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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지 Jun 10. 2020

결혼, 확신따윈 없었다

 “현지 씨는 그런 순간 없었어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요.”

H의 친구 민재 씨가 벌겋게 취한 얼굴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당황한 내가 어버버 말을 더듬자 민재 씨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어, 왜 대답을 바로 못하나요! 하하하하.”

영화과 재학 시절 배우가 되겠다며 두꺼운 낯짝으로 웃음과 눈물을 창조해내던 한때의 나는 이제 없다. 나는 민재 씨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민낯을 드러낸 채 대답을 얼버무렸다.


사실 H와의 결혼에 있어서 확신은 없었다. 결혼을 결심하던 순간에도, 아빠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던 날에도 그런 건 생기지 않았다. H와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앞에서는 시니컬해졌다. 누구나 ‘우리는 절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결혼을 하지만, 이혼하는 커플들은 무수히 많으니까. 나는 수많은 이들의 통계치를 보며 우리 인생도 마음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우리는 연인이 되고 꼬박 3년을 어디 뒤처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싸웠다. 서울-속초 장거리로 인한 만남의 장벽은 서로를 더욱 피곤하게 옭아맸다. 때론 믿음에 금이 가 발신자도 수신자도 진절머리가 날 만큼의 페이스톡을 하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거나 악에 받친 눈물을 흘리며 끝없이 질척거리기도 했다. (누가 누구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비밀에 부치겠다.) 그럴 때면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닌데 이상하게 헤어져지지가 않았다.

나는 싸우고 난 뒤 진정이 되면 거짓말처럼 H가 더 보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할퀴었던 기억을 삭제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H에게 안기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던 우리도 시간이 흐르자 서로에게 안정감을 찾아갔다. 덕분에 4,5년 차를 별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탈이 확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마침내 우리는 ‘서로의 못나고 예쁜 모습을 매일 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예단과 폐백, 상견례와 같은 여러 단계의 결정을 거치며 의기소침해졌다. 왠지 낭만주의자가 현실주의자에게 꾸짖음을 당하는 기분이었달까. 때문에 ‘결혼이 과연 좋은 결정일까’라는 불안함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예방접종을 하듯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갑작스레 돌변해 무시무시해지는 그런.

그럼에도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가 함께한 5년이 내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실없는 비트박스를 하며 날 웃겨주는 H를 좋아했다. 팔굽혀펴기를 잠깐 하곤 몸이 좋아진 것 같지 않냐며 한껏 근육을 과시하는 H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는 나의 장면을 좋아했다. 속초 여기저기를 하루 종일 걷다가 해 질 녘 해변가에 앉아, ‘딱 5분 만이야.’라며 내 통통한 종아리를 주물러 주는 H를 좋아했고, 찐 새우를 일일이 까주는 H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만큼 다 표현하는 나를, 다 드러내도 지겨워하지 않는 H를 좋아했다. 전남친1처럼 슈퍼갑이 되어 우리의 사이를 휘두르지 않아서 좋아했고, 전남친2처럼 나에게 모든 걸 맞추려고 하지 않아서 좋아했다.


지금도 우리 사이에 확신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만, H는 여전히 실없이 우습고 다정하다. 여전히 내 앞에서 보디빌더 자세로 근육을 뽐내고, 여전히 내 종아리도 주물러 준다. (다리가 아프다고 열 번쯤 말하면 마지못해 주물러주지만, 그래도.)


그래서 나는 확신의 순간 대신, 켜켜이 쌓아둔 좋은 순간들을 기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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