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PIO CESARE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두 달이 지났고 이제는 글을 남길 시간이다
이탈리아에 간다고 했을 때,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말은 꼭 와인과 음식을 함께 먹어보라던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피오체사레와 톡톡의 갈라디너를 다녀와서
‘내가 이탈리아에 간다면’의 예고편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https://brunch.co.kr/@drunkendrawer/9)
그만큼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이 만났을 때 그 완벽함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환상의 마리아쥬도 좋지만,
사실 내가 가장 기대하고 떠났던 것은 와이너리에서의 테이스팅이었다
내가 즐겨 마시는 와인들이 만들어지는 곳에서의 와인 시음이라니
그곳에 들어가기 직전의 들뜸이 참 좋더라
좋은 기회로 가볼 수 있었던 PIO CESARE가 그 첫 번째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는 FABIO
인사를 하고 지하로 내려가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로마시대의 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셀러를 지켜내고 있는 견고함이었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 설명을 들었는데
와인이 숙성 중인 오크통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니 내가 상상만 해왔던 그런 모습이 펼쳐졌다
나란히 누워있는 오크통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가 기분을 좋게 했다
나무 냄새 벽 냄새 지하실 습기의 쿰쿰한 냄새 미세하게 느껴지는 달큰함까지
약간은 벙쪄있게 하는 공간과 시간이었다
FABIO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와이너리야"
그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 보니 굉장히 오래된 와인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가장 오래된 바틀이라며 소개하는 바틀의 1916이라는 숫자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아 있었다
빈티지별로 쭉 늘어져 있어서 "어, 내 탄생 빈티지 찾아보고 싶다!"
FABIO가 웃으며 ‘1986.. That vintage is bad vintage’
세상 속상 :(
근데 프랑스 빈티지도 별로 안 좋았었던 것 같은데 이탈리아도 그런가
장난이었는지 진짜였는지 모르겠다
피오체사레와 와인에 대해서 쭉 설명을 듣고 처음 만났던 큰 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와인 3병과 와인잔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그걸 본 느낌은 모래 속에서 다이아를 찾은 기분
테이스팅 한 와인을 하나씩 얘기를 해보자면,
제일 처음으로는 Barbera d’Alba ‘Fides’ DOC 2014
바르베라(barbera) 품종인데, 라벨에 원이 그려져 있는 것은 싱글 빈야드 와인이라고 했다
오르나토나 일브리코처럼 하나의 밭에서 나온 포도만 사용하는 와인
‘Fides’는 라틴어로 ‘Faith’라는 뜻인데 한국말로 뭐냐고 물어봐서
아마 믿음으로 알려준 것 같은데 신의라는 단어가 더 맞는 것 같다
물론 FABIO에게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게다가 FABIO는 Fides가 더 어감이 좋다고 했었거든
밝은 보랏빛의 굉장히 프룻티하고 스파이시한 편이었다
그렇게 무겁지 않았고 생각보다 맛있었는데 점심때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다음은 Barbaresco DOCG 2013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되어 나오는 바르바레스코
색은 석류 같은 붉은색이었고 바르베라보다 좀 더 단단하고 복합적이다.
아직은 덜 익은 과일맛이었지만 충분히 맛있는 와인
톡톡에서 마셨던 바르바레스코 일 브리코는 말린 장미와 베리들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까?
마지막으로는 Barolo DOCG 2013
오히려 바르바레스코보다 둥글다는 느낌을 받은 바롤로
아마 바롤로를 더 편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역시 구조가 탄탄했고 어리지만 맛있다
클래식하다. 베이직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리지만 그 안에서도 길게 남는 여운이 좋았다
처음 해보는 와이너리 투어와 와인 테이스팅이라 어색하고 낯설어서 그리고 영어가 잘 안되니까 (힝ㅠㅠ)
궁금한 걸 모두 물어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FABIO는 괜찮다고 친절하게 다독여줬지만 그래도 아쉬우니까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귀국했는데 여전히 안 하고 있음을 반성하면서
피오체사레 투어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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