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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Aug 18. 2021

눈물의 워커힐호텔 고개

수도권 사람들의 애환

강변 테크노마트와 플레이스테이션2


서울로 돌아온지 4개월이 됐다. 구리 - 목동 한 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 한지도 이제 4개월이 됐다. 4개월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적응하는 기간으로 꽤 긴 시간에 속한다. 공부가 습관이 될 수 있고 끊었던 담배가 없는 게 익숙해질 수 있다. 그만큼 긴 시간이건만 왜 나는 아직도 이 출퇴근에 적응이 안되는 걸까.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다. 출퇴근을 오래 하다보면 어느 덧 날씨와 사람의 심리의 상관관계를 예측하는 눈이 생긴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오는 걸 확인한 누군가. 도저히 오늘은 버스에서 다른 사람의 살결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만의 공간에서 뽀송뽀송하게 회사로 출근하리라 마음 먹는다. 그렇게 너도나도 자차를 이끌고 도로로 나온다. 그 순간 도로는 자차의 행렬이 된다. 그걸 지켜보는 버스 안의 승객은 생각한다. ‘비가 안왔으면 좋겠다.’


버스는 꾸역꾸역 워커힐호텔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좌로 한 번 우로 한 반 꺽여있는 왕복 4차선 커브길에 많은 차들이 갖혀 있다. 커브길 끝에 있는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들은 슬그머니 움직였고 다시 신호등이 빨간불이 되면 슬그머니 멈췄다. 좌로 우로 꺾인 이 커브길에서 출근길 차들은 더 답답하게 멈춰있었고 서울로 출근해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답답하게 굳어갔다. 1분, 2분 시간이 지체될 수록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그만큼 아슬아슬할테니까. 처음 회사에 도착해서 어떻게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야할지 생각이 스치기도 할 거다. 워커힐고개는 고통과 번뇌,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뒤엉켜있은 곳이다. 눈물 없이는 건널 수 없는 수도권 시민의 통과의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중간고사 시험을 잘보면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준다는 엄마의 말에 통쾌하게 반 1등을 했다. 엄마는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기계를 잘 아는 셋째 이모부에게 부탁했다.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성우 데리고 플레이션(엄마는 한 번도 이 게임의 풀네임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다)사와줘.” 용팔이와 함께 2대 호갱님 소굴로 불렸던 강변 테크노마트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혼자 갔다가는 플레이스테이션2 풀패키지를 사올 수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불안감에 착한 이모부를 붙여줬다.

일요일 오후2시 강변역에서 이모부를 만나기로 했다. 강변역은 구리에서 버스 한 번이면 갈 수 있다. 지금은 길이 막히지 않으면 25분이면 가는 거리다. 구리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초등학교 6학년의 겜돌이는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그 때가 아마 중간고사 이후니까 5월이었던 것 같다. 나들이 차량이 가장 많은 시즌이다.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당시 인기가수였던 조성모기 산다던 한다리를 지나 박원서 선생님 사셨던 아치울을 넘어 버스는 워커힐 고개로 나아갔다. 아주 느린 걸음이었지만 버스는 수많은 나들이 차들 사이에서 힘을 내주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는 워커힐 고개에 올라섰다.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서울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면 차선도 넓어지니까 교통체증도 풀릴 수 있었다. 그러면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2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는 워커힐호텔 고개에서 멈춰섰다. 앞에서 신호등은 바뀌는 것 같은데 버스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버스는 뭐하는 걸까. 아까는 잘 가던 버스가 왜 못가는 걸까. 애타는 시간이 흘렀다. 이미 집을 떠난 시간은 1시간이 넘었다. 이모부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 역시 이미 훌쩍 넘겼다. 핸드폰도 없었던 나는 아마 옆자리에 계시던 어른에게 잠시 핸드폰을 빌려 이모부에게 전화했던 것 같다. 착한 이모부는 천천히 오라며 어린 나를 달래주셨다. 그런데 아침부터 신나서 마셔댔던 콜라가 몸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나는 이곳을 나갈 수 없다. 약속 시간에 늦은 답답함과 그 마음도 모르고 자기 혼자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콜라를 막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땀을 뻘뻘흘리며 워커힐 고개에서 홀로 전투를 벌였다.


집을 나선지 1시간 반만에 강변역에 도착했다. 이모부를 보자마자 울고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서울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테크노마트에서 플레이스테이션2 본체와 당시 제일 인기있었던 진삼국무쌍3 씨디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구리로 돌아오는 길을 막히지 않았다.

2002년 강변북로 구리 연결 경축식

어느날 티비를 봤다. “강변북로 새로운 구간이 개통됩니다. 기존 구간에서 구리시 토평동과 천호대고를 잇는 구간입니다.” 그 뉴스의 음성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 부모님도 강변북로가 구리까지 연결된다고 기뻐하며 얘기하셔서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그동안 서울 동부로 가는 길이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러갔던 그 길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막혔던 거구나. 수 십만 명이 서울로 가기 위한 선택지가 단 하나뿐이었던 거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아직도 출근길의 버스가 고통스럽다. 트라우마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구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구릉이 있다. 태조 이성계의 묘부터 여러 왕들의 무덤이 아홉 개나 있다.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릉’이라서 동구릉이라고 불린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못이 박히게 들었다. 유교 문화인 조선에서 초대 왕이 있는 무덤이 구리에 있다. 후대의 왕들은 선조들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 서울 중심에 있는 왕궁에서 친히 구리로 행차하셨을 것이다. 호위무사를 이끌고 마차를 끌고 워커힐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 왕족들이 행렬이 이어졌을 것이다. 왕이 행차했던 그 길 위로 수도권 시민들의 희로애락이 넘나든다. 선조를 모시는 경건한 마음으로 ‘제발 오늘도 이곳을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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