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무언가 있는 듯한데 도통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 사람. 생각을 쉬이 밝히지 않으므로 그런 이들은 대체로 신비로운 모습을 띠고 있다. 사건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사건의 종결을 위한 통찰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여타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 대화를 나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실제로 그런 이들은 보통 조용하다.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용히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살짝 이질적인 행동을 한다. 그런 이들에 대해 함부로 의견을 내리는 것은 실례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결론을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실제로 아무 생각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이다. 단순하게 내 눈으로 판단한 것만 믿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이 없으면서 있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오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상상의 종족이다. 그 상상은 지금의 문명으로 발전하기까지 많은 기여를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함으로써 가상의 실재화를 이루어냈다. 무언가를 바라만 보아도 그 이면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게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사물에게만 적용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볼 때도 역시나 기대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내재한 존재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기에 대부분 상대를 몇 가지 증거로 쉽게 일반화하는 행위는 자제한다. 그러나 오히려 상대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갈등이 조장되는 경우가 있다. 별 것 아닌 한 마디에도 수많은 의미를 조성하여 상대의 진심을 머릿속에서 혼자 상상하곤 한다. '뭐해'라는 한 마디가 상대에 대한 생사 확인부터 이성적인 관심까지 의미가 널리 확장된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끌어들여 이면의 의미를 파악한다. 그런데 너무 복잡해지다 보면 오히려 정답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이디어 회의가 시간제한 없이 길어질수록 주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이다. 요새는 단순하게 세상과 사람, 사물을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지만, 보고 있는 것 너머로 자꾸 해석하다 보면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곤 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날로 복잡한 세상 속에서 똑같이 복잡해질 필요는 없다. 조금은 단순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