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욕의왕 May 10. 2016

익숙한 사각형

한국 남자의 미감이 후진 이유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달갑지 않은 연례행사입니다. 패색이 짙은 경기의 인저리타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지루하고 짜증 나고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훈련장에서 4년 만에 만난 고참은 인저리타임에 터진 만회 골 같았습니다. 세레모니를 할 정도로 즐겁진 않았지만, 갈증은 조금 가시는 기분이었습니다. 고참은 공군 병사에게 지급되는 에스콰이어 외출용 단화를 '질샌더' 같다며, 굳이 군법을 어겨가며 전역하던 날에 기어코 챙겨가던 사람이었습니다. 4년 전, 저희는 질샌더와 에스콰이어만큼이나,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 였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타이어 같은 고기를 씹으며 (구)고참이 말했습니다. "식판에 밥 먹는 거 오래간만이네." 이 인간이 또 무슨 소리를 할까 기대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야 너 초등학교 때부터 급식 먹었지? 그럼 우리나라 남자가 평생 살면서 식판에다 몇 끼나 먹을 것 같냐? 계산해봐. 너 공부 잘하잖아." 갑자기 답 안나오는 질문해서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악취미는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당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비군이니까요. 최대한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형, 나 문관데." 고참, 아니 형이 대답합니다. "병신. 아무튼, 평생 스뎅 식판에 밥을 쳐먹으니까 한국 남자들 미감이 후진거야."

남자의 미감은 물기 묻은 스테인레스 식판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동안 퇴화된 것일까요? 우리는 그래서 공군 병사용 구두의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실용성이 주는 미라면 모를까, 확실히 스테인레스 식판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왼쪽엔 밥, 오른쪽엔 국, 구석엔 김치. 무엇을 담을지, 얼마나 담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년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탓인지 금세 배가 꺼지는 것은 덤입니다.

훈련이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빨리 그냥 집에 가고 싶은 것이고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은 그릇에 담은 밥을 먹는 것입니다. 색색의 볼과 접시 가운데다 반찬을 소담스럽게 담은, 저녁 식탁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어감부터가 사람 입속으로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 '짬'이나 '냉동'말고요. 그릇은 식판만 아니면 상관없지만 코니쉬웨어에서 만든 줄무늬 그릇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가끔 세일도 하니까요.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손에 잡힐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구경을 해봐도 좋겠네요. 물론, 그래 봤자 잠깐 하루 훈련받고 나오면서 뭘 그리 유난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어요. 그냥 그렇다고요. 예비역 병장의 시간은 유독 더디게 가네요.

#코니쉬웨어 #cornishware

가격
머그 2만원대 시리얼볼 2만원대 파스타볼 3만원대

작가의 이전글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