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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l 15. 2023

질문 잘 하는 사람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처음 구성안을 배울 때 쉘리 님이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촬영구성안을 쓸 때는 어떤 질문을 던질지 같은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물어야 좋은 답이 나올 수 있을지 최대한 오래 고민했다. 그래도 좋은 질문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누구나 생각할 법 한 질문 80%를 써놓고 뻔하지 않은 질문으로 20%를 채우고 싶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어떤 날은 성공했고 어떤 날은 실패했다.


반복해서 돌려본 촬영 테이프 안에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듣기 위한 여러 질문이 담겨있었다. 처음엔 왜 그런 식으로 질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슷한 질문에도 다른 답이 나오기도 하고 더 좋은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질문이 좋다고 생각되는 몇몇 촬영분은 나중에 다시 봐야지 하고 체크해 두었다. 체크한 테이프를 다시 볼 시간은 없었다. 


평소에 나는 질문할 것이 별로 없다. 말도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말이 적은 편이다. 엄마는, 말욕심이 많다. 내가  방문을 돌리는 소리가 나기만 해도 바로 말을 시작한다. "할 말을 생각했다가 내가 방문을 돌리는 순간 말을 던지는 거야, 아니면 그 순간 신기하게 할 말이 생기는 거야?" 질문해 봤자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다. 엄마에게 질문을 해서 제대로 답을 얻는 경우는 없다. 휴.  


친구를 만나면 초반에 말 에너지 대부분을 쓰고 급격히 기운이 떨어진다. 때로는 말을 하는 중간에 귀찮아져서 뚝하던 말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예의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곤 한다. 그보다 더한 경우는 말을 시작하지도 않고 듣기만 하다가 지칠 때다. 에너지 레벨이 과하게 높은 사람을 만나면 그렇다. 그럴 때면 하고 싶던 질문도 아낀다. 더 이상의 질문은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 뿐. 질문이 서툰 사람과 대화를 할 때면 오래 방치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처럼 끼익 끼익 대화를 밀고 나가는 것이 버겁다. 그럴 때는 슬며시 J를 떠올린다.


J는 즐거운 대화를 이끌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질문을 잘한다. 부드럽게 단호하지만 공격적이지 않고도 다정하게 질문한다. 말의 속도는 따라가기 버겁도록 빠르지 않고 지루할 만큼 느리지도 않아서 대화에 집중하기에 적당한 완급을 가진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골치 아픈 문제가 있을 때는 J와 대화를 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화 자체가 해법이 된다. 


J는 어떻게 질문을 잘하게 되었을까. 좋은 질문을 많이 받아봤을까.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녀 스스로 이런 장점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직접 말해 준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된다면 말해줘야겠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장점이니까. 


J처럼 질문을 잘하는 건 어렵다. 체크해서 돌려볼 수 있는 촬영테이프가 아니라 흘러간 질문을 곱씹는 것도 어렵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내 인생의 질문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게 누구였지. J는 아닌데. 책을 읽을 때도 질문을 찾는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자꾸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된다. 


구성안을 쓸 때 좋은 질문으로 20%를 잘 채우면 뻔하지 않은 구성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나도 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뻔하지 않은 글을 쓰고 뻔하지 않은 인생까지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은 모든 일이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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