 약을 곳곳에 놓고 스프레이를 구멍이란 구멍에는 주기적으로 뿌렸다. 창틈, 문틈은 스티커형 방충망으로 모조리 막았다. 이 정도면 바퀴벌레가 올라올 통로를 차단했고 설령 오더라도 약에 취해 얼씬도 못하게 했다. 어차피 살아야 할 공간이니 최선을 다해 환경을 정비하기로 했다. 바퀴벌레를 차단한 곳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고 내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도 며칠간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환기 빼고는 그럭저럭 살아갈만하겠다 싶었다.


'바퀴 모닝'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맡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기분이 확 상했다. 그렇게 약품 처리를 했는데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일어나자마자 바퀴벌레가 문안 인사를 하고 있다. 스프레이형 약으로 바퀴벌레를 처단했다. 아침부터 바퀴벌레를 보니 잠이 확 깼다. 잠은 확실하게 잘 깨워준다. 모닝콜 기계로 바퀴벌레 모형을 만들면 지각할 일은 없겠다.


20171212_074926.jpg 같은 건물 2층으로 이사했다

내가 포기했다. 같은 건물 2층으로 이사 갔다. 마침 2층 집이 이사를 가는 타이밍과 조건이 맞았다. 중국집과 마주 보지 않은 반대 방향의 2층이었다. 집은 1층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바퀴벌레 걱정은 안 할 수 있게 됐다. 혹시나 몰라 바퀴벌레가 있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없었다. 잔뜩 사놓은 바퀴벌레 약들은 구석에 모셔두었다.


여수라는 낯선 도시에서 첫 한 달은 바퀴벌레로 기억됐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서 집마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없었으니 정말 고통스러웠다. 앞으로 이사를 갈 때는 꼭 주변 환경을 많이 확인하기로 했다. 천천히 여러 번 가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봐서 의견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집은 너무도 중요한 공간이기에 쉽게 선택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생각보다 자주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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