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식물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쑤 Jun 14. 2016

유칼립투스 실버드롭: 인심이 후한 은행

(2016.6.10.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포함)


유칼립투스는 그 어떤 식물보다도 물과 햇빛과 바람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우리집 유칼립투스는 우리집을 통틀어 가장 햇빛과 바람이 많은 곳, 베란다 밖에 걸린 베란다걸이에 산다.  


유칼립투스는 많이 먹는 만큼 쭉쭉 자라난다. 동그란 잎들이 자글자글 달리면서 사방팔방 가지들이 뻗어간다. 지난 3월에 들였는데, 들인지 딱 세 달 되는 어제보니 그새 22센티가 자랐다. 대박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이맘 때쯤에는 내 키를 넘길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벌써 한차례 가지치기도 하여 나름의 소소한 수확도 하였다. 쿰쿰하면서도 알싸하면서도 쏴—하는, 독특하다고밖에 표현을 잘 못하겠는 희한하게 좋은 향이 나는 유칼립투스는 포푸리로 쓰거나 집안 곳곳에 매달아 놓고 말리기에 좋다.


비닐포트화분에 담긴 베이비식물들을 사면서도, 한쪽에 멋드러지게 웅장하게 서있는 큰 식물들을 가리키며, 얼마나 키우면 저렇게크게 되나요, 라고 물으면, 화원주인의 답은 대체로, 잘 키워야 5-6년이다. 대부분 과연 그렇게 키워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유칼립투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2-3년만 키워도 대품이 될것 같다. 천장까지 닿을 법한 주렁주렁한 대형 유칼립투스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눈에 띄게 자라나는 유칼립투스를 보면, 반찬값이나마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면서, 꼬물꼬물 늘어붙는 이자와 함께 조금씩 목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뿌듯하고 배부르고 달달했던 기분이 떠오른다. 그러나,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보라 아부지가, "쪼까내려서 인자는 십오푸로 밖에 안준다"고 하던 은행금리는 이제 코웃음나게 비현실적인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몽글몽글 돈을불려주는 적금은 없다.


응팔 이후 불과 삼십년, 우리 사회에서는 비단 은행금리만 뿐만이아니라,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보상 시스템도 사라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허리띠 졸라 매면 잘 살 수 있고, 좀 더 빡세게 하면 개천에서 용날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없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도처에서 보인다. 금수저니 은수저니하며 대물림되는 자산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고난한 세상살이가 되었다.


내게 자녀가 있다면, 열심히 살면 된다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고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라도 쥐어주려고 더더더 박차를 가해 이 한몸 굴리려고 할까.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보상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풍풍풍 잘도 커나가는 유칼립투스를 보며 생각한다. 첫 판부터 대품 유칼립투스를 들이지 않아도 베이비 유칼립투스를 키우다보면 머지 않은 미래에 아주 자연스레 대품을 꿈꿔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면 유칼립투스는 참 인심이 후한 은행이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 유통명: 유칼립투스 실버드롭

학명: Eucalyptus gunnii

영명: Cider gum

생물학적 분류: 피자식물문 쌍떡잎식물강 도금양과

원산지: 호주 남부지역에서 자생하며, 종류가 약 700~80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햇빛:

유칼립투스는 햇빛 없으면 시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어디에 나왔던 말을 빌려 좀 뻥을 튀기면,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건 8할이 햇빛일 것이다. 밝은 정도로는 부족하고 직광만이 진리인 식물이다.


바람:

환기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야외에 있는 듯 바람이 항상 솔솔솔 드나들어야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물주기:

유칼립투스는 물먹는 하마다. 나무 목대만 보면 가느다랗기만 한 것이 비리비리한 멀대 같은데 흙 속의 뿌리는 걸신이 들린 것처럼 물을 좍좍 빨아들이나 보다. 다른 식물보다 물이 마르는 속도가 확연히 빠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식물에 물주는 것에 인색한 성향을 갖고 있어서, 유칼립투스에 물 줄 때는 노력을 한다, 최대한 자주 주려고. 겉흙의 색깔이 좀 말랐나 싶으면 손가락을 쑤셔보고는 축축한가 아닌가 헷갈릴  때 물을 흠뻑 준다. 물주는 것을 아끼면, 유칼립투스의 은회색 잎이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기도 한다는데, 색은 비록 오묘할지언정 이건 유칼립투스 잎이 갈증을 견디다 노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내한성/월동:

유칼립투스는 종에 따라서 차이가 있으나, 내한성이 약한 편이다. 실버드롭의 경우 영하 10도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데 마음 편히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개개의 실버드롭이 겨울을 나기 전까지 어떤 환경에 적응해왔느냐에 따라 월동 내공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노지 월동은 일부 종 (스노우검 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되고, 대신 베란다에 놔둬도 되는 종들은 좀 있다고 한다 (실버드롭, 베이비블루 등).


성장속도:

호주 같은 나라의 노지에서 햇빛 쨍쨍 받고 자라면 70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하는데, 이 건 본적 없으니 모르겠지만, 빨리 자라긴 정말 빨리 자라는 것 같다. 키워보니 봄여름 시기에 한달에 7~10센티 정도 자라났다.  말그대로 폭풍성장. 화분에서 키우는 경우, 오히려 빠른 성장을 감당 못하여, 작게 키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한편, 성장은 빨리 하는데 중심목대가 가늘어 목을 못 가누는 경우가 많으니 지지대를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번식:  

씨앗발아가 정말 쉽다. 접시에 키친타올을 놓고 물을 흥건하게 해놓은 데다가 씨앗을 놔두면, 거짓말처럼 2-3일내로 발아한다. 콩나물 자라듯 뿌리가 난다. 이 때가 아니면 물 먹을 때가 없다라는 듯 정신없이 발아한다. 나로 하여금 가드닝의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쭐하게 한다. 반면에 삽목은 아주아주 어렵다고 한다. 나는 삽목 시도를 직접 해보지는 않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유칼립투스 삽목은 안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삽목은 시도해볼 생각 없다.   


매력 포인트:

종에 따라서 모양이 각양각색이지만, 우리나라에 알려진 (특히 꽃다발에 많이 들어가는) 유칼립투스는, 실버드롭과 베이비블루와 같은 동글동글 자글자글한 동전 같은 잎일 것이다. 동글동글 맞붙어 나는 잎의 모양도 그렇지만, 그 은회색 색감이 특이하고 특별한 매력을 지닌다. 향기도 알싸하고 쿰쿰하면서도 희한하게 상쾌하다.


유의사항:

잎을 먹지 말 것. 유칼립투스 중 일부 종 (유칼립투스 라디아타 등)의 에센셜 오일이 치료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먹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유칼립투스가 코알라밥으로 알려진 것처럼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를 따먹는데, 그런 코알라가 말그대로 먹는 시간 빼고 하루종일 자는 이유는, 유칼립투스를 따먹고서 그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보너스:

드라이플라워의 여왕이라고 생각한다. 줄기를 잘라서 걸어놓으면 장식용으로도 좋고 향도 좋다. 나는 포푸리용 망사 주머니에 실버드롭 잎과 줄기를 넣어서 화장실 변기 옆에 두었다. 꽤 좋다.


[붙임]

2017년 7월의 유칼립투스. 제주도에 사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에게 입양보냈더니 쑥쑥 자라서 이제는 내 키도 넘어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율마: 딱 맞지는 않는 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