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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박국 Dec 05. 2018

DIY 음악가의 탄생

-보그(Vogue) 2018.12 기고

2017년 9월부터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V 라이브의 캐스퍼 라디오(Casper Radio) 채널에서 ‘하박국의 박국박국해’라는 인디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음악가는 약 40여 팀. 그 중  예서, 키스누, 테림, TFO 등 절반은 스스로 음반을 제작하고 매니지먼트사 없이 활동하는 DIY 음악가다. 섭외 과정에 DIY 음악가 쿼터제라도 있었던 걸까. 게스트 선정은 모두 내가 했다. 최근 음반을 발표한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섭외했다. 이게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DIY 음악가가 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https://youtu.be/x1ZxyOahHPs


캐스퍼 라디오는 10cm, 옥상달빛, 선우정아, 요조 등이 속한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Magic Strawberry Sound, 이하 MSB)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국이다. MSB는 레이블, 매니지먼트, 에이전시를 겸한다. 작고 편향된 한국의 음악 산업에서 한국 대부분 레이블은 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에 발을 걸치고 있다. 약 3년 전부터 MSB는 영상 미디어와 유통에도 손을 뻗었다. 인디 음악가의 음원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유통하는 포크라노스(Poclanos)는 MSB의 자회사다. 요약하면 MSB는 이제 레이블, 매니지먼트, 에이전시, 영상 미디어, 유통을 모두 하는 회사다.


이런 측면에서 포크라노스는 인디 음악 레이블의 잠재적 경쟁사이기도 하다. 음악가가 레이블을 통해서 하던 일을 유통사와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에게 포크라노스는 좋은 파트너다. 독점 유통을 조건으로 먼저 투자하고(업계 용어로 ‘마이킹’이라고 한다), 캐스퍼 라디오와 같은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하며, 페스티벌에 우리 음악가를 추천하고, 우리 입장에서 협상력이 약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분야에서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포크라노스는 음원 유통뿐 아니라 모회사인 레이블의 노하우를 살려 프로모션 콘텐츠 제작, 컨설팅, 행사 및 페스티벌 섭외 등의 일을 겸한다. 레이블이 하는 일을 함께 하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포크라노스는 인디 음악 레이블의 잠재적 경쟁사이기도 하다. 음악가가 레이블을 통해서 하던 일을 유통사와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는 지난 6월 음악가와 직접 유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스포티파이는 아티스트에게 자신의 서비스에서 음악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볼 수 있는 스포티파이 포 아티스트(Spotify for Artists)를 운영한다. 스포티파이 포 아티스트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라는 코너를 통해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을 알릴 수 있는지 알려준다. 플레이리스트에 노출되는 법, 음악가로서 콘셉트를 잡는 법, 심지어는 정신력을 관리하는 법까지. 모두 레이블이 음악가와 함께하던 일이다. 


잠시 정리하고 넘어가자. 음악가는 음악을 만든다. 레이블은 인프라와 비용을 투자해 무형의 존재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포맷의 음반으로 제작한다. 매니지먼트사는 음악가의 외부 업무를 관리한다. 에이전시는 공연, 행사 또는 페스티벌 기획사와 음악가 사이에 존재한다. 음악가는 음반, 공연, 행사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위 회사와 나눠 가진다. 언급했듯 한국의 음악 산업은 각각의 업무가 존재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인디 음악 레이블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온다. 다른 곳과 나눠서 해야 하는 업무를 전담한다는 건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높다는 얘기다. 그래야 겨우 유지할 수 있다. 음악 마니아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한국의 1세대 인디 음악 레이블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거나, 업종을 바꾸거나, 다른 일을 겸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돈 벌기가 쉽지 않다.


레이블이 돈을 못 버니 음악가도 별수 없다. 그 와중에 환경은 변하고 있다 음반 제작에 드는 인프라와 비용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세션은 가상 악기로, 레코딩은 홈 스튜디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음반 제작보다 예산을 더 차지하는 뮤직비디오 제작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영상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영상 제작도 기술의 발달로 전보다 비용이 줄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고 음원보다 신경 쓸 게 많은 실물 음반은 수요가 줄었다. 하지 않거나 소량만 제한적으로 해도 된다. 지원 프로그램, 크라우드 펀딩 등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 경로도 늘었다. 프로모션은 SNS로. 요즘은 외부와의 비즈니스도 대부분 여기서 이뤄진다. 레이블과 함께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수입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DIY 음악가가 전보다 나은 환경에 처한 건 아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음악만 집중하기 어렵다. 일정 이상 자신의 시장을 만든 음악가가 레이블과 계약하는 이유다. 쉽게 음악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게 됐다는 건 경쟁자가 늘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홍대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존재하던 인디 음악 시장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메인스트림 음악가와 같은 타임라인에서 경쟁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 단위를 넓히면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경쟁자다. 닌텐도의 경쟁사가 나이키라는 말처럼 음악가의 경쟁사는 넷플릭스, 온라인 게임, SNS다. 물론 물리적인 공간에 구속되지 않기에 얻는 이점도 있다. 인터넷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자신의 음악을 전파하고 소통할 수 있다. 

스트리밍의 시대 음악 소비에서 큰 축이 되어 가고 있는 건 공연이다. 아직 공연은 (VR 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는 이상) 물리적인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의 DIY 음악가도 이웃 국가를 살피고 있다. 88rising 같은 아시아의 음악가를 다루는 미디어 겸 레이블이 생기고, 몇 차례 내한 공연을 한 품 비푸릿(Phum Viphurit),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 처럼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인기를 얻는 음악가가 늘고 있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스포티파이나 유튜브의 알고리듬은 아시아에 속한 비슷한 음악을 추천한다. 아티스트 포 스포티파이에서 확인한 우리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해외 도시는 모두 방콕, 싱가폴, 타이페이 등 아시아 도시다.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 음악 신이 음악가와 소비자의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https://youtu.be/8HnLRrQ3RS4


우리가 보게 될 미래는 개개인의 창작이 꽃피는 아름다운 풍경일까, 개인 단위로 쉼 없이 무한경쟁해야 하는 지옥 같은 순간일까.


지난 10월 열린 어도비 맥스 2018(Adobe Max 2018) 이벤트에서 CDO 샨타누 나라옌은 ‘창의성의 황금기가 왔으며, 미래는 창작자에 의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모든 분야에서 1인 창작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시대의 변화로 사라지는 중간상인 군에 속하게 된 나는 얼마 전 ‘기술인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거다. 혼자 영상을 기획, 촬영, 편집, 발행하다니. 5년 전만 해도 카메라 작동법도 몰랐던 내겐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 같은 이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창작은 소통이다. 전보다 빠르고 광범위한 소통이 가능하게 된 시대. 우리가 보게 될 미래는 개개인의 창작이 꽃피는 아름다운 풍경일까, 개인 단위로 쉼 없이 무한경쟁해야 하는 지옥 같은 순간일까. 모든 DIY 음악가와 1인 창작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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