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여수 생활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다
부산에서 산 스쿠터를 트럭에 실어 여수로 가져 가던 길이었다. 남해안 고속도로를 맹렬히 달리는 포터 트럭 안에서 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다른 곳에서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아버지의 고향이고 친척들이 있고 대도시인 부산에만 살았어도 내가 이렇게 힘들었겠냐고. 다시는 보지 않은 확률이 높은 완전한 타인에게 내 모든 감정을 담아 한탄했다. 2017년 9월에 왔으니 여수에 온 지도 5개월이 지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만 떠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곳이 꼭 서울이 아니어도 됐다. 부산, 광주, 대전 같은 큰 도시로 가고 싶었다. 어디든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저번 주에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짐 실어주고 왔어요. 부산에서도 못 버티고 다시 서울로 가요.”
트럭 아저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다른 지역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그것도 부산처럼 큰 도시에도 적응하지 못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구나.’ 그게 뭔가 안심이 됐다. 그래도 내가 잘못된 인간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냥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든 나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망망대해 같은 곳으로 가야 하는 나에게는 그런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다. 아저씨에게 얻은 순간의 위안을 벗 삼아 나는 다시 여수로 돌아왔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수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는 호남 고속도로 위에 섰다. 그토록 바랬던 ‘서울’로 돌아갔다. 짐을 실어 트럭에 올려보내고 여수에서 타던 차에 조금의 짐을 싣고 구리 집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했다. 호남고속도를 달리는 차 안에서 4년 전 부산을 출발했던 그 트럭 안을 생각했다.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그때를.
그런데 지금, 서울로 돌아가는 게 조금 이상했다. 나는 그렇게 부러워했던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간다는 기쁨이 가득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수를 떠나는 게 아쉬웠고 서울로 돌아가는 건 두려웠다. 무언가를 여수에 두고 오는 느낌이 들었다.
3년 동안 완전히 여수에 적응했다. 도시의 여유로움과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가 여수에서의 나를 행복하게 했다. 더 이상 여수는 공허하고 도망가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됐다. 작은 도시에서의 작은 인간관계는 서로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퇴근하면 “저녁먹자”고 묻는 동네 형 동생들이 있었다. 이곳은 서로를 챙길만큼 여유있고 또 그렇게 해야하는 곳이다. 지역에는 자원이 부족하기에 서로를 기반 삼아야 성장할 수 있다. 일 역시 편했다. 야근이 많지 않았고 그에 비해 월급은 충분했다. 거기에 지역mbc PD라는 직책에 사회적 인정도 따라왔다. 더 할나위 없는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성장을 위해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3년 전처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랐다. 행복을 포기하고 더 큰 종류의 욕구를 추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여수를 떠나는 게 3년 전 부산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통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올해 초 나는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행복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일을 통해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지역은 서울에 비해 경쟁이 심하지 않다. 경쟁력이 떨어져도 해고를 당하거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는다. 치열하게 노력해서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 상을 받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조직에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냥 무난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게 미덕인 곳이 된다. 이곳에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걸 느낀 순간 이직을 위해 움직였다.
5시간을 달려 구리에 도착했다. 가족들과 인사할 겨를도 없이 짐을 정리했다. 4년 전 여수에 갈 때 캐리어 2개 뿐이었던 짐이 이제 트럭 한 개와 승용차 한 대 분량의 짐으로 불어났다. 늘어난 살림살이 구석구석에 여수에서 4년의 기억이 묻어 있었다. 처음 살게 된 썰렁한 방에 들여놓았던 침대부터 여수 친구들과 술 파티를 벌였던 원형테이블까지, 오로지 나의 공간에 놓여있던 것들이 가족의 공간에 자리한 모습이 어색했다. 추억의 때가 묻은 모든 것들은 서서히 아무 것도 아닌 사물이 되어 갈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익숙하게 만든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던 여수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모두 나의 것이 됐다. 전세로 사는 아파트도 나의 ‘집’이고 술을 마시며 어울려 노는 동료들도 ‘친구’가 됐다. 그리고 여수는 내가 사는 ‘거주지’가 됐다. 겉에 잉크만 묻힌 것 같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뼛속 깊숙이 박혔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야한다. 평생을 살았던 서울로 돌아가지만 여수의 삶에 적응한 나를 다시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순간이 두렵다.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지리하고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다시 서울에서 산다면 많은 것에 적응이 필요할 것이다.
서울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도시. 차도 사람도 놀 것도 볼 것도 가득 찬 도시. 여수의 라이프스타일이 깊숙이 자리 잡은 나에게 서울의 에너지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여수를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던 이유들이 이제는 서울을 두려워하게 되는 이유가 됐다. 사람이 많고 즐길 거리가 많고 가족이 있는 서울이 부담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100만 명 미만의 인구가 사는 적당한 도시 규모에 상권도 너무 과밀화 되지 않은 여유가 있는 곳이 편안함을 느낀다. 시간이 만든 변화가 얄미웠다. 언제는 그렇게 싫어했던 게 이제는 빼앗기기 싫은 것이 됐으니까.
그럼에도 다시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적응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응의 과정에 나타나는 나의 반응에서 모두가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서울의 모습을 다시 느낄 것이다. 서울에서만 살다 보면 천만 명이 살고 1300만 명이 주변에서 사는 도시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의식하지 못 한다. 이렇게 사는 건 정상이 아니다. 출퇴근에 몇 시간이 걸리고 바로 앞의 거리를 가득 찬 차 때문에 갈 수가 없고 집이 너무 비싸 단칸방에 사는 이 현실은 정상이 아니란 걸 서울에서는 모른다. 주말에 외곽으로 나가려면 2-3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모른다. 사는 것, 이동하는 것, 휴식하는 것의 자유가 없는 삶이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한다. 이런 서울의 비정상성을 지역 생활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 스푼 덜어내도 좋을 서울의 거품을 ‘후’하고 불어내고 싶다.
서울을 떠나보니 알게 됐다. 행복한 인간을 위해 도시에서 필요한 것들을 말이다. 언젠가 다시 서울에 적응하게 되겠지만 서울이라는 라이프스타일에 몸과 마음이 완전히 동화되기 전까지 서울이라는 거대함에 몸부림을 치고 싶다. 그게 나라는 아주 개인의 사소한 투정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