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nderPaul Feb 18. 2023

정형외과 방문기

정기 행사처럼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이번은 어느 때보다 통증이 심했고 앉지도 눕지도 못한다를 그대로 체험했다. 누울 때 저절로 곡소리가 났고 사람이 누울 때마저 목과 어깨 근육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고통스럽게 알게 되었다. 사실은 며칠 전 가볍게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감이 왔다. 이건 크게 온다. 그리고 제대로 크게 오고 말았다. 


이틀 전 엄마가 괄사로 등을 긁어주었을 때, 태풍을 미리 감지하는 새들처럼 정확히 등의 반쪽이 반응했다. 그리고 어제 하루 동안 통증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내 주식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속도로 성장한다면 행복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집에 왔을 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어 아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세수할 때도 목을 조금도 숙일 수가 없어서 신채호 선생님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가슴팍에 물을 뚝뚝 흘리며 씻었다. 침대에 눕는 건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베개에 목을 대는 것마저 힘들어서 신음소리를 내며 겨우 몸을 뉘였다. 흑흑. 가만히 누워있어도 찌릿찌릿한 통증이 계속되는 바람에 자세를 좀 바꿔보려고 꿈틀거리면 통증은 더 심해졌다. 목과 베개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빼내려고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는 건 눈물 나는 일이었다. 이대로 잠을 잘 수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일어나고 싶지 않다였다. 몸을 일으킬 때 또 얼마나 아플까. 그러나 일어나야만 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 지금 나는 거대한 세계의 알을 깨는 한 마리 아프락삭스였다. 닭의 머리와 뱀의 다리(뱀에 다리가 있단 말인가) 대신 가시 돋친 목과 붉게 물든 등을 가진. 


몸을 일으키기 전, 마음을 다지고자 침을 삼키는데 기습적으로 목이 아프다. 아니 왜 침을 삼키는데 목이 아프냐고. 엉엉. 동생은 이번엔 한의원에 가보라고 추천 한의원 링크를 보내주었다. 엄마도 집 근처 한의원을 알려주었다. 어젯밤까지는 거의 한의원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오늘 아침 생각이 바뀌었다. 정형외과에 가서 지난번 직빵으로 효과가 있었던 그 주사를 맞아야겠어. 물론 등에 바늘이 꽂힐 때 두두둑 하는 불편한 소리와 상당히 뻐근한 통증이 있지만 목이 아픈 고통에 비할 게 아니고 효과는 보장되어 있으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사, 오직 주사뿐이야.


오전 정형외과는 사람이 많아 피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병원에 가게 되었다. 등교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섞여 정형외과를 향해 걸어가는 40대 노동자는 겉보기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걷는 듯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병원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적었고 대기시간도 짧았다. 


엑스레이를 먼저 찍었는데, 선생님 왜 고개를 숙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요. 흑흑. 내가 고개를 대충 숙이는 것처럼 보였는지 선생님은 친히 내 턱을 잡고 내려주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나는 말을 다 잊은 사람처럼 ah라는 말만  연달아 내뱉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지적 덕분에 목이 아파 고개를 숙일 수 없을 땐 허리가 대신 숙여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걸 신체 부위간 책임 분담이라고 하나. 아님 연대 책임이라고 하나.


고통의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진료실로 입장했다. 사실은 아침부터 아프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이 안 드는 와중에도 병원 담당 선생님이 어느 엔터사의 대표를 닮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노크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선생님을 보니 음, 역시 닮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원래 그런 편이 아니었는데 이번만큼은 내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소상히 설명했다. 선생님, 제가 자주 병원에 와봤잖아요. 그런데 이번이 제일 아파요. 원래 가만히 있을 땐 아프지 않았는데 이번엔 가만히만 있어도 아프고 심지어 누워도 아파요.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자 선생님이 등뒤로 와서 목을 슬쩍 돌리신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언어를 다 잃고 한 마디만 남겼다. 아아아아아.


근육이 경직되어서 그래요. 


이후로 선생님은 이런저런 설명을 길게 하셨는데, 열심히 들었지만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억력 탓도 있지만 선생님을 보며 설명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닮았나? 아닌가? 지난번보다는 덜 닮아 보여. 역시 나는 사람을 잘 못 알아봐.'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결론은 이렇게 내렸다. 선생님은 그 대표와 별로 닮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닮았다. 


선생님의 설명 후 "혹시 운동을 너무 안 해서 그럴까요?" 하고 묻자 "운동 강박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설명을 덧 붙여주셨지만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제가 거북목인가요?"하고 하나 더 질문했고 "거묵목은 아닙니다." 하는 대답을 들었다. 내 예상 답안을 비껴가는 답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자, 이제 처방을 받을 차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도수 치료가 있고요, 아니면 주사치료도.
주사요. 주사 맞게 해 주세요.


오늘 여기에 온 건 바로 그 주사 때문이에요. 선생님. 나쁜 비유지만 좋지 않은 백색가루를 찾는 중독자처럼 나는 간절했다. 주사치료를 받기로 하고 치료실로 이동했다. 옷을 갈아입고 주사실 침대에 누웠다. 베개에 고개를 박고 얌전히 주사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은 사근사근한 말투로 뻐근할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같은 말을 해주셨다. 비교해서 표현하면 지난번엔 통증 7짜리 왕 주사 한 방이었는데 이번엔 통증 4짜리 중 주사 4방을 맞았다. 바늘 들어가는 소리는 같았다. 두두둑.


아, 드디어 주사를 맞았다. 몇 시간 후엔 통증이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 침대로 왔는데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간호사 선생님은 주사치료 후 어지러울 수 있으니 15분 간 침대에 누워계시라고 했다. '네에? 누우라고요? 왜요!' 또 울고 싶다. 적당히 눕는 척하다 선생님이 나가시면 그냥 앉아있으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너무도 친절하셔서 내 몸을 잡고 침대에 눕혀주시기까지 했다. 흑흑흑. 왜 그렇게까지 친절하신 거예요. 눕고 싶지 않은데요. 아아아 아아아. 달아나는 나의 언어여.


병원을 나서 약국을 들러 지하철에 앉기까지 30분쯤 흘렀을까. 벌써 목과 어깨의 무게감이 다르다. 역시 주사였다. 자주 맞으면 좋지 않은 걸 알지만 이렇게 확실하고 빠르게 고통을 해결해 주는 주사를 어찌 찾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이 고통이 부디 올해 안에 다시 오지 않도록 스트레칭에 더 힘써야겠다. 자세도 신경 써야지. 하는 뻔한 다짐을 진실성 있게 해 본다. 흑흑흑. 병원비 너무 비싸.

작가의 이전글 봄에는 꼭 시를 외워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