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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자 곁 May 31. 2022

우울할 때 찾는 나만의 은신처를 만들자

日刊 | 자람의 기본 007


日刊 | 자람의 기본 007

우울할 때 찾는 나만의 은신처를 만들자



우울할 때, 처음엔 회피하려 했어요. 이 마음은 내가 나약해서 겪는 것일 뿐이야. 나락에 떨어진 감정은 내가 운이 없어서 그런 거야.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우울한 감정 앞에 서면서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감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잘 활용하고 있어요. 이번 글은 저만의 방법이긴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잘 변주해서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우울"을 인정하고 "괜찮아"는 잠시 미뤄두세요

가장 먼저 저는 이 태도를 고쳤어요. 우울한 감정을 회피하고 무조건 "나는 괜찮아." "지나가겠지."라는 가짜 긍정을 하면서 피하기만 했어요. 그랬더니 우울한 나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하더라고요. 그러다 회피하지 못하게 될 때, 더한 자책감과 긍정하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못 이겨내는 건가? 하면서.


"우울"에 대한 면역이 점점 뚝뚝 떨어지니 갈수록 해소되지 못한 우울 위로 또 다른 우울이 쌓여갔죠. 주체할 수 없었어요. 어느 날 그게 펑-하고 터져버렸죠.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나가더라도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있었어요.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고 먹는 것도 어영부영.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방치하는 폭력을 휘둘렀죠.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긍정하다"의 진짜 의미를. 긍정하다는 무조건 괜찮다. 잘 되겠지. 이런 식의 해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긍정의 의미라고 해요. 어느 날 저 이야기를 듣고서 아! 싶었죠. 나는 나를 진솔하게 대하지 못하는구나, 하고요.


만약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이렇게 [인정]하세요. "나 지금 힘들구나. 마음에 상처가 생긴 거구나." 이런 인정과 수긍을 거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더라고요.




둘째. 우울, 불안이 나를 휘두를 수 없는, 내가 제어하고 주도하는 무언가를 하자

제가 미라클 모닝을 하는 건 제 소셜 이웃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테죠. 저는 제가 처음 미라클 모닝을 성공한 날짜를 기억하는데요. 2021년 11월 29일이었죠.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복층에서 자는데 신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이상한 막춤을 추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미라클 모닝을 왜 시작했을까요? 소위 말하는 갓생을 위해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새벽 기상을 하니까? 아니요. 저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주도하는 삶의 태도를 통해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였어요.


미라클 모닝 개념을 만난 건 훨씬 더 오래전이었지만, 그에 대한 책을 읽고 실천하기로 한 것은 2021년 가을 즈음이었어요. 책에서는 미라클 모닝을 하는 이유로


"우울, 불안,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신이 주도하면서 제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인데. 그 방법 중 하나가 방해나 영향이 적은 새벽 시간을 나를 위해 여유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 *도서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내용 각색)



라고 하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미라클 모닝이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굳이 새벽 4시 30분 기상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1시간 만이라도 몰입하고 주도하는 걸 해보세요. 사소한 성취가 쌓여 자존감이 고취되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에너지도 충전된답니다.




셋째. 우울할 때 찾는 나만의 처방전, 은신처를 만들자

여기서 은신처란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제 경우 은신처는. 바로 음악과 영화, 그리고 책이에요. "아.. 뭔가 지금 내가 우울한 타이밍 같다." 하면서 마음의 표면이 쉬이 일렁이는 상태일 때마다 저는 은신처로 우울을 기꺼이 맞이하러 갑니다.


평소에는 듣거나, 보거나, 읽지 않지만 딱 그 시기에 흔들리는 나를 바닥에 앉혀두고, 그럼에도 괜찮다. 당연한 마음이야.라면서 다독여주는. 더 심히 앓아도 너는 아무렇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울어버려도 된다.라고 말을 걸어주는 음악과 영화. 그리고 책을 읽어요.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은 아마자라시의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책은 최승자 시인님의 [이 시대의 사랑]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을 가까이하게 되는 주인공이 남은 사람들이 갈수록 그립고 애달파지고, 그럼에도 차근차근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맞이하는 영화라 저는 느껴져서. 제가 느끼는 이 부정적인 마음을 애써 부정 말고 나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자. 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 년에 꼭 한 두 번은 보면서 먹먹해하다가, 영화가 끝난 순간 벌떡 일어나요. "방을 치우자." "쓰레기를 버리자." "오늘은 나를 위해 무언가 잘 먹자." 하면서. 적극적으로 마음의 날씨가 따뜻해지는 걸 만끽한답니다.



일본 가수 아마자라시의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알게 된 곡이에요. 그때 이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고서 펑펑 울었어요. 노래도 노래지만 가사가 하염없이 좋았기 때문이죠.


"죽음을 깊게, 그리고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신이 너무 삶에 진지했기 때문이에요."


라는 의미의 가사는 제게 엄청난 위로였어요, 그래,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진지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대부분의 걱정이 어쩌면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따뜻한 충고이기도 했어요. 우울할 때마다 저는 이 노래를 영상으로 몇 번씩 듣곤 한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hcvGjy2v18




최승자 시인님은 워낙 유명하지만, 처절하고 폐부를 찌르는 시의 힘은 제가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최고죠. 이 분의 시를 만난 것은 갓 서른 즈음이었어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걸까. 나만 왜 다른 서른 즈음의 사람들과 달리 빛이 부족한 걸까. 하면서. 자책과 좌절에 시달리던 시기. 45만 원 고시텔의 손바닥만 한 쪽창 문으로 형광등 불빛이 겨우 들어오던 새벽 시간. 12인치 모니터 앞에서 자책하는 말들로 가득한 일기를 쓴 후 [서른]과 [삼십 세]를 나도 모르게 검색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운명처럼 찾은 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이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릎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 행복 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 지성 시인선 16, 1989>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는 그 한 문장. 홀린 듯이 웹에 군데군데 있던 최승자 시인님의 모든 시를 읽고 그것도 모자라 시인님의 모든 시집을 찾아 구입했죠. 이때부터 저는 시에 빠져들었고. 그 후 매일 시나 글 한편씩 쓰는 습관이 생겼어요. 지금에 와서 기록자로서의 삶을 추구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죠.


지금 여러분의 우울을 마주하기 위한 처방전 또는 안식처가 있나요? 한번 찾아보고 목록을 작성해 보세요. 저처럼 음악, 영화, 책이어도 좋고. 찾아가 볼 만한 자신만의 장소여도 좋아요. 손빨래를 한다든지, 집의 가구 배치를 바꾸기 같은 행위도 좋죠.


자신의 우울은 오로지 자기만의 것이에요. 그러니 나름의 고유한 방법이 있다면 좀 더 쉽게 우울을 만나고 헤어지고, 잘 견딘 후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혹여 다시 우울해진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 짧아지게 되죠.




가끔 우울하고 힘들고 슬럼프가 와서 [나의 삶을 내가 견디기 힘든 순간]이 분명 올 테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그 시기를 버티고 일상으로 돌아온 당신이 항상 있었다는 것을요. 그제야 알게 되는 것도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우울을 마주하면서도 삶을 잘 버틴 사람은, 자신의 강인함을 아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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