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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29. 2021

질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살다 보면 종종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대답한다. 대답의 영역은 다양하다. 정답을 말할 수도 있지만 아마 오답이 더 많을 것이고 모른다고 대답할 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해볼 여지가 없는 이치이다. 그래서 질문에는 질문으로 응수하는 일이 적은지도 모른다.


가끔 답이 없는 질문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애를 쓴다. 그 질문이 정말 맞는 질문인지 묻지 않는다. 당연히 먼저 대답부터 해야 하는 것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대답을 고민한다. 질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대답만 찾아 헤매는 경우도 있다.


전혀 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을 들었다면 혹시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선생님이 답이 없는 문제를 시험문제로 냈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잘못이다. 문제를 푸는 학생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시험시간에 쫓기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의심하기보다는 답을 찾는 데 몰두할 것이다.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꽤 많은 답을 대입해 보아야 한다. 수많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지막에 문제를 의심할 수 있다. 사실 그 상황에서 또 다른 답을 찾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시험이기 때문에 대충 무엇이라도 답 하나는 써놓고 넘어간다.


지금보다 좀 더 어린 시절, 한 친구랑 맨날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있었다. 인생은 왜 사는 거냐, 인생의 의미는 뭐냐 같은 질문이었다. 그냥 사는 거지,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질문을 했으니 대답을 한 것뿐이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산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그냥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인생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답이 없다는 답을 들으며 질문을 허공에 날리고 안 그래도 힘든 인생 괜히 힘 빠지는 대답만 들은 셈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답이 없는 질문에서 자꾸 답을 찾으려고 했다. 질문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답이 없는 질문이라면 답이 있는 질문으로 살짝 바꿔주면 된다. 나는 인생을 왜 사는 거야, 나는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거야 같은 질문처럼 말이다. 주체가 '나'가 된다면 분명 대답할 수 있다. 나의 인생에서는 내가 대답하는 것이 곧 정답이 될 테니 말이다.


답을 모르겠으면 섣불리 모른다고 대답하기보다는 질문부터 의심할 필요가 있다. 모르는 것도 하나의 답이라서 모른다고 얘기한 순간, 어쩌면 해당 문제의 가치는 거기서 끝나버릴 수 있다. 큰 가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질문을 그렇게 끝내고 마는 것은 매우 아까운 행위이다. 그러니 대답하기 전에 질문을 의심하고 조금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답이란 결국 질문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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