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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05. 2021

삶은 바보 같이 참 낭만적이다

운전 중 카오디오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플레이리스트에 담은 곡은 아니었다. 요새 모든 서비스들이 그렇듯 자동추천에 맞추어 알아서 재생된 모양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던 것이 어느 순간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별다를 것 없던 그 날, 그 노래의 가사가 마침 그랬다.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생애 한 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 건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이적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에 나오는 가사이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애틋함과 후회가 담겨 있다. 미처 알지 못했다는 것 중의적 표현이어서 후회뿐 아니라 앞으로 또 다가올 사랑에 대한 기대도 포함되나 싶었지만, 앞의 가사에 자신을 '작고 어리석은 아이'로 표현한 것으로 봐서 그것은 아닌 듯하다.


문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떠올랐다. 주성치 주연의 1994년작 <서유기> 시리즈이다. 월광보합, 선리기연이라는 부제로 2편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하와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은 선리기연을 좋아한다. 손오공이 우마왕으로부터 삼장법사와 자하를 구하기 위해 다시금 힘을 얻으려면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야만 했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금고아를 머리에 쓰기 전,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나지막이 내뱉는다.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 그리고 그걸 잃고 나서야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만약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기한을 정하라고 한다면 만 년으로 하겠소."


특히 마지막 구절은 여기저기서 패러디할 만큼 유명한 대사이기도 하다. 한 번 본 영화는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내가 서유기만큼은 10번을 보았다. 그만큼 영화 속 애틋한 마음과 후회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다. 혹자는 후회 또한 과거를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정표이므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후회를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기에 어떻게든 시간과 함께 어물쩡 넘어간다.


후회를 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내 삶에서 아쉬웠던 순간을 곱씹어 보았다. 정말 노래의 가사처럼 언젠가 있었던 일이 생애 한 번 뜨거운 설렘이었을까.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을 만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영혼의 반쪽을 찾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인연이었다면 죽음 외에 영혼을 분리시킬 수 있 만한 강력한 사건은 없을 터. 이미 분리된 지 오래라면 애초에 영혼의 반쪽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뜨거워질 날은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인연이 생애 단 한 번 뜨거운 설렘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다만 그렇게 믿었던 적도 있고, 알면서도 앞으로 또 믿을 것이기에 삶은 바보 같이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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