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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Oct 14. 2020

커트 머리 탈출기

헤어스타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관리하기 쉬운가이다. 미용실에서 선생님의 손길로 매만진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순 없으니까 집에서 내가 대충 말리고 약간의 손질로 관리할 수 있는 스타일 이어야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커트 머리를 고수했다. 처음 쇼트커트를 시도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는 오랫동안 커트 머리를 반대해왔는데 이유는 키 큰 애가 커트 머리를 하면 더 커 보인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미 크기했지만 남들은 다 멈춘 나이에도 계속 자라고 있었다는 게 엄마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좀 커 보이면 어때서 그렇게 반대했나 싶다. 그리고 머리카락이란, 특히 내 머리카락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빨리 자라는데.


엄마를 물리치고 처음 커트머리를 한 날은 참 홀가분했다. 중학교 때부터 머리카락을 자르는 쾌감에 중독돼서 '엄마 선생님이 머리가 길다고 자르래.'라는 거짓말로 귀밑 단발을 유지했던 나는 뭔가 자르고 정리하고 버리는 걸 남다르게 좋아했다. 쇼트커트야 말로  이런  내 성향에  딱 들어맞는  스타일인 것이지. 그렇게 반대하던 엄마도 막상 내 머리를 보더니 다음날 바로 미용실에 가서 커트머리를 하고 왔다.


이후로 커트머리는 나의 오랜 취향이 되어버렸다. 감기 편하고 말리기 편하고 손댈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춘 스타일이었다. 특히 아프리카 출장을 다닐 때는 그만큼 편한 머리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대어 잘 때도 걸리는 것이 없으니 편하고 물이 아쉬울 때도 머리 감기 용이하고. 20대에 몇 번의 단발머리를 제외하고는 늘 짧았던 머리카락. 조금만 길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참지 못하고 잘라버렸다.



그리고 올해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단발머리를 지나 대책 없는 거지 존을 참아내며 질끈 묶고 다니면서 지저분한 꼴을 애써 외면했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미용실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고객님, 몇 년째 고객님 이 머리만 하는 거 저도 지겨운데 고객님 지겹지 않으세요? 길러봅시다.


내 머리는 선생님을 만나기 한참 전부터 한결같은 스타일로 고정되어 있었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귀찮아지니까 기르는 건 아예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어느 사진 속에서도 내 머리는 한결같았다. 그래, 지겹다. 바꿔보자. 하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8월쯤 염색을 하면서 선생님은 추석 지나고 가을쯤 오라고 했다.


선생님, 기르라고 하셔서 기르고는 있는데 기른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고객님, 이제 고객님 머리는 고객님 게 아니라 제 거잖아요. 길러오세요. 알아서 해드릴게요.


틀린 말이 아니다. 내 머리를 선생님께 완전히 맡겨드린 지 오래고 언제나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선생님은 ‘알아서 해드릴게요.’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바였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정하고 미용실에 가본 적이 없었다.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갔으니까.



머리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감고 말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무엇보다 귀찮았다. 짧은 머리라면 벌써 다 말렸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매일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이렇게 긴 머리는 처음이야.’라고 했다. 뭐 그렇게 긴 머리도 아니고 이제 겨우 어깨선에 닿았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상한 끝부분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빠진 머리카락은 더 눈에 잘 띄어 여름부터 나는 아침저녁 수시로 돌돌이로 머리카락 사냥을 했다. 10월이 되기만 해 봐라! 드디어 인고의 세월이 지나 10월이 되었고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바로 미용실에 갔다.


선생님, 머리 해주세요.


그러나 선생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나처럼 숱이 너무 많은 경우, 지금 길이에서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웨이브를 넣으면  뒷머리가 무겁고 뚱뚱해져서 관리하기 애매 것이 뻔하니 더 기른 후 겨울에 다시 오라는 것이다. 때가 되지 않았다니,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던 방망이 깎는 노인이 생각났다.


(그래 덜 자란 머리 재촉한다고 뭘 어쩌겠어. 하지만 아.... 이 지저분하고 참기 어려운 머리를 데리고 돌아가라고요? 뭔가 하고 싶다.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선생님, 그럼 웨이브를 넣지 말까요? 잘라 버릴까요?
안돼요. 기르세요. 웨이브 넣읍시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나와 커트 머리를 갈라놓기로 크게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 속을 읽었는지 끝머리를 다듬고 뿌리 염색을 해주는 것으로 나를 얼다. 그리고 결국 커트 머리 탈출은 오롯이 일 년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다.  아직 계절을 애매하고 지루한 머리와 함께 견뎌야 한다.  


그래도 버티고 나면 내년엔 얼룩덜룩한 2020년을 씻어냄과 동시에 새 헤어 스타일을 장착할 수 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선생님은 큰 뜻이 있을 거야. 일 년 동안 농사지은 걸 수확하는 기쁨이 있을 거야. 이럴 계획이었던 건 아니지만 어쩐지 새로운 헤어스타일은 상징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선생님, 2021년은 새 머리 새 마음 새 포부로 시작할게요. 그땐 제발 거절하지 마세요. 2021년의 설에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의 사진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미지 출처: 영화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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