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서울로 출근하다
4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4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출근을 하게 됐다. 사실 서울에서 출근은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등교를 한 거고 인턴 할 때는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사실 인턴 할 때는 일하러 간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아직 대학교 4학년이어서 그런가 '내가 직장인인가? 나는 아직 학생인데'라는 마음이 컸다. 아직 직장인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4년 만에 어엿한 5년 차 직장인이 된 나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출근을 시작했다.
여수에서 서울로 이직이 확정됐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있다. 연봉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 살다가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출근길 버스였다. 우리 집이 위치한 경기도 구리에는 지하철이 없었다. 중앙선이 하나 있긴 한데 집이랑 거리도 있고 내가 타야 할 지하철은 5호선이라 굳이 중앙선을 탈 필요가 없었다. 지하철을 타려면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5호선 광나루역이나 2호선 강변역까지 가야 했다. 문제는 나만 가는 게 아니었다. 구리와 남양주에 있는 수 십만 직장인이 동시에 서울로 출근했다. 출근길 버스는 익히 아는 고통이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바로 그 지옥 버스였다. 그래서 여수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 결정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버스'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버스 타는 게 고통스러웠는지 버스에서 힘들었던 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겨울에 버스를 탈 때의 애로 사항은 덥다(?)는 것이었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어느 겨울 나는 히말라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중무장을 했다. 히말라야 대신 출근길 만원 버스에 오른 나는 추위 대신 더위와 싸워야 했다. 영하 20도를 고려해 버스는 이미 후끈한 불가마를 만들어놨다. 사람으로 꽉 찬 버스에서 두꺼운 롱패딩을 벗을 수가 없었다. 버스는 흔들렸고 옆에는 사람 때문에 공간이 없었다. 민폐를 끼치느니 차라리 혼자 고통을 감내했다. 길은 또 어찌나 막히던지 15분 거리가 30분이 걸렸다. 30분 동안 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내려서 걸어가고 싶다.' 여름에는 에어컨에 취약한 비염 환자인 나는 재채기를 연발했다. 다수를 위한 시설인 버스는 나같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살아남기 어려운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대망의 첫 출근 날이 밝았다. 4월 19일 월요일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봄 날씨였다. 버스가 무서웠던 만큼 나름 준비를 했다. 봄에는 가벼운 외투를 여러 겹 결치는 것이 체온을 관리하는 데 좋다. 니트를 입고 언제든지 벗을 수 있는 가벼운 재킷을 준비했다. 회사는 목동에 있는 CBS다. 버스를 타고 광나루역에서 5호선을 타고 지하철 25개 역을 가면 된다. 산술적으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정도 거리는 학교나 인턴 할 때도 다녔던 거리였다. 조금 더 멀어졌지만 괜찮았다. 버스만 넘어서면 된다고 생각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앉아서 가는 건 기대도 안 했다. 적당히 서서 가면서 출근길에 힘만 빼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첫 출근길의 버스는 나에게 가혹한 철퇴를 내리쳤다.
우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재킷을 벗는 게 옆 사람을 치면서 가능했다. 조금 참아봤지만 등에 흐르는 땀을 느끼고 재킷을 벗었다. 그럼에도 더웠다. 니트를 입은 게 잘못이었나 보다. 잠깐, 4월에 니트를 입은 게 잘못인가? 여수에서는 5월까지 니트를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잘못한 건지 만원 버스가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거기다 길도 막혔다. 구리에서 출발해 워커힐을 넘는 구간이 원래 이렇게 막혔는지 모르겠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이렇게 막힌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월요일이라 차량을 타고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3개월째 출근하고 있는 지금 확실히 알게 됐다. 월요일은 매번 막힌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40분이 걸렸다. 땀이 줄줄 흐르고 버스는 앞으로 가지 못했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는 이직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 없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을 버텼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좀 더 얇은 옷을 입으면 될 거야!' 어떻게 해서 다시 서울로 왔는데 겨우 버스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40분을 버텨 광나루역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는 순간 마치 교도소를 출소한 수감인처럼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아마 이런 감정이었던 것 같다. '서울로 온 게 마냥 잘한 일일까?' 출근 첫날 버스를 타고 바로 녹다운이 돼버렸다. 서울은 참 만만찮은 곳이었다.
지하철 25개 역을 지나 오목교역에 있는 회사에 도착했다. 여유 있게 출발해 첫날부터 지각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간단히 자리를 안내받고 뻘쭘하게 앉아있다가 모든 직원들 앞에서 질문을 하는 타임이 됐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소개팅 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취미는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을 공개적으로 주고받았다. 그중 '사는 곳은 어디세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나는 '경기도 구리에서 살고 있어요. 1시간 30분쯤 걸릴 줄 알았는데 오늘 1시간 50분이 걸렸어요...'라고 대답했다. 여기저기서 옅은 탄식이 나왔다. 나는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간이 지나 회사 사람들과 친해진 사이가 됐다. 어쩌다 출근 첫날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점잖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첫날부터 현타가 와서 바로 퇴사할 것 같았어." 그랬다. 첫날 출근길에 한 방 먹었던 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여수에서는 출퇴근이 5분이었고 내 차로 편하게 출근할 수 있어서 더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여수에서의 출근길이 그리워지면서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을 했다. '서울에 온 게 잘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