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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Mar 02. 2019

젊은 문화기획자들의 아지트 | 평창 감자꽃스튜디오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 [강원] 어디가시나들 Season 1

<어디가시나들>은 서울토박이&경기토박이로 자란 두 가시나들의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평일엔 도시에서 쳇바퀴를 굴리며 살다가, 주말이면 로컬 청년을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가시나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모든 용기 있는 시도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좋은 것들을 그러모읍니다. 



(feat. 베짱이농부, 산너머음악공방)


난 폐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왠 폐교?’ 의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전국 곳곳의 폐교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제주 김영갑갤러리, 밀양연극촌, 아미미술관 모두 문닫은 학교를 재활용한 공간이다. 

감자꽃스튜디오는 평창에 있는 폐교인 노산분교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근데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여기가 폐교인 줄 몰랐을 거다. 첫 번째 이유. 깨끗하다.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교실 한 칸을 쓸고 닦는 데도 열 명 이상이 달라붙었다. 요즘 실지로 그 공간을 문화시설로 임대해서 쓰는 사람은 개인 단위다. 드넓은 학교 건물 전체를 청소하는 건 여간히 바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열심히 치워도 깨끗해지기는 어렵고, 조금만 게을러도 티가 확 나는 게 오래된 건물의 숙명이다. 적어도 세 명 이상이 이 공간을 아지트로 삼고 있고, 수많은 방문객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감자꽃스튜디오는 화장실에서부터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쓰이는 방까지 누가 막 청소를 마친 것처럼 깨끗했다. 가히 폐교계의 모델하우스다. (청소는 한 사람만 한다는 소문이…^^;) 두 번째 이유. 건물이 세련되게 현대식 화장을 했다. 평창군, 강원도, 문화부의 지원을 받고 이종호 건축가의 설계로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옛날 학교 건물은 그대로 두고 전면에 아트리움을 멋지게 증축해서 학교를 포장했다. 지역 주민들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공간은 살리고 모던한 아트리움이 주는 아름다움과 실용성은 잡았다. 철골로 골조를 세우고, 겉은 특수 유리로 포장해서 외부에서 봤을 때는 여기가 학교인지 현대미술관인지 모를 만큼 예쁘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덜 더운 건 덤이다.

아트리움 안에서 보이는 학교 밖 풍경

깨끗하고 세련되게, 평창에서 감자꽃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문화기획자 이선철 대표다. 서울과 평창의 문화예술판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로 민-관-학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서울 생활에서 건강을 잃고 몸무게를 얻어 2002년도에 좀 더 가볍게 살기 위해 강원도 평창 산골 마을로 내려왔다. 학교 교실 한 칸 고쳐 살던 살림살이가 평창 산골의 어엿한 문화 스튜디오로 확장됐다. 2018년, ‘감자꽃’이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5년 째. 책도 보고 영화도 보러 공간에 놀러 오던 청소년들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난 시간이다. 이제 감자꽃스튜디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도 둘이나 된다. 남겨진 공간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베짱이농부’가 사는 느린 텃밭과 커다란 부엌

학교의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부엌 공간 ‘이종욱 키친’이다. 주방 기구를 기부한 백조표 이종욱 사장의 이름을 땄다. 이곳은 감자꽃스튜디오를 아지트처럼 쓰고 있는 ‘베짱이농부’(최지훈)가 주로 머무는 공간이다. 키친 바로 앞 아트리움 공간에는 작은 텃밭이 있는데 그가 유기농으로 가꾸는 작고 예쁜 것들이 자란다. 사실 이 텃밭은 일부에 불과하다. 베짱이농부는 가족과 함께 몇 만 평의 농사를 짓는 농부다. 그런데 그냥 농부가 아니라 ‘크리에이터 파머’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평창의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이것저것 재미난 일을 모색한다. 평창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던 그가 20대 후반 다시 평창으로 돌아왔을 때 평창에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특별한 목표가 있거나 뭔가 해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별일 없는 시골살이에서 일을 만들며 살다 보니 평창이 좋아졌다. 친구들도 생겼다. 평창에서 창업한 청년들이 함께하는 모임 ‘별난청년들’을 만들고 직접 키운 농산물로 틈틈이 주제가 있는 ‘아트 다이닝’을 연다. 올봄에는 1박 2일 동안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와 평창〮정선 지역에서의 다이닝투어 <2018 봄소풍>(5.26~27)도 개최했다. 오래 전부터 감자꽃을 찾았던 사람들과 평창의 청년들이 함께 공간을 꾸미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행사였다. 올가을엔 또 무슨 일이 열릴까. 농사도 짓고 요리도 짓고 글도 쓰고 행사도 기획하는 다재다능한 베짱이농부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블로그를 참조할 것! blog.naver.com/diamsla


뚝딱뚝딱 손재주 좋은 음악 목수의 ‘산너머음악공방’

평창고에 대일밴드라는 학생 락밴드가 있다. 크게 하나를 이루자는 야심을 가진 이 밴드의 1기이자 기타리스트를 맡았던 안병근.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용음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연주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대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고, 지역 학교와 기관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하며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잡아주는 음향엔지니어로 활약한다. 평창군청 로고송이나 지역 축제 음악을 만들고 아카펠라 그룹 ‘별의별’ 등이 그와 함께 녹음을 마쳤다. 감자꽃스튜디오 2층에 있는 커다란 강당 겸 합주녹음실이 그의 일터다. 만약 악기를 계속했으면 하기 어려웠을 일이지만, 그는 타고난 손재주를 살려 이곳에서 목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예전 이선철 대표가 처음 짐을 풀었던 한 칸짜리 역사적 교실을 커다란 목공방으로 바꾸어 나무를 깎고 다듬는 목공 작업을 한다. 뚝딱뚝딱 음악도 만들고 나무 제품도 만드는 ‘산너머음악공방’이다. 목공실 안을 들여다보니 그가 한창 작업중인 커다란 책상이 보였다. 동네 교회에서 오래 쓰던 의자, 누군가 쓰다 버린 나무 제품들을 주워와서 솜씨 좋게 다듬어 가는 작품이 탐날 만큼 예뻤다. 브레드 메밀에서도 그의 솜씨가 들어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가끔 스튜디오에 오는 손님들을 안내하고 베짱이 농부와 함께 청년들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단순히 가구 만드는 곳, 음악 만드는 곳을 넘어 평창을 베이스로 뭐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산너머음악공방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두 청년들의 작업실 외에도 옛 분교의 흔적과 물품을 모아둔 ‘노산분교 박물관’, 문화와 자연, 농촌을 주제로 한 ‘작은 도서관’ 등 감자꽃스튜디오 구석구석에는 재미난 공간들이 많다. 매년 가을 열리는 자연 영화제가 곧 열릴 예정이라니 365일 활짝 열린 감자꽃스튜디오의 문을 두들겨 보자.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고길천로 105



청년교류공간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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