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첫 신호
* 시작하는 글
그룹 내 커플이었던 우리는 결국 둘 다 '脫삼성'을 했고, 각자의 두 번째 인생을 계획 중이었다.
그러다 결정된 남편의 중국 행. 기간이 꽤 되기에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름이 시작할 무렵, 우리는 중국의 심천으로 왔다.
둘만의 여행.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겠지
지난 6월 말. 심천으로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뜨거운 햇빛을 뚫고 시안(西安) 여행을 떠났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 땀을 쏟아내며 투어를 했고, 현지식을 먹으며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유난히 난 힘들었고, 아직은 낯선 심천의 집이 너무 그리웠다. 내 체력이 이 며칠의 여행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닐 텐데. 애꿎은 서른의 '3'을 원망하며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뒤척였다.
그 전날 SNS에서 보았던 속초의 물회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며칠 동안 먹었던 중국 음식을 떠올리니 한국음식의 새콤+매콤함이 더욱더 그리워졌다.
그런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어느새 난 삼십 대가 되었고, 아직은 낯선 중국이고, 익숙지 않은 음식에 며칠간 도전했고, 땡볕에서 걸었다. 그래서 그렇게 피곤하고, 속이 아프고, 한국 음식이 떠오르는 줄 알았다.
워낙 예측할 수 없는 주기를 갖고 있었던 터라, 두 달 동안 생리가 없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3개월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작년 여름 즈음에는 '다낭성 난소증후근'을 판정받았기에 -더욱더 확실하게- 아무 증상 없는 내가 어색하지 않았다.
"나 여기에 있어요"
돌아온 다음 날. 신랑이 깜짝 놀랄 만큼 늦잠을 자버린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쌔-하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급하게 사 왔던 테스트기를 한 손에 들고 조용히 화장실로 갔다.
.
..
...
"오빠, 이것 좀 봐"
'나 여기에 있어요'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는 아가의 신호. 나중에 한국 돌아가고 난 후 난임치료까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 놀랐던 테스트 결과. 예전에 테스트기를 곱게 포장해 남편에게 알리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막상 현실에서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언젠가는 나도 엄마가 되겠구나 생각하긴 했었다. 남편의 나이(+내 나이도..?)를 고려하면 더 늦어도 안 되겠구나 생각하긴 했었다. 나중에 아가가 생기면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하긴 했었다. 어떻게 키워야 더 현명한 어른으로 살아가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일 줄은 몰랐다.
정말 기다렸지만 시기를 예측할 수 없었던 그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생각보다 조심스러워진다. '엄마'와 '부모'. 가볍지만은 않은 그 단어의 무게.
생각보다 담담했고, 떨리고 반갑고 기쁘고 신기했다.
그래 너였구나.
중국도 여행 때문도 아닌 너의 신호였구나. 이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우리가 같이 있구나.
정말 반가워. 행복하게 지내고 만나자 :]
아가야.
그동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너의 신호를 좀 늦게 알아차렸나 봐. 천사같이 찾아와 존재를 알려준 너 :)
아직 우리가 언제쯤 만날지 건강히 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곧 건강한 심장소리로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좀 더 행복한 기분으로 좀 더 건강한 몸으로 우리 만날 수 있도록 많이 준비하고 노력할게.
곧 만나자.
/201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