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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pr 15. 2021

봄에는 꼭 시를 외워야지.

오늘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태주 시인님이 나오셨다. 지난주에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을 살까 하다가 너무 많이 인용되는 시집이라 오히려 선뜻 잡히지 않아 망설이기도 했고 사랑에 대한 간지러운 시가 많은 것도 내가 읽고 싶은 시는 아닌 듯하여 내려놓았는데, 마침 나태주 시인께서 방송에 나오셨다. 귀여운 모습에 저런 분이라 시를 쓰시나 보다 생각했는데, 방송 마지막 즈음에 녹화장으로 오는 길에 개나리를 보고 쓴 시를 읊어주셨다. 80 가까운 나이에 그 흔한 개나리를 보고도 시를 짓는 감수성은 역시 시인이구나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시인에 대한 깨고 싶지 않은 로망이라면 그런 것이다. 세상을 섬세하게 읽고 느끼는 감수성. 


어린이들은 모두 시인인데, 크고 나면 결국 시인은 얼마 남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천국의 언어를 먼저 배운 것처럼 예쁜 말을 쏟아내서 가슴에 보석을 박아 주는 때가 있다. 그런 때를 지나 그냥 나 같은, 우리 같은 어른이 되고 만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한데 할머니들이 시 교실에 많이 다니시는 것도 시인이었던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좋아했던 타고르의 ‘바닷가에서’ 시구를 다시 떠올려본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입니다. 폭풍은 길 없는 하늘에서 울부짖고 배들은 자취 없는 물살에서 파선하고 죽음은 널려 있고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합니다. 끝없는 세계의 바닷가에 아이들의 위대한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시인이었던 때의 말을 주워 담기만 해도 세상에 시가 더 많이 널리 읽힐 텐데. 듣고 흘린 시가 너무 많다.      


주변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드물다. 시를 쓴다는 건 어쩌면 조금 더 간질거린다는 편견 때문에 숨기는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는 ‘동시암송대회’ 같은 게 있었다. 선생님이 동시 50편을 인쇄물로 나누어주면 그중 선생님이 무작위로 고른 시 10편을 외우는 식이었다.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교수법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거나 암송대회’를 해도 차이가 있을까. 차라리 서너 편의 시를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 있었을 텐데. 촌스러운 시대의 시 교육이었다. 그래도 시는 훨씬 가까운 시대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시를 써서 코팅한 낙엽을 팔았고 그런 걸 몇 개씩 사서 시를 읽기도 했던 때라 굳이 시집이 아니어도 시가 친숙했던 때였다.     


12살 무렵에 안방에는 항상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시집이 돌아다녔다. 엄마가 산 시집인데 엄마가 그 시들을 결국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몇 편을 골라 읽었는데 12살이 다 공감하기 어려운 시들이 많아서 몇 편만 읽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가 시를 읽고 있었다는 건 새삼스럽다.      




어떤 소설가들은 글을 쓰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쓴다고도 하고 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서 쓴다고도 하는데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는지 궁금하다. ‘시인의 주된 일은 쓰는 일이 아니라 쓴 것을 지우는 일’이라는 황인찬 시인의 말로 시인과 소설가의 차이를 조금 짐작해본다.      


시인의 마음으로 짚어낸 세상 구석구석을 읽으면서 시집에 마음을 담가 씻어내면 마음에 맑은 평화가 올 것 같은 기대 때문에 요즘 종종 시를 읽는다. 너무 빨리 읽지 않고, 한 번만 읽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읽는다. 시는 환절기에 먹는 비염약처럼 주기적으로 찾게 되는 처방전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는 소설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이 시집이지만 아주 가끔 시를 선물하고 싶은 때가 있기도 하다. 천천히 여러 번 읽으면서 맑은 물에 마음을 말갛게 씻기를 바라며. 그리고 좋은 시 몇 편 정도는 외워두는 멋도 갖추고 싶다. 외우는 시라고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 몇 편의 일부뿐이라. 봄이 가기 전에 적어도 한 편 정도는 외워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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