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콘텐츠 없는 지역 축제

by 서성우

축제와 해물파전

나에게 지역 축제는 시끄러운 공연 소리와 해물파전의 냄새로 기억된다. 무대의 스피커 소리는 이곳이 축제라는 걸 알리려 애쓰는 것처럼 축제 장소에 가기 전부터 공중을 떠다녔다. 무대에선 어르신들이 구수한 옛 노래를 부르시거나 아직 부끄러움을 학습하지 못한 아이들이 흑역사가 될 요상한 아이돌 무대를 하고 있었다. 축제의 메인은 무대도 아니고 음식이었다. 특히 빨간 천막에서 통돼지 바베큐가 돌고 있지 않으면 그건 축제 위원장이 순찰을 해보고 "왜 통돼지 바베큐가 없죠?"라고 실무자를 혼낼 수 도 있다. 내가 지역 축제에 갔던 이유도 부모님이 주점에서 막걸리와 파전, 수육을 먹으러 가면서 나를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왜 통돼지 바베큐는 안 먹냐고 부모님에게 물어봤지만 통돼지 바베큐는 모양만 맛있어 보이지 맛은 없다는 핑계로 시켜주지 않았다. 상에 있는 것 중에 먹을만한 건 해물파전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안주 킬러가 되어 해물파전을 해치워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불효 막심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막걸리는 마시는데 해물파전을 없애버리다니. 부모님 집에 가면서 해물파전을 사 가야겠다.


지역에는 정말 많은 축제가 있다. 굴, 마늘, 고추, 사과 등 지역 특산물 이름을 건 축제부터 불고기, 곱창, 치맥 같은 먹거리 축제까지, 지역의 모든 것이 축제의 이름이 된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시끄러운 공연 소음과 기름진 해물파전 냄새뿐이었다.


숯불구이 없는

광양 숯불구이축제

광양축제.jpg 광양숯불구이 축제 모습

피디로 입사하고 고대하던 첫 촬영을 나가게 됐다. 파업이 한창이었지만 파업 이전에 계약했던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입사하고 한 달 동안 회사에만 있었더니 첫 촬영이 설렜다. 촬영은 광양에서 하는 숯불구이축제였다. 전남 동부지역으로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지역을 잘 몰랐지만 광양이 숯불구이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축제를 촬영해 광양 불고기를 더 알리는 방송이겠거니 싶었다. 방송을 통해 광양시에 관광객이 늘어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불고기 거리 상권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 지역 방송사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촬영이었지만 규모가 컸다. 고속버스만 한 방송중계차량이 여수에서 광양까지 움직였다. 카메라팀, 기술팀, 광고, 경영 파트까지 거의 회사 전체가 움직였다. 카메라 9대에 지미집까지 왔다. 중계차에 들어와 9대가 다 보이는 모니터를 보니 그럴싸해 보였다.


17-09-22-18-54-55-694_photo.jpg 중계차 안의 모습


지역 축제의 메인

트로트 공연

'뭔가 잘못됐는데?' 첫 촬영의 느낌이었다. 축제는 함께 즐기는 것이다. 무언가를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이 직접 축제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다른 누군가 만든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공간이다. 하지만 광양숯불고기축제는 소비의 공간이었다. 축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졌다. 우리가 촬영한 축하공연 무대와 음식과 즐길 거리가 있는 부스로 구분됐다. 공연은 공연대로 부스는 부스대로 따로국밥이었다. 부스에 있는 사람들은 공연이 시작돼도 공연장으로 내려오지 않고 부스에서 노래를 들었다. 공연장이 썰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축제의 메인은 트로트 가수의 공연이었다. 지자체에서는 공연에 유명한 가수들을 내걸어 시민들을 불러 모으려고 한다. 방송국까지 붙어 촬영을 나오면 공연에 무게가 더 실렸다. 하지만 우리가 촬영한 프로그램은 그냥 트로트 공연을 촬영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름만 숯불구이축제 축하 방송이지 숯불구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물론 방송사는 정해진 형식대로 찍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축제 공연 촬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3~40년 동안 진행돼 온 관습이다. 방송국 스테프 모두 익숙한 듯 공연을 촬영하고 방송했다.


트로트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가수들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불고기와 관련된 얘기를 했다.

"광양 불고기 많이 드셨나요~"

"저도 공연 끝나고 먹을 거예요~"

노래를 2~3곡 부르고 가수는 무대에서 내려갔다. 트로트 가수들의 공연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느덧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무게감 있는 가수가 올라왔다. 그 가수의 공연이 절정에 다다를 때 폭죽이 터졌다. 그렇게 첫 촬영이 끝났다.


축제에 콘텐츠가 없다

축제 부스의 콘텐츠도 빈약했다. 광양숯불구이축제인데 숯불구이를 콘텐츠로 즐길 게 없었다. 여전히 타지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는 나로서 광양의 숯불구이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이번 축제만으로는 알 길이 없었다. 혹시 알고 싶으면 거리에 늘어선 숯불구이 식당에 들어가서 먹었어야 했으려나? 아무튼 직접 식당에 가지 않아도 명색이 숯불구이를 내걸고 축제를 하는데 숯불구이의 존재감이 약했다. 부스에서 뜨악한 점은 지자체에서 홍보하고 싶은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광양에서 드론에 관심이 많은지 부스에는 드론 체험존이 있었다. 숯불구이축제에서 왜 드론을 체험해야 하는 걸까. 광양을 대표하는 매실도 있었다. 아무리 대표상품이라도 숯불구이도 설자리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숯불구이축제의 부스는 다이소의 진열대처럼 잡다한 것들이 늘어져있었다.


숯불구이를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광양의 숯불구이가 왜 유명한지 홍보하려면 제조 방법에서 차이를 보여주면 된다. '숯불구이 직접 만들어보기'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광양 숯불구이의 장점을 알 수 있다. 직접 체험해보는 장점이다. '숯불구이 요리 대회' '숯불구이 빨리 먹기' '숯불구이 많이 먹기' 조금 엽기적인 콘텐츠지만 어떻게든 숯불구이를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축제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숯불구이를 접근해야 체험한 사람이 숯불구이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가 생길 것이다. 광양 사람들도 '숯불구이 너무 비싸고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다'라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축제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해야 한다. 광양의 콘텐츠인 숯불구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대로 가면 지역 사람들은 지역 축제를 더 외면할 수밖에 없다. 트로트 공연을 보려고 축제에 가는 수고로움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지 않았다. 게다가 부스에서도 즐길 거리는 부족했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 축제에 참여할 공간이 없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저 지역 축제를 소비하는 수동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비해야 할 콘텐츠조차 가치가 없다면 지역 축제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지역 축제는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고흥 해창만 캠핑 페스티벌

군수와 함께 춤을

축제는 주로 주말에 열린다. 수습사원이었던 나는 주말에 열리는 행사에 반드시 가야 했다. '국장님 주말에 결혼식이 있어서요.' 같은 이유는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다음 축제로 고흥에 있는 해창만으로 향했다.


축제는 고흥 해창만 캠핑 페스티벌이었다. 고흥 해창만은 간척을 한 토지였다. 광활한 토지에서 매년 엄청난 쌀이 나오는 곳이었다. 해창만 한편에 오토캠핑장을 조성해놨다. 주말이면 순천이나 여수에 사는 가족들이 이곳에 많이 찾아왔다. 축제는 캠핑장을 찾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콘텐츠였다. 마치 가평 자라섬에서 하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같다고 할까? 그런 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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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만 캠핑 페스티벌은 전형적인 지역 축제 모습이었다. 축제 중앙에 무대가 마련돼있고 그 주변을 먹거리 부스가 감싸고 있었다. 그마저도 캠핑을 온 사람들은 되레 시끄러운 주변이 싫어서 무대에서 더 멀리 떨어지려 했다. 사실 캠핑은 조용히 힐링하러 오는 욕구가 강한 행위이다. 그런 장소 주변에 시끄러운 공연을 하면 캠퍼들이 오히려 방해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해창만 축제의 메인은 군수의 무대였다. 고흥군수가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고흥군민 그리고 관광객 여러분 해창만 많이 찾아주시고 즐겨주세요."

의레하는 기념사 정도였다. 그러다 군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한 곡 불러주겠다고 했다. 즉흥적이어서 무대에서는 준비가 안됐다. 일단 내려와서 곡을 준비했다. 국장님이 군수를 보필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나는 군수에게 노래 가사를 보여주며 박자를 알려줬다. MR을 틀어주며 박자를 맞췄고 언제 무대로 올라가라는 사인을 줬다. 당시에는 국장님이 시키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군수에게 가사를 보여주고 박자를 맞춰줬다. 돌아오는 길에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PD가 된다고 했나.


고흥군수가 무대에 올라 열창을 했던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축제는 지역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정치인이 얼굴 보여주러 온다고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야 페이스북 유튜브로 주민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매체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지역 축제는 정치인들에게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장이었을 것이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

지역 정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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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봄이 됐다. 나는 수습사원에서 벗어났고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의 운명은 어떤 행사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번에는 여수 영취산 진달래 축제로 갔다.


영취산 진달래 축제는 규모가 남달랐다. 다른 것보다 정치인들이 엄청나게 왔다. 지역 국회의원부터 시장, 시의회 의장까지 지역 거물급 정치인들은 다 왔다. 거기다 시의회 의원, 동대표, 체육회, 부녀회, 노인회 등등 지역의 모든 장이라면 장이 다 나왔다. 객석 맨 앞부터 3줄까지는 전부 내빈이었다. 관객보다 내빈이 더 많아 보이는 진귀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니 무슨 정치인들이 이렇게 많이 와요?"

알고 지내는 사이였던 MC에게 물었다. 원래 축제에 정치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거냐고. MC형의 대답이 재밌었다.

"축제 사회가 제일 편해. 30분 동안 내빈 소개만 하다가 끝나거든. 이러고 돈 받고 가면 아주 기분이 좋아."

내빈 소개만 30분이라니. 이건 축제인가 선거장인가. 지역당의 예비 위원장이 될 사람들이 서로 견제하는 공간이었다.


20171021_162235.jpg 테이프가 붙어있는 자리가 모두 내빈석이다


영취산 진달래 축제의 조직위원장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했다. 지역 축제에도 지역위원장이 있었나 싶었다. 파전 파는 주점과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밖에 없는데 무엇을 기획한 건지 궁금했다. 조직위원장은 무대에서 이 축제를 위해 힘써준 시장과 국회의원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그제야 축제의 원리를 깨달았다. 지역축제위원장들이 정치인들을 위한 자리를 깔아주고 본인도 정치 무대로 들어갈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도 언젠가 정치를 하겠구나 생각했다. 이런 구조로 지역 축제는 기획되고 유지됐다.


일본 삿포로 축제

지역 사람들의 공간

DSC_0274.JPG 일본 삿포로

일본은 축제 강국이다. 중학생 때 일본어 시간에 배운 것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게 있다. 바로 '마츠리(まつり)'다. 축제라는 뜻의 마츠리는 일본 전역에서 열렸고 지역 사람들이 참여하는 마을 축제라고 배웠다. 마츠리를 배우면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을에서 지역 사람들이 모두 나와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는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지역의 끈끈함을 느낄 수 있는 마츠리를 상상하면 일본어 시간이 기대됐다.


2017년 여름, 일본 삿포로에 혼자 여행을 갔다. 8일이라는 시간 동안 삿포로에 있으면서 2개의 축제를 볼 수 있었다. 삿포로 눈 축제가 열리는 겨울도 아닌 여름에도 축제가 꽤나 열렸다. 역시 축제의 국가 다웠다. 축제의 수뿐만 아니라 축제가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홋카이도 대학 축제

삿포로 여행은 전혀 계획 없이 갔다. 인턴이 끝난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끊었고 그다음 날 삿포로로 떠났다. 그래서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니까 여름 날씨가 시원한 삿포로를 걸어 다니면서 생각이나 정리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입구에서 시끌벅적한 인파가 보였다. 궁금해서 가보니 홋카이도 대학교에서 축제를 하고 있었다.


캠퍼스가 정말 고즈넉했다. 넓은 평지에 잔디의 푸르름이 대학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드넓은 녹지 공간에서 지역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대학 축제를 보러 왔다. 아이, 노인, 직장인, 연인들이 축제에서 어우러졌다.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었고 축제의 모든 콘텐츠들은 학생들이 만들었다.


DSC_0265.JPG 홋카이도 대학 축제 모습

축제 부스에서 홋카이도 대학생들이 음식을 만들고 체험 콘텐츠를 진행했다. 부스의 콘셉트와 요리는 모두 학생들이 정했다. 가지각색의 부스들이 즐비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꼬치를 구웠고 야끼소바를 만들었고 금붕어 잡기 게임을 진행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야끼소바를 먹었다. 3500원 정도였는데 맛도 꽤 있었다. 그 야끼소바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이 저마다 특색으로 운영하는 부스는 홋카이도 대학 축제를 즐기는 중요한 요소였다.

DSC_0300.JPG 축제에서 산 야키소바


DSC_0246.JPG 꼬치를 굽는 홋카이도 대학생들


부스 한 편으로 공연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이 아니다. 학생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요란한 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김수로의 꼭짓점 댄스처럼 단체 군무 형식이었다. 축제의 기합을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재밌는 건 다양한 학생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외국인 유학생부터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공연의 기합 그 자체로 학생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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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람들은 학생들의 기운을 받아 같이 뛰어놀았다.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형식이 아니라 같이 기합을 넣었다. 그러다 학생들이 객석으로 뛰쳐나와 사람들과 함께 춤을 췄다. 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아이들은 대학생 형 누나들이랑 같이 뛰어놀았다. 그런 광경을 어르신들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방인으로서 현장에 있던 내가 느꼈던 감정은 흐뭇함이었다.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는 광경은 사회의 안정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도 지역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두렵고 낯선 감정이 덜하기 때문이다. 지역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그래서 지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부족한 도시 지역은 그래서 부족한 신뢰 관계를 보안 기술로 보완하는 것이다.


DSC_0297.JPG 고등학생들과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
DSC_0371.JPG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대학생들


요사코이 소란 축제

삿포로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 삿포로 시내가 심상치 않았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삿포로 오도리 공원으로 향했다. 이들을 따라 가보니 거대한 축제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사코이 소란 축제였다.

1992년, 고치현의 ‘요사코이 축제’에 홋카이도 민요 ‘소란 타령’을 접목시켜 탄생했습니다. 홋카이도, 일본 전국, 그리고 해외에서 참가한 약 270팀(약 3만 명)의 춤꾼들이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고 개성 넘치는 연무를 선보입니다. (출처 : 홋카이도 관광 홈페이지)
DSC_0256.JPG 요사코이 소란 축제

요사코이 소란 축제는 화려했다. 형형색색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타악기 소리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기합을 넣으며 무대 위의 에너지를 객석으로 뿜어냈다. 재밌는 건 무대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도 부모님을 따라 하며 무대 위에서 호흡했다. 너무 어린아이는 부모님이 안고서라도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는 팀이 270여 팀이라고 하니 삿포로의 동 단위로 팀을 만들어 나왔을 정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한 것이다.


객석에서 축제를 보며 솔직히 부러웠다. 지역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볼 수 있는 축제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여행자로서 일본 축제를 봤을 때 지역민들이 만들어내는 사회가 뿜어내는 힘을 느꼈다. 사람들이 곧 지역의 콘텐츠였다. 그러니 나같이 해외에서 축제를 보러 일본으로 여행을 오는 것이다. 지역의 색깔은 과거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역사 유적지나 자연환경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 자체가 지역의 색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지역 축제를 유대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지역색을 온전히 담아냈다. 그래서 일본은 지역 문화가 발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DSC_0218.JPG 무대에 오른 아이들
DSC_0237.JPG 에너지가 넘쳤던 무대


물론 일본이 무조건 옳다는 말은 아니다. 케이스 스터디의 함정은 우리와 다른 환경의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하려는 것이다. 역사와 환경이 다른 일본의 특성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축제라는 영역에서 봤을 때 일본 축제가 보여준 순기능을 우리 축제에서 보고 싶다. 트로트 공연과 정치인의 장인 지금의 지역 축제가 지역 사람들이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이 됐으면 한다. 지역 사람들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축제가 많아지면 지역의 특성이 그만큼 살아나고 지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지역 소멸의 위기가 팽배한 지금, 지역 축제의 순기능은 지역을 지킬 수 있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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