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이 글은 본인의 브런치 매거진에 쓴 글을 동시에 인연매거진에도 추가로 업로드하기 위해 조금 다르게 편집하였으나 같은 내용입니다.
만났다, 우리는.
내가 그녀, M을 조우遭遇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을 것이다.
_인연
혹은 어쩌면 예정된 만남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시작 초기, 어떤 분들이 계신지 나들이라도 하듯 기웃거리고 다니다 발견한 불타는 노을 사진에 걸음을 멈춘 것은.
2000년 즈음 한국을 떠나 LA에서 결혼하고 사는 동생이 종종 페이스북에 올리던 사진들과 꼭닮은 그것을 발견한 날, 나는 불현듯 작가 M의 페이지에 머물렀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반가움의 소회를 밝히고 그녀가 남긴 글들을 읽으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M은 글을 많이 자주 올리지도 않았다.
글을 쓰러 혹은 지루한 어느날 당신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 때면 나는 한번씩 슬며시 문을 열고 들여다보곤 했다. 가끔씩 M은 어린시절 추억이야기, 지나간 삶의 이야기, 혹은 짐작하자면 고단하고 늘 즐겁지만은 않은 이민자의 한숨같은 소회를 읊조리고는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일부러 발품 팔아가며 인기많은 글들을 찾아읽으러 다니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막 브런치에 입문한, 프로이거나 아니거나 브런치_글쓰기를 시작하는 이들 중에서도 어쩐지 수줍음을 뒤로 감춘듯 풋내나는 글들에 더 관심이 간다.
아직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짐작하지 못하여, 많은 이들의 걸음이 닿지 않은 그들의 넓은 여백에 나는 더 끌린다.
어떤 이들의 글은 너무 낯설고 눈부셔서 오히려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반면, 대단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발자욱을 남기는 글이 있다.
그녀의 글은 어떤 이민자들처럼 화려하고 반짝이는, 그래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딴세상 유람기처럼 떠들썩한 글들과는 달랐다.
M은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그저 아주 가끔씩 그 자신의 느낌이나, 잊었던 기억들, 그리움 따위에 대해 담담히 술회할 뿐이었다.
글에서는 어딘가 구멍난 양말 속으로 아무도 모르게 바람이 새는 듯, 어쩐지 허허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소박하고 담담한, 어딘지 처연해보이기도 하는 M의 글들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더욱 멋진 글을 쓰고자 애쓰지 않는 그대로의 자신의 속내를 비쳐내고 있음으로써 특별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또한 나에게 부족한 그 무엇이었다.
나는 종종, 비어있는 그녀의 브런치대문을 슬며시 밀고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주인이 부재하는 곳에 가득한 쓸쓸함을 문질러 안부를 남기기도 했다. 그로부터였을까....M과 나는 약속한 적도 없으면서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나보다.
어느순간부터, M을 생각하면 동생이 떠올랐고, 동생을 생각하면 역시 M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사는 동안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근심스러웠다, 글줄기만으로 나를 짐작해온 그녀가 현실 속에서 마주한 나에게 실망하게 되면 어쩌나. 글과 나라는 존재가 M에게 너무나 끔찍하게 불일치하여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더라...하고 후회만 남기게 된다면 어쩌나. 나또한 혼란에 빠지면 어쩌나.
_만남
지난 금요일 4월14일 오후, 마침내 우리는 현실속에서 마주했다.
그녀가 3~4일의 짧은 한국 방문기간중 바쁜 일정을 쪼개어 흔쾌히 만나주기로 했다.
약속했던 날, 금요일 퇴근시간대의 도로는 꽉 막혀서 차 안에서 아무리 발을 굴러도 소용없었다. 결국 10여분정도 늦은시각에야 마침내 그녀와 마주했다.
우리는 두어시간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침浮沈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각자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이루어내는데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우리는 그리워하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쁜 시간을 나누었다.
막연한 짐작이었지만, M은 내동생과 동갑내기에다 현재도 같은 지역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댁은 내가 결혼전 살았던 지역이며 지금도 서울갈 때면 종종 지나다니는 그 익숙한 길목에 있었고 현재 내가 사는 곳에서도 가까운 곳이 아닌가.
뜻밖의 인연이었으나,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렇게 만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
헤어지기전에 찍은 이 사진은 이제 추억의 한장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짧고 아쉬운 만남 뒤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지금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약속했던 것처럼 하루하루 더 나은 시간을 직조織造하리라 믿는다.
브런치작가 Monica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들이지만, 어쩌면 나와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조우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