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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y 29. 2023

산본과 그녀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성수대교의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48미터가량의 상판이 뜯겨내려 무너졌다. 오전 등교시간에 무학여중과 무학여고로 향하던 시내버스 한 대가 이 비극의 희생양에 포함되었다. 사고 자체가 객관적으로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에 더해, 개인적으로 생생한 기억으로 각인된 이유는 사고 얼마 전까지 나 역시 그 길을 통해 63번 버스를 타고 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부모님께서는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으로 이주를 계획하셨다. 우리 가족이 새로 둥지를 튼 곳은 당시 1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산본이었다. 산본으로 이주했던 시기가 비교적 정확히 기억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그즈음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때 날씨가 너무 더워 참기 어려울 만큼 짜증이 났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김일성은 한여름에 죽었고, 우리 집은 1994년 여름에 산본으로 이사를 갔다고 비교적 쉽게 기억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경남 진해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뒤부터 대학교 2학년이 되던 1994년 여름까지 서울에 살던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서울 바깥 경기도 권역에 살게 되었다. 청소년기를 보내며 정든 삼성동과 청담동을 떠나는 마음이야 서운하고 아쉬움 물씬 머금었을 거다. 대학교 1/2학년 때 청담동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사를 간 후에도 나는 매주 두 차례 이상 성당을 오가며 활동했다. 그러다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둔 후에 산본성당으로 교적을 옮겼고, 그곳 청년성가대에 가입하며 청년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리산을 북쪽에 두고 1단지부터 13단지에 이르는 아파트숲이 펼쳐진 계획도시 산본. 낯선 동네였고, 연고도 전혀 없던 곳에서 처음부터 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주일학교 교사회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친해진 교사 선후배와 동기들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옛 동네가 그립기도 하고 살짝 서글픈 감정마저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던가. 산본성당 청년회에서 또래의 새로운 청년들과 교유하게 되면서 설렘과 희망의 감정이 점점 커졌고, 옛 동네에 대한 마음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옅어지며 앨범 속으로 이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열흘쯤 전 이름 모를 낯선 전화번호가 뜨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번호를 빨리 훑어본 후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누굴까 의아해하며 받았다.

 " 여보세요? 저 혹시 안드레아 님 전화인가요? "  목소리가 아련히 귀에 익은 느낌의 여성이었다.

 "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

 " 오빠! 잘 지냈어요? 나 기억 안 나요? " 상대방은 나를 슬쩍 떠 봤다.

 " 아... 아... 뭔가 귀에 익은 목소리임에는 틀림없는데 딱 얼굴이 떠 오르지 않네요.. "

 " 기회를 줄게요. 맞춰 보세요! " 여자는 이 전화 대화를 즐기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몇몇 힌트를 받으며 우선 나이대를 좁혀나갔고, 떠 오르는 얼굴과 이름을 들먹였다. 그러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나보다 한 살 아래 동생이라는 걸 알았고, 그 나이대 동생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을 대며 내가 말했다.


 " 아, TS 동기구나! "

 " TS는 알면서 나는 왜 몰라요? " 그녀는 따지듯 물었다.

 " 아... 그건 TS와 내가 성가대에서 임원으로 같이 일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애가 나한테 여자 친구를 소개해 줬거든. 그것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을 말이야. " 그 순간 마음이 살짝 아렸다. TS에 대한 나의 기억과 생각을 말하자,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 말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 하하하... 오빠!  나예요. TS! 나 지금 오빠가 말한 그 사람. 내가 오빠에게 소개해 준 내 친구랑 같이 있어요. 우리도 5년 만에 만나 쌓인 수다 떨다가 오빠 생각이 났지 뭐예요. "  

 

 TS의 말에 나는 순간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는 걸 느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미래를 함께 하고자 마음먹었던 사람. 그러나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헤어진 여자. 오랜 세월 나를 떠난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어긋난 인연.


" 오빠, 난 그때 내 친구가 오빠랑 헤어진 이유가, 오빠가 너무 잘해 주기만 해서 뭔가 지겨워졌나 싶었어요. 나한테도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거든요. 그 이유를 23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저 그 이유를 짐작만 했지 확인할 수 없었다. TS는 당사자에게 직접 그 이유에 대해 들었다는 것이고, 나는 당장에라도 그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가능한 일일는지 모르겠으나, 만일 가능하다면 그녀를 직접 만나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오빠, 오빠 연락처 알아내려고 내가 얼마나 여러 사람 수소문했는지 알아요? ㅎㅎㅎ 근데 여기저기 연락해서 물어보니 GK오빠가 알고 있더라고요. 오늘은 추억 소환의 날이에요. 오빠를 소환했어요! "


 실로 수십 년만의 목소리 재회 통화를 하며 우리는 빠르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우리들의 젊은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산본에서 말이다. 아마도 나는 차를 몰고 갈 것이다. 산본 IC에서 빠져나가면 산자락을 오른편에 두고 긴 커브길을 돌아 나가면 고딕양식의 개신교회 하나를 지나, 성가대와 청년회 활동을 했던 산본성당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곧장 남쪽으로 향하면, 왼편으로는 산본제일병원이 보일 테고, 오른편으로 산본도서관과 중앙공원이 눈에 들어올 테지.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생필품을 사러 드나들던 오래된 이마트가 정겹게 맞이하겠지.  조금만 더 가면 왼편으로 군포시청이 오른편으로는 산본에서 가장 번화한 산본중심상가가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함께 내 추억을 상기시킬 테지.


 TS는 나더러 자기 친구와 같이 만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알겠다고 대답했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TS와 통화를 한 후에 날짜는 더디게 흘렀다. 궁금했으나 채근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만나고 싶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궁금했다. 23년이 지난 그녀의 모습이 궁금했고, 그녀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내 짐작이 맞았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통화를 하고 나서 일주일이 흐른 뒤에야 기별이 왔다. 둘이 함께 나오겠다는 소식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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