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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May 16. 2018

누군가는 항상 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호기심의 방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닌데...

* 영화 <원더스트럭>과 <졸업>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바로 집어 들었다. 일본의 북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요리후지 분페이가 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이란 에세이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기똥찬 비결이 담겨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치트키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그는 일본 최고의 광고회사 하쿠호도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직된 시스템과 높은 업무 강도, 그리고 광고대행업이라는 업계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부정한 돈을 받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라고 썼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을 거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요리후지 분페이가 선택한 길은 자신을 멸각(滅却)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고 로봇처럼 주어진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부조리하고 답답한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걸 마냥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인가? 분페이는 꼬박 3년을 그렇게 '멸각 기간'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닌데...

 

허지예, <졸업> 스틸컷 (사진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졸업>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졸업을 앞둔 해랑은 영화 미술감독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틴다.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 학교 수업과 과제, 그리고 밤샘 영화 현장일까지. "너 그러다 진짜 죽어!" 라며 걱정하는 친구의 말처럼, 이렇게 살다가는 완전히 소진되어 버리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죽어라 일만 하다 보니 문득
나는 온데간데 없더라


불쌍한 나의 선배와 달리 해랑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물론 그녀도 철인은 아니기 때문에 지치거나 울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해랑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언뜻 보면 그녀의 정신없는 졸업 학기는 분페이가 말한 '멸각 기간'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흥미로운 역설이다. 나를 지우고 묵묵히 버티면 버틸수록 더욱 밝게 빛나는 나.


토드 헤인즈, <원더스트럭> 스틸컷 (사진 출처 : 부산 영화의 전당)


우린 모두 진창 속에 있지만
누군가는 항상 별을 바라본다


영화 <원더스트럭>에서 수차례 반복되는 인용구다. 흔해 빠진 말 같지만 영화가 주는 큰 감동은 결국 이 문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해랑 혹은 요리후지 분페이가 자신의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토드 헤인즈의 <원더스트럭>은 '박물관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다룬 브라이언 셀즈닉의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박물관은 큐레이터가 자신의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이른바 '호기심의 방'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주제다. 벤의 아버지 대니가 만든 '호기심의 방'은  거대한 박물관의 모태일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 된다.


이 '호기심의 방'이 가진 가장 중요한 속성은 바로 확장성이다. 자기만의 큐레이션은 물론 자신의 관심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만 모아서는 수집광이 될 수 있을진 몰라도, 박물관과 같이 광활한 세계를 만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낯선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방의 크기를 넓혀나가야 하는 것이다. <원더스트럭>의 벤과 로즈가 자기 방에서 탈출하여 뉴욕으로 떠난 것처럼, 방문을 힘껏 열어제껴 보자.


호기심의 방, 박물관의 탄생 (사진 출처 : Rogerebert.com)


주인공 벤과 로즈는 저마다의 '별'을 찾아 떠난다. 벤은 누군지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고, 로즈는 유명한 여배우를 만나려는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원치 않는 사건들이다. 번개에 맞아 청각을 잃고,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겨우 만난 어머니에게 감금당할 뻔하고,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모험을 떠나는 순간 기대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말하자면 하쿠호도에 입사한 요리후지 분페이나, 영화 업계에 갓 뛰어든 해랑처럼 현실의 벽에 쾅! 부딪치는 순간이다. 중요한 건 벤과 로즈는 그런 상황에 닥쳐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예컨대 벤은 어렵게 찾아간 서점이 문을 닫은 것을 보고 실망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낯선 소년 제레미를 무작정 뒤쫓아 간다. 로즈 역시 어머니의 분장실에 갇히는 즉시 작은 창문을 빠져나와 달아난다. 멈추지 않고 별을 향해 계속 움직이는 아이들의 운동 에너지가 영화를 계속 굴러가게 하고, 각자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큐레이션에 정답은 없다. 불확정성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엇을 자신의 목록에 포함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온전히 탐험가의 몫이기도 하다. <원더스트럭>은 이것이야말로 박물관의 매력이자 삶의 진리이며, 선택이란 포기가 아니라 발견이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선생님은 어느쪽이세요? (사진 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다시 <졸업>의 이야기. 진로 상담을 받으러 온 해랑에게 교수는 묻는다. "너는 프로덕션 디자인 전공으로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커리어를 쌓고 싶은 거니?" 이게 보통 세상이 질문하는 방식이다.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는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해. 그런데 해랑은 해맑게 교수에게 되묻는다.


교수님은 아티스트와 커리어 중에
어느쪽이세요?


<원더스트럭>의 아이들처럼, <졸업>의 해랑 역시 포기가 아닌 발견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A와 B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윽박지를 때, 꼭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하냐고 반문하는 용기. '멸각 기간'은 나를 정말로 지워버리는 과정이 아니다. 벤과 로즈처럼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사회의 거센 조류에 몸을 맡긴 다음, 그 속에서 묵묵히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내가 가야할 새로운 길을 발견할 때까지!


<졸업>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촬영 스튜디오 셋팅을 마친 뒤 퇴근하려는 미술 감독 선배에게 해랑이 질문한다. "저 문 뒤쪽 방은 왜 안채우고 끝내나요?" 선배는 그 쪽은 촬영 앵글에 어차피 나오지 않을 거니 굳이 채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랑은 밤을 새워 기어코 빈 방을 완벽하게 꾸민다. 세상은 미련하다고 할지 몰라도 자신만의 원칙을 끝까지 고집하려는 태도. 진창 속에서도 저 먼 별빛을 계속 바라보는 자들.


좋아하는 것은 마치 반작용과 같습니다.
일이라는 거센 작용으로 단련되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요리후지 분페이의 전언. 아직은 눈앞이 캄캄하다.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자. 방문을 박차고, 불친절한 세상을 일단 반기고 보자. <원더스트럭>과 <졸업>은 그래도 아직 괜찮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영화였다. 저 멀리 다시 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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