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삶 Jan 04. 2019

미국에서 아기를 낳았다

미국 출산은 무엇이 다를까

벌써 2019년이니 지난 해가 되겠다. 지난 해는 나에게 참 많은 일이 뭉텅이로 일어난 해였다. 결혼 후 미국 생활에 점점 적응하면서 임신을 했고 2018년 초에 아기를 출산했다. 우리 부부에겐 첫 아이였다.


나 임신한 거 같아..

새벽이었다. 새벽 다섯시 경. 잠깐 잠에서 깼다가 화장실을 갔는데 그 전날 사 놓은 임신 테스트기에 눈기 갔고 그렇게 난 두 줄을 보았다. 오마이갓.. 오마이갓.. 이게 무슨 일... 변기에 앉아 혼자 머리속이 하얘지고는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임신을 했다니..’ 믿겨지지 않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그 순간, 남편이 잠깐 뒤척인 틈을 난 놓치지 않았다. 잠자다가 갑자기 들은 엄청난 소식에 남편은 잠에서 깨어 다시 되물었고 마치 몇 시간 같은 몇 초의 정적 뒤에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우린 잘 할수 있을거야. 너무 감사하다.”


첫 임신을 미국에서 하다니.. 미국에서 살면서 언젠가 있을 일이라는 것도 알았고 남편과 아이에 대해 자주 대화를 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막막했다. 심지어 나는 미국에 온지 세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남편은 그 다음 날, 퇴근하자마자 컴퓨터에서 이것 저것을 뒤져봤다. 바로 보험.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익히 들어 알겠지만 미국은 의료 서비스가 굉장히 비싸다. 듣기론 보험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의료 채무는 미국인들이 파산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는 의료비가 굉장히 비싼 것도 이유가 되지만 의료보험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 대부분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리콘 밸리의 여러 IT기업의 임직원들은 회사와 계약되어있는 보험사를 선택하고, 그 중에서 자신과 맞는 플랜을 선택하면 보험비 중의 일정 부분을 자신이, 나머지 일정 부분을 회사가 부담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남편이 그 전에는 싱글로 살 때 (병원을 자주 가지 않을 때) 선택했던 보험플랜이 있었다. 하지만 임신으로 인해 더 자주 병원에 가게 될 것이므로 그것을 더 비싼 플랜으로 바꿔야 했다.


이제 문제는 병원이었다. 첫 임신이었고 이와 관련된 병원 용어 조차 잘 몰랐던 우리였으므로 무작정 미국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굉장히 망설여졌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 다행히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미국 병원을 이 때 난 처음 가 봤고, 너무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가 매우 어렸을 때 갔었던 내 기억 속의 옛날 병원 느낌이었다.


한국 산부인과는 안가봤지만 이런 느낌은 분명 아닐 것 같다.


보통 미국에서 임신을 하면 초음파를 열 달 통틀어 한 세 번 정도 본다고 한다. 그만큼 초음파 검사를 안하는데 그 이유를 건너듣기론 미국에선 초음파를 많이 쐬면 태아에게 안좋다는 인식이 있어서랬다. 하지만 나는 한국 의사분에게 진료를 받아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갈 때마다 초음파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산부인과는 위의 사진처럼 작은 동네병원같은 병원을 말한다. 엄청나게 크고 많은 기구들이 있는 깔끔한 현대식의 한국 병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런 곳에서 열 달동안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아기를 낳는 출산일에는 그 전에 미리 예약한 큰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산모를 열 달동안 봐 주었던 의사선생님께서도 그 큰 병원으로 오셔서 아기를 받아주신다.


나는 임신기간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았다. 그러다 점차 출산일이 가까워 올수록 자주 병원에 갔는데, 그 검진비는 의료보험이 되기 전의 순수 진료비가 한국 돈으로 약 20만원이다. 그러니까 이 돈이 한 달에 한 번 이상으로 나오는 거다. 한국은 임산부에게 주는 카드가 있어서 그것으로 진료도 받고 한다던데 미국은 그런 것 하나 없다.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열 달을 무사히 채우고는 큰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출산 또한 인터넷에서 숱하게 검색했던 한국의 출산과는 매우 달랐다. 우선 가장 큰 차이로는 “3대 굴욕”이 없다. 이는 출산 과정에서 민망하다고 하는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말하는데 미국에서의 출산은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이 과정들을 겪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까지 인류가 출산 과정에서 위의 세 가지 굴욕 없이 이렇게까지 번창했는데 이것이 정말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산모와 아기의 상태에 맞춰 필요시 회음부 절개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또한 출산의 그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은 굉장히 크다. 간호사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오느라 힘쓰고 있는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고) 보라며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주라고 말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시(?)한다. 그래서 분만 과정에서 남편은 약간 과장해서 마치 한 명의 간호사가 되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우리 남편은 비위가 약하거나 하여 출산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던다, 나에게 손을 못댄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고, 아기가 나오는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세상에 자신밖에 없다며 지금도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한다. 그러면 나는 또 신기해서 계속 물어본다. “헐, 그럼 그때 아기 머리도 보였어??” 나도 출산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출산 이후 회복의 과정도 한국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나는 2박 3일을 입원해있었는데 그 때엔 병원에서 항상 준비되어있는 초코푸딩, 우유, 빵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물론 나는 몇 번 먹다 말았지만 식사로 나오는 여러 파스타, 스테이크 등, 내 머리속의 병원 밥이라고 하기엔 그것들은 참 많이 달랐다. 특히나 아이를 막 낳은 산모가 먹는 음식이라기엔 더 그랬다 그래서 나는 친정 엄마가 오셔서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병원에 싸 와서 챙겨먹었다. 전자레인지가 있는 키친에 왔다갔다 하면서 나와 남편이 쌀밥과 미역국을 데우는 모습을 본 한 중국계 아시안이 “Is that seaweed soup? (그게 미역국이니?)” 하고 묻기도 했다.


나는 친정 엄마가 오셔서 끓여주신 미역국을 병원에 싸와서 끼니마다 먹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출산한 후에 산모가 회복할 때에는 아기는 따로 신생아실에 보내진다고 들었다. (맞나요?) 하지만 미국 병원은 이것도 다르다. 난 출산하자마자 회복실에서부터 신생아랑 함께 생활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그 때부터 굉장히 피곤한 생활을 했지만 아기를 씻기는 방법, 모유수유하는 방법까지 담당 간호사들이 직접 와서 가르쳐 주면서 약간 산모교실 느낌의 그런 시간을 보냈다. 한국식과 미국식이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미국병원의 방식도 처음으로 아기를 만나는 초보엄마인 나에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방문하는 어떤 간호사들은 특정 표시가 있는 간호사 말고는 절대 아기를 맡기지 말라고 당부를 하기도 했다.


내 침대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였던 아기 침대


어떤 면에서는 그래도 편한 입원 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산후조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천국이라 불리는 산후조리원은 이곳에 없기 때문에 꿈도 못꾸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친정 부모님이 오셔서 약 한 달 정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해 주신다.  그렇지 않는 이들은 LA에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실 이모님을 직접 컨택해서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며 산후조리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임신과 출산 과정 중 가장 불편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출산은 내 나라에서 하는 것이

편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시아인들은 특히 아기는 백인 아기들보다 큰 편이고 엄마의 체격은 작은 편이라 출산 후에 조리를 더 신경써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런 산후조리 시설이 없는 것은 참 아쉬웠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 곳의 큰 기업들이 출산 시에 주는 육아휴가는 참 좋다. 당연히 유급으로 보통 여자들은 출산 시 6개월, 남자들은 3개월을 휴가로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업에서 일하는 여자 입장에서는 출산 준비와 산후조리까지 충분히 하고 다시 여유롭게 복직할 수 있고 남자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눈총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피하면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다. 남편에게 듣기론 이런 복지 뿐 아니라 회사 내의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 있는 이들에게 진심어린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하니, 이런 소식을 들으면 참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한국의 사정을 너무 잘 아는 나로서는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난 미국에서 첫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이 아쉽기도 특별하기도 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에서부터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너무나 낯설지만 그래도 임신과 출산의 시간동안 느낄 수 있었던 남편의 노력과 다른 이들의 배려는 참 고마웠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미국에 대한 작은 정이 들기도 한 것 같다. 앞으로 육아를 하면서 또 미국이라는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태어난 아이와 함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 사는 우리 부부가 노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