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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12. 2020

저마다의 판타지

작가를 테마로 한 영화는 주로 추리물이나 서스펜스가 많은 것 같다. 그런 류 중 처음 빠져든 작품은 ‘파인딩 포레스터(Finding Forrester)’였다.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을 돌려 봤는지 모른다. 그 후에 ‘더 스토리(The words)’(이건 사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온다고 해서 찾아봤다가 빠졌다.)도 흥미로웠다. 얼마 전에는 ’더 스토리‘와 비슷한 설정의 ‘완벽한 거짓말(A perfect man)’과 로맹 가리 이야기를 다룬 ‘새벽의 약속(Promise at dawn)’을 봤는데 두 편 다 피에르 니네이가 주연을 맡았다. 그의 얼굴에 예술가적 고뇌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스토리’, ‘완벽한 거짓말’과 비슷한 테마를 변주한 국내 영화는 엄정화 주연의 ‘베스트셀러’가 있었다.(보진 않았다.) 아무래도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압박을 주제로 하면 이런 전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나 보다.


작가를 등장시킨 최근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영화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이다. 80대 유명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거짓말 못 하는 주인공이 사건을 해쳐가는 이야기인데, 곳곳에 배치된 유머는 내가 반드시 끌리고야 마는 유형이다. 다시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나 왓챠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볼 때는 놓쳤던 의미와 재미를 잡아내고 싶다. 작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는 사라진 작가의 비밀이 주한 축으로 작용한다.



작가들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영화는 역시 ‘미드나잇인 파리(Midnight in Paris)’인데 그건 벨 에포크 시대와 그 시절 작가들을 동경하는 이들의 로망을 채워주려고 만든 영화 같다. (감독 자신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느낌으로 1960년대 서울대학교를 배경으로 문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든다. 김승옥, 김현, 이청준, 김지하, 이어령을 한 공간에 몰아넣었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겁다. 나는 알 수 없는 그 시절 그들의 청춘에 궁금한 것이 많으니까.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작가를 다루는 방식은 어쩌면 다른 쪽 창작자들이 소설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판타지를 풀어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뭐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은 5분 만에 명곡을 써 내려가는 경우가 왕왕 있고 폴 메카트니는 꿈에서 "Yesterday"를 듣고 완성했다고 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하룻밤만에 써낸 명작소설 같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소설가의 창작활동에 대한 이러저러한 상상을 발휘해보는 것 일지도.


작가와 관련해 개인적인 로망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사실상 포기했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뉴욕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외국에선 낭독회라는 걸 참 많이 한다는 걸 대학생 때 처음 알았는데 그때부터 나는 그분의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는 브루클린 골목을 탐방하고 작가님의 낭독회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나는 동안 그런 기회는 얻지 못했고 대신 유튜브로 작가님의 인터뷰나 낭독회 영상을 찾아보았다. 작가는 목소리도 좋아야 되는 건가 싶게 굵고 단단한 음성이라 어떤 날은 BGM처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인터뷰를 틀어놓고 일을 하기도 했다. (물론 폴 오스터 작가님은 참 미남이기도 하고. TMI)


두 가지가 완전히 같이 가는 건 아니지만 읽는 게 좋으면 쓰고 싶어 지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엔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친구 하나, 책 많이 읽기로 유명한 친구 하나가 있었다. 잘 쓰는 J에게 우리는 습관처럼 작가가 되라고 말했고 'J는 그렇게 될 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많이 읽기로 유명했던 B의 일화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의 생일을 기점으로 널리 퍼졌다. 그녀가 생일선물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사달라고 했는데 그 책이 수학의 정석만큼 두꺼운 책이었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걔가 그런 걸 읽는 애야.’ 하는 소문을 들은 애들은 ‘우와.’하는 입모양을 하고 B의 뒤에 펼쳐지는 아우라를 보게 되었다.


공부엔 그다지 흥미가 없던 B는 유달리 논술 실력이 좋았는데 결국 그 재능을 살려 대학에 갔던 것 같다. 문득 두 친구가 과연 우리의 예상대로 글을 쓰는 일과 책을 가까이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지 궁금하다. 업으로 삼았든 아니든 잘 쓰는 J와 많이 읽던 B 중 결국엔 B가 쓰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시작은 독자라는 말도 있으니까. 생각난 김에 J의 이름에 작가를 붙여 검색해보았는데 그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 주위엔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기술과 알맹이 모두 훌륭한 이들지만 취미로 글쓰기를 하는 지인이나 브런치의 어떤 글은 기술 없이도 좋아서 자꾸 읽는다. 나는 그런 걸 “결이 좋다.”라고 말한다. 그런 글을 읽으면 역시 사람이 좋은데 글이 나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와 ‘좋은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다.’라는 뜻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결이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조금 물들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어떤 글‘이 글이 내가 쓴 글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기술이 좋은 글이라는 게 화려한 문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소설 중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이런 대목은 수사가 화려해서 대단한 게 아니니까.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글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읽고 나면 내가 그 밤의 메밀밭에 선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읽은 후엔 잊을 수 없는 문장.



설국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같은 문장은 한동안 길을 걷다가도 문득 생각날 만큼 여운이 깊었다.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를 읽은 후엔 '우와, 어떻게 이렇게 쓰는 거야.' 싶어 그의 책을 몽땅 사버렸었다. 구조가 훌륭한 경우, 스토리가 매력적인 경우, 묘사가 좋은 경우, 문장이 사람을 홀리는 경우.  이 중 가장 먼저 사람을 끄는 건 역시 문장으로 사로잡는 것이겠지만 어떤 좋은 소설, 아니 많은 좋은 소설들은 밑줄 그을 그럴싸한 문장 없이도 충분히 훌륭하다. 그러니까 작가란 멋들어진 문장을 쓰는 사람이란 판타지는 좀 그렇지 않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정말 오늘은 아무 말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있는 상황이구만.


아주 옛날에는 소설가 하면 쿨럭거리며 각혈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빼빼 마른 몸으로 앉은뱅이책상 앞 종이를 북 찢어 구겨던지고 머리를 쥐어뜯는 식의 병든 판타지가 있었다. 그 이후로 자리 잡은 새로운 판타지는, 작가 갑작스러운 영감을 받아 종이를 꺼내 거침없이 써 내려가면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때리는 감동적인 문장이 된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정해진 시간에 성실하게 글쓰기를 하는 작가는 어딘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고행이며 자기 관리인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쓰고 싶을 때만 쓴다고 했지만 또 그의 에세이를 보면 자유로운 듯한 하루키 조차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분량의 글을 쓰는 규칙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작가는 매일 출근 하기 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 만큼 글을 썼다고 한다. 그게 한페이지든 한페이지 하고 세줄을 더 쓰는 것이든. 시간이 다 차면 비로소 손을 땠다고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놀라운 판타지의 실천이다. 스티븐 킹은 "매일 2500자씩 쓸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무서운 말이다.


기억력이 영 엉망인 채로 살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가 써준 어떤 말들, 20대의 누군가 써준 시의 한 구절, 에세이의 문장들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글은 흐려지고 향기가 남은 것 처럼.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는 걸 애써 포장 해 본다.) 결이 좋은 글들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로망이 더 있는데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다가 옆을 돌아보니 그 책의 저자가 앉아있었어! 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사인을 부탁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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