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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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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Aug 19. 2017

행운목: 소원이자 약속

우리집 거실에서 베란다를 바라보며 자리잡은 행운목은 사실 나무둥치가 삼분의 일 정도는 썩어있다. 썩은 부분이 훵하니 뚫려 있어서, 행운목이 제 몸의 무게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 한 쪽으로 쏠려 기울여질까봐 썩은 부분 속에 흙을 꾹꾹 채워 넣어두었다. 행운목의 나무둥치는 여섯 개의 나무줄기(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가 싶지만)로 갈라져 있는데, 그 절반인 세 개에서는 잎이 나지 않는다. 둥치도 썩은 채로 그대로, 둥치 쪽 나무줄기도 생장이 멈춘 채 그대로인 것이다.


2년반전 쯤에 엄마가 엄마집에서 키우던 것을 내게 주었을 때는 이렇게 썩었는데도 잘 살까 싶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썩었는데도 어쩜 이리 잘 살까, 하게 되었다. 그 사이 몸집이 두 배는 커진 것 같고, 행운목 특유의 기다랗고 매끈한 잎들은 풍성함을 뽐내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가장 거대한 식물이다.


행운목의 기다란 잎들은 둥그런 아치형을 그린다. 처음에 중심부에서 잎이 나올 때는 돌돌 말린 채로 꼿꼿이 직립한 듯 솟아나오던 것이 점차로 정면이 아닌 하늘을 응시하면서 뒤로 젖혀진다. 우리집 행운목이 몸집이 커서 잎파리들이 워낙 길고 무성한 이유도 있겠지만, 이러한 아치형 잎들의 모양은 분수대를 생각나게 한다. 행운목의 둥치가 분수대라면 행운목의 잎들은 분수대의 물줄기들같다.

분수대 앞에 서면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고 동전을 던지면서는 작든 크든 소원을 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는 하루에 삼천유로 정도의 동전이 쌓인다고 하니 인간의 소원빌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성하고 지칠 줄 모른다. 소원을 빈다는 것은 자신이 희망하는 일, 꿈꾸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것일텐데, 분수대의 연못에 동전을 던질 때에는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어느 지점을 조준하여 던지므로 동전이 그 지점에 딱 들어맞으면 웬지 자신의 꿈이 정말로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또 분수대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는 것은 자신이 평소에 줄곧 마음 속으로 꿈꾸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일 테니,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일이라면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 것 외에도 많은 노력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것이므로 그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꽤 있을 것이고 막상 이뤄졌을 때는 분수대 덕이라고 즐거운 회상을 할 수도 있다.


행운목을 바라보며 분수대를 생각하고 있자니, 내가 그간 던진 동전들에 담은 소원들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나는 굵직한 소원이나 멋진 꿈이 없었다. 어린 친구들이 공부나 일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사실 그런 또렷한 주관이나 소신이 없었다.인정하건대, 내 소원의 대부분은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이었다. 어서 돈을 벌고 또 더 많이 벌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고, 갖지못해서 서러웠던 것들을 보상하고 싶은 마음만이 줄곧 있었다.


행운목의 꽃말은 “약속을 실행하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행운목이라는 이름 그대로 행운과 관련된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누가 무슨 사연에서 ‘약속 실행’의 말을 행운목에 주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분수대처럼 생긴 행운목 앞에서 꿈을 염원한다는 것은 그 꿈을 위해 자신이 노력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라고 내 멋대로 행운목의 꽃말을해석해본다. 네가 소망하고 꿈꾸는 게 있다고? 그럼 뭔가를해야지, 하고 행운목이 얘기하면 나는 응 그럴게, 라고 약속하는것이다. 날짜를 구체적으로 적으면 꿈은 목표가 되고, 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정하면 계획이 되며, 그 계획에 따라 실행하면 비로소 꿈이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꿈꾸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은 역시 노력과 실행이 있어야 하는것이고, 이것은 어찌 보면 꿈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노력을 하고 계획한 바를 실행한다고 해서 언제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과습이 안 되도록 물을 주고 화분을 돌려가며 햇빛도 고루 쐬어 주고 통풍이 잘 되도록 신경 써주고 분무기로 물을 뿜어주면서 습도를 맞춰 주고 하는 등 애쓴다고 해서 행운목의 꽃이 매년 피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정성도 들이고 관심도 기울였는데 벌레가 생기고 잎이 마르고 둥치가 썩을 수도 있다. 언제나 노력이 결실을 맺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행운을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몇 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던 행운목에 어느 해 돌연 꽃이 피어나서 향기가 진동하면 행운이 온 듯 기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행운목을 돌보고 가꾸고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 언제일지는 모르되 꽃을 기약할 수 있듯이, 노력과 행동이 있어야 꿈의 실현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실행’이라는 것도 사실 쉽지 않지만, 그에 앞서 소원과 꿈 자체가 허망한 것은 아닌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지금도 생생한, 돈에 대한 나의 허망한 기억 하나가 있다. 대학생 시절 러시아어 번역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맡은 번역은 어떤 프리랜서가 의뢰한 것으로 70만원이라는 거금의 번역료가 걸려 있었다. 나의 번역물을 받아본 의뢰인은 최종 검토를 함께 한 후에 현금으로 번역료를 주겠다며 자신의 오피스텔로 오라고 했다. 뭔가 찜찜했지만, 번역료를 빨리 받아서 사고 싶은 것들이 눈 앞에 금세라도 잡힐 것 같은 마음이 더 다급했었다.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오피스텔로 찾아가던 나는 그러나, 오피스텔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과 함께 하게 된다는 두려움에 가방 안에 칼을 챙겨갔다.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긴 하지만, 어쨌든 다행히 흉기 쓸 일 없이 돈 봉투를 손에 넣었다. 당시 나는 구로구 개봉동에 살고 있었는데, 화곡동에서 개봉동으로 남부순환로를 따라 가는 버스에 타서 자리를 잡은 나는 내 귀한 돈 봉투가 무사히 잘 있나를 수시로 확인했다. 자리에 앉은 채로 가방을 벌려서 들여다봤다가 꺼내서 손에 들었다가 다시 가방에 넣었다가를 반복했다.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돈 봉투가 어딘가로 없어질 것 같았다.그러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남부순환도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귀한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데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가방 속 물건들을 길가에 다 쏟아냈는데도 돈 봉투가 없었다. 나는 컴컴한 밤, 남부순환도로 옆 잡초투성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콧물도 엄청 나와서 소맷부리도 닦았더니 옷소매 언저리가 온통 물컹한 콧물 범벅이 되어 버렸었다.


대학생 시절의 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한번쯤은 나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좀 사고 싶었고, 그래서 그 번역일은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자고 혼자 작정했었더랬다. 나는 그 때 ‘메이커’ 옷이 정말 너무 입고 싶었다. 그런데 이십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그 때의 허망함과 서러움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은 고스란히 기억이 나지만, 메이커 옷에 대한 내 소원의 절실함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절실한 소원은 내가 계획도 하고 실행도 했지만 결국 꽝이었다. 사실 이 부분이 씁쓸하다. 돈 봉투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메이커 옷을 못 사서 꽝이 나버린 것이 씁쓸한 것이 아니라, 소원을 품고 열심히 실행은 했으되 그 소원 자체가 허망한 것이었다는 것이 씁쓸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쓰잘데기 하나 없었던 미숙하고 어리석은 탐욕이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재의 나이 든 나도 소원의 모양새를 한 탐욕을 품고 있고, 소원이랍시고 나를 닥달하고 현재에 조급해 하고 있다. 내가 지금갖고 있는 탐욕들은 어쩌면 나중에 돌아볼 때 별로 기억도 안 날 ‘메이커 옷’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부디 나는 현명해져야 하고 보다 본질에 충실해져야한다. 영화 ‘곡성’에서 나왔던, “뭣이 중헌디”라는 말처럼 말이다.


우리집 행운목이 둥치가 썩었음에도 불구하고 푸르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의 허망한 욕심들에도 불구하고 또, 지나간 나의 어리석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헛되지 않은 바램과 꿈들로 풍성하고 여유롭게 살아가야 겠다. 꿈을 꾼다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 나를 가두고 괴롭히는 일이 되선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오늘 행운목 앞에서 되뇌인 소원이고 약속이다. 연금복권부터 이제 그만 사야겠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유통명: 행운목

학명: Dracaena

영명: Dracaena

생물학적 분류 (문/강/목/과/속): 속씨식물문 외떡잎식물강 아스파라거스목 아스파라거스과 드라세나속 (“백합목 백합과”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음)

원산지: 동반구 열대지방


햇빛:

우리집 행운목은 베란다의 안쪽창, 그러니까 거실에 자리잡고 있다. 남향 베란다긴 해도 베란다를 한 번 거쳐 들어오는 햇빛이므로 거실에서는 그리 햇살이 세지 않고 환한 수준이다. 이렇게 직광이 아닌 환한 햇빛이 행운목에 알맞은 것 같다. 행운목의 기다란 잎은 맨질맨질하고 질겨보이지만 의외로 약해서 햇빛이 너무 강하면 타들어간다고 한다.


바람:

집에 있을 때는 환기를 자주 시키는 편이긴 해도 직장인인지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결과적으로 거실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 때가 꽤 있다. 그래도 여태 무탈한 것을 보면 완벽한 통풍이 되지 않아도 간간이 이루어지는 환기라면 버틸 수 있는 식물인가보다. 햇빛에 더해 바람에도 까다롭지 않으니 역시 거실에 두고 함께 하기 좋은 식물이다.


물주기:

물주기에 크게 애를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화분이 클수록 물을 조금 덜 자주 줘야 한다는 말도 있고 물을 자주 주면 줄기가 썩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집 행운목의 화분도 꽤 크지만 그래도 토분이라 통기성이 좋아 그런지 과습 문제는 없었다. 참고로, 흙이 마르고물이 모자란다 싶으면 잎의 꼬불함이 격해진다. 평상시 무탈할 때는 잔잔한 파도였다가 가뭄이 들면 요동치는 파도가 된다고 할까.


내한성/월동:

열대지방이 원산이라서 적정 온도가 20~30도이고 겨울에도 10~15도 이상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한다. 월동 걱정하지 말고 거실에서 키우면 될 것이다.


성장:

행운목의 키를 재보지는 않았는데 2년전쯤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어마하게 성장했다. 새 잎이 자꾸 나오면서 키가 많이 컸는데 그에 반해 시들어서 떨어진 잎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딱 보기 좋은데, 내년쯤이면 자꾸만 키가 크는 줄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해야 할것 같다.


번식:

줄기를 잘라서 모래에 삽목하면 된다고 하는데 아직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다만, 나무토막과 다름 없는 작은 행운목을 물에 담가 놓으면 반년쯤 지나 뿌리가 난다고 하고 그 뿌리난 행운목을 화분에 옮겨 심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작은 나무토막 행운목 하나를 물그릇에 담아둔지 어언 3개월째이지만 아직 뿌리는 안 나고 있긴 하다.


매력포인트:

기다랗고 맨들한 잎들이 드레스 치맛자락이 나풀거리듯 하다. 행운목의 나무둥치가 분수대 물 나오는 곳이라면 행운목의 치렁치렁한 잎들은 분수대에서 나와 아치형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들이다.


유의사항:

우리집에 올 때부터 이미 둥치가 일부 썩어 있었지만, 그 외 벌레가 생기거나 잎이 타거나 잎에 반점이 생기거나 한 적은 없으니, 거실 창가 정도의 햇빛과 환기 정도면 무탈하게 실내 반려식물로써 함께 할 수 있는 식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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