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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Mar 13. 2021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내 마음의 작업관리자를 찾아서

Title Image © Jean Jullien


명상이 어떤 거냐면요. 왜 게임 같은 거 하다가 갑자기 멈추면 'ctrl + alt + delete'를 눌러서 작업관리자로 들어가잖아요. 명상은 내 마음의 작업관리자를 까는 훈련인 것 같아요. 패닉이 오면 '내 마음을 무슨 프로세스가 잡아먹고 있나' 제삼자처럼 살펴보는 메타인지를 기르는 거죠.
- 에스콰이어 3월호, SF9 로운 인터뷰 중 (인스타그램 <생각노트> 재인용)


최근 몇 달간 지배적인 감정은 불안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어렵다는 건 예상했었다.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며 스스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회사를 옮긴 것 아니었나?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불안은 좀처럼 통제하기 어려웠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손에 땀이 났다. 집에서도 걱정에 휩싸여 남은 일을 들춰보다가 밤을 새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는 게 처음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롤러코스터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들끓었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마. 내가 일을 다 망치면 어떡하지? 누구나 실패할 수 있어. 실패가 아니라 실력이 없는 게 아닐까? 빨리 배우고 성장하면 돼. 회사가 나를 기다려 줄까? 동료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나 혼자 삽질하고 있는 거 아닐까? 퇴근하고 터벅터벅 걷다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걱정이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난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불안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상황이 멀티태스킹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멀티태스킹은 좋지 않다. 불안하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일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일이 잘 되지 않으니 더 조급해진다. 이게 아닌가? 한참을 헤매다 보면 구글 크롬창에 탭이 수십 개다. 심지어 같은 탭도 여러 번 열었다. 이런 게 패닉이구나. 평화로운 사무실에서 내 마음만 폭풍우 속이었다.


도대체 왜 불안한 건데?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거였다. 주말 내내 끙끙대면서도 왜 불안한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여유가 생길라치면 업무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다.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걱정할 게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걱정만 모니터를 뒤덮은 브라우저 창처럼 쌓여갈 뿐이었다. 무한 로딩이 돌고 있는 브라우저 창을 아무리 새로고침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작업관리자를 켜고 문제가 되는 프로세스를 찾아야 한다.


멘토라고 생각하던 분께 연락을 드렸다. 일과 커리어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고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통화를 하면서 자신감이 크게 떨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본인의 장점을 절대 잊지 말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주눅이 들어서 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 자신감이 떨어진 이유를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나눠서 정리해보았다.  


내부적 요인 |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반적인 에너지 수준이 낮은 상태였다. 이전 직장에서 업무를 잘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려니 에너지가 달린다. 이건 스스로 채울 수밖에 없다. 운동, 명상 또는 필요에 따라 상담을 통해 에너지 총량을 늘려야 한다.


내부적 요인 |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한 편이라 새로운 환경에서 신경이 곤두서있다. (다들 그런지 몰랐다고 하는데 안그런 척 하려고 에너지를 엄청 쓰는 것이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외부적 요인 |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피드백이 중요한 사람인데 정작 스스로 피드백을 외부에 잘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성적인 성격까지 겹쳐 동료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쉽게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외부적 요인 |  해결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문제가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게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불안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괜히 아는 척 하다가 작은 불씨가 산불이 될 수 있다.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해결 방안이 보였다. 때마침  리더에게 피드백을 받을  있는 시간이 있었다. 팀원들이 바라보는 나는 주눅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와 많이 달랐다. 잘하고 있는 일도 많았고 단점은 조금만 노력하면 극복할  있는 문제였다. 본인의 성취를 사기 또는 운이라 생각하는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성향이 있는  아닌가 스스로 돌아보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도우면 될까요?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보다 도움을 청하는 일이 조금 더 어려웠다. 면담을 하면서 팀 리더는 내게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계속 물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매니저가 어떻게 도움울 줄 수 있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매니저가 먼저 면담에서 물어봐주니 언제든 도움을 청해도 된다고 승인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한바탕 정리를 하고 나니 브라우저 창이 몇 개는 꺼진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불안의 조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주어진 과제는 망망대해처럼 느껴지고 매일 일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아마도 잘못된 선택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이 아니면 어떡하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속으로 "I'm Screwed" (난 망했어) 라고 크게 외칠 때가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에서 최다은 PD가 "불협의 협화"를 재즈의 중요한 속성이라며 인용했던 피트 닥터, 캠프 파워스 감독의 인터뷰가 이럴 때 큰 위안이 된다. 불협화음도 멋진 음악으로 만드는 법, 틀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


어느 날 재즈 거장 허비 행콕이 투어 중에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공연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상을 보게 됐다.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은 그 투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무대였는데 그만 허비가 음을 틀린 거다. 너무 큰 실수라서 그는 콘서트를 통째로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마일스가 곧바로 이어 연주를 하더라는 거다. 허비가 틀린 부분을 틀린 것이 아니게 만들어주는 음을 연주했다고. 한마디로 마일스는 허비가 연주한 음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새롭게 일어난 일로 받아들인 후 재즈 뮤지션이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계획을 벗어났다고 버리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을 뭔가 값진 것으로 만드는 것.


재즈 밴드의 적당한 긴장감을 언제나 유지할 수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내가 틀린 음을 칠 때 괜찮다고, 아주 틀린 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멘토나 매니저를 찾아갔던 것처럼. 불안에 휩싸이거든 좋은 동료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업관리자를 열어봐야 한다. 시스템이 뻗어 버렸다고 SOS 알림창을 열심히 띄워야 한다.


고작 천만 명이 쓰는 앱일 뿐이야


예전에 일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좋아하던 팀장님이 말했다. 70억 지구에서 고작 천만 명이 쓰는 앱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전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한낱 티끌일 뿐이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하고 잘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낙담할 필요 없다고. 세상에 너에게 이 일보다 소중한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누군가 정신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디스크 조각모음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의 부스러기가 마음에 한 가득이라면 디스크 조각모음을 실행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실행해서 마음 속 여유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두어야 한다. (오늘 디스크 정리 완료)


바다 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 정도가 세상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서퍼는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부표나 지푸라기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파도에 의해 좌지우지 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멋진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내가 패배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음악을 즐겁게 듣고,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창작을 해나가면 그만이다. 마치 서퍼가 거대한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자신을 슬퍼하지 않고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나아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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