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나의 올리브 나무
지난봄, 친구와 꽃시장을 구경하다가 문득 안 쓰는 화분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그 화분에 심을 작은 올리브 나무 하나를 샀다. 그 화분엔 원래 '마오리 소포라'라는 식물이 심겨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 H를 졸라 생일 선물로 받은 화분이었다. 생일 전날 도착한 마오리 소포라는 사진만큼이나 근사했다. 특히 새끼손톱 반의 반보다도 작은 이파리가 귀여웠다. 그러나 나는 어떤 환경에서 소포라가 잘 자라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결국 소포라는 금방 죽어버렸다. 식물에도 영양제를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꽂아보았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우리 집에 식물이라는 소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그 자리에 식물을 두는 게 중요했던 거고.
이번에 올리브 나무를 새로 들여오면서는 전과 달리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올리브 나무는 지중해가 고향이라 바람과 볕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고 했다. 가지치기하는 법도 잘 나와있었다. 우리는 이 화분을 어디 둘 지 잠시 고민을 했다. 사실은 침대 발 밑 공간에 화분을 두는 게 가장 예쁠 것 같았는데, 지중해가 고향인 올리브 나무에게 가장 좋은 자리는 베란다 창문 앞자리였다. 나는 전에 죽인 마오리 소포라를 떠올리며 베란다 창문 앞에 올리브 나무를 두기로 했다. 꽃시장 사장님이 알려준 대로 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을 활짝 열어주었다. 일주일 뒤, 바람과 볕을 잘 쐰 올리브 나무에 연둣빛의 작은 새 잎이 돋았다.
“H! 이것 봐. 올리브 나무에 새 잎이 많이 났어!”
“그러게, 이게 뭐라고 신기하지?”
“그치! 나도 신기해.”
다행히 올리브 나무는 잘 커주었다. 어느 날 보면 짙은 초록색 잎이 무성히 자라 있었고, 어느 날은 키가 쑥 자라 있었다. 나와 H는 언젠가 돌아보면 쑥 자라 있는 올리브 나무를 보며 기뻐했고, 이런 사소함에 기뻐하는 우리가 우스워서 웃었다.
예전엔 순간을 둘러볼 여유 없이 어딘가 질주하듯 살아왔었고, 이런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런 내게 결혼은 사소한 기쁨을 발견하는 삶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작은 일에 기뻐하게 되면서 보다 일상에 관심을 쏟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마음도 돌보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내가 자주 보고 사용하는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수건, 휴지, 세제, 생리대 등을 전보다 많이 고민하고 좋은 것으로 고르는 것 같은.
글을 쓰면서 나를 채우고 있는 행복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뽀송하게 잘 마른 침구를 처음 덮고는 기분 좋다며 둘이서 호들갑을 떨 때, 자기 전 누워서 H와 수다를 떨다가 시간이 훌쩍 가버렸을 때, 선풍기를 누가 끌지 서로 미루다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이런 순간이 모여 내 행복을 만들고 있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 ‘소확행’,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라는 말을 머리론 이해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이 작은 행복들이 내 일상에 없다면 나는 오늘내일이 좀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H와 쑥 자라난 올리브 나무 분갈이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