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본 무비 팬의 투정
<제이슨 본>이란 영화는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이점과 불리한 점이 명확한데, 결국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9년만에 찾아온 본 무비다." 본 시리즈를 빼놓고는 첩보영화를 논할 수 없다, 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고 받아들여질만큼 엄청난 전작의 명성은 이 영화의 후광이자 그늘이다. 또한 오리지널 본 시리즈는 정통 첩보영화로선 드물게 엄청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의 귀환을 반기면서도 '만약 본 시리즈의 명성에 누를 끼친다면 얄짤 없다.' 라는듯 도끼눈을 하며 이 영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렇기에 나의 평가는 '태생적으로' 아주 편파적일 수 밖에 없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람이다.
아주 편파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제이슨 본>은 실망스럽다. 다른 첩보액션영화와 비교한다면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오락물이지만, 액션의 섹시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보여준 <본 아이덴티티>에서 가히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본 슈프리머시>를 거쳐 완벽한 마무리를 지은 <본 얼티메이텀>의 뒤에 놓이기엔 역부족이다.
기본적인 이야기 전개가 전작들에 무게감을 더해준 '본'의 정체성과 과거의 뿌리를 쫓아감에도 불구하고 훨씬 가볍고 얕아진 것이 가장 의아한 점이다. 플롯과 인물들이 분산적으로 흩어져있어 영화가 중심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제목인 <제이슨 본>이 무색할만큼 본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여성 캐릭터 '헤더슨 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캐릭터의 매력에서도, 무게감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보이지 않는다(영화의 제목은 <헤더슨 리: 비긴즈>가 더 적합해보인다). IT기업 딥 드림과 관련된 사건은 굳이 다룰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뜬금없이 등장했다가 퇴장해 너무 도구적으로만 다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킬러의 마지막 또한 다음 씬으로 향하기 위한 디딤돌같은 느낌을 남겨 아쉽다.
액션의 규모는 전작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볼거리는 그만큼 줄었다. 이것은 우리가 본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액션으로서의 볼거리를 뜻하는 것이다. 흔히들 본하면 떠오르는 것-재빠른 순발력과 스피드,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액션-이 <제이슨 본>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시리즈의 인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중 속 액션이 있긴하지만 이전과 같은 임팩트와 긴장감을 주진 못한다.
아무쪼록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마도 내가 올해 가장 기다려온 영화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제이슨 본>조차도 여타의 다른 영화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꽤 멋진 영화란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딱히 흠 잡을데 없는 오락영화이다. 폴 그린그래스는 여전히 폴 그린그래스이고, 맷 데이먼 또한 역시 맷 데이먼이다. 전작에 비해 못하다고는 하지만 그리스부터 LA를 종횡무진하며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현재 전세계의 정세와 사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또한 녹슬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랜 시리즈 팬들에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진짜 제이슨 본, 맷 데이먼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나는 만약 이 영화가 정말 형편 없었다면 애초부터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은 <제이슨 본>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단 너무나 오랜 시간 속편을 기다려온 팬으로서의 가벼운 투정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니 부디 이 영화를 만나러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시길.
P.S 아직 본 시리즈를 안 본 사람들에게 자꾸 '본 무비', '본 시리즈' 운운하는 내 글이 재수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럴 때 해결책을 알려드리겠다. <본 아이덴티티>를 보고, <본 슈프리머시>를 본 후 <본 얼티메이텀>으로 마무리하시라. 그렇다면 어느새 내 글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아님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