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이제 그만 생겨야 되지 않겠어?
맞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머쓱한 심정으로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어루만지면서 오늘 아침 일을 돌아본다.
출근길에 오랜만에 넘어졌다. 그간 넘어져 본 경험에 따라 긁힌 자국이나 좀 심하겠지 하고 바지를 올렸다가 당황했다. 이 하얀 게 뭐야? 뼈야? 뼈가 이렇게 피부 가까이 있나? 뼈일 리가 없지. 진피일까? 근데 지금 뭐가 이렇게 푹 페인 거야? 곧 수업 시간인데 병원에 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약국에서 연고랑 밴드로 해결이 안 될까? 다행히 오늘 조금 일찍 나와 여유가 조금 있다. 시계를 확인하며 역 밖으로 서둘러 나가서 가장 가까운 약국을 찾았다. 거의 바지를 올리면서 입장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약사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하신 기색이었다.
선생님, 제가 방금 넘어졌는데요. 어떤 연고를 발라야 할까요?
선생님이 뒷짐을 풀고 가까이 상처를 들여다보셨다.
흠. 이거 꿰매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에. 근데 본격적인 치료를 받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지각하면 안 되는데) 그럼 어떤 병원에 가야 할까요?
저 위에 3층 가정의학과에 가보세요. 오전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 어서 가봐요.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내가 첫 손님인 눈치다. 아침부터 이렇게 흉한 상처를 보이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접수하자마자 진료실로 들어가서 두 번째로 냅다 바지를 올렸다. 선생님이 상처를 요리조리 보시는 동안 나도 다시 한번 상처를 들여다봤다. 저게 정말 뼈야? 맙소사.
꿰매야겠네.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늦으면 안 되는데.
금방 해요. 이리 오세요.
마취 주사를 놓고 꿰매는 일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취 덕분에 약간 욱신거림만 느껴졌고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꿰매는 모습을 대놓고 볼 수는 없었다.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왜요 선생님, 하는 일과 넘어지는 사고 사이엔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요.)아...
대충 얼버무리고 치료를 마쳤다. 소독과 실밥 푸는 일정 얘기를 빠르게 듣고 처방전을 들고 다시 약국으로 갔다. 약사 선생님께 경과를 공유해 드렸더니 옆에서 들으시던 사모님께서 쌍화탕을 한 병 척 내미셨다. 어머나,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면 느닷없는 사고로 정강이를 꿰맨 40대 여성은 마음이 녹습니다. 약사 선생님은 꿰매느냐 아니냐에 따라 회복이 2주는 차이가 난다며 흉 진 자리도 다르게 아문다고 위로해 주셨다. 당황스러운 아침 사고가 약사 부부의 다정함 덕분에 잘 꿰매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지각도 하지 않았다.
가족 단톡방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넘어졌길래 꿰매기까지 하는지 (그건 나도 몰라. 특별하게 넘어지는 기술을 부린 건 아니야.) 왜 마흔이 넘었는데 넘어지고 난리인 건지.(엄마는 예순이 넘었지만 얼마 전에도 넘어졌잖아.)
사실은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바지를 올릴 때 다친 자리 주변으로 보이는 몇 개의 상처 때문에 조금 민망했다. 한두 번 넘어진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아마 눈치채셨겠지. 심지어 아직 딱지가 아직 그대로 있는 상처도 있었는데 동생 말대로 이제 상처가 그만 생겨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이제 피부 재생도 잘 안되는데. 저녁이 되니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제법 심해졌다.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처방받은 진통제를 성실하게 챙겨 먹었다. 동생은 내일 더 아플거라고 예언했다. 그럼 내일은 아침을 일찍 먹고 진통제를 먹어야지.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 닥쳤고 고통은 사고 직후보다 시간이 지난 후 본격적으로 찾아온다. 진통제를 먹고 잘 쉬어야 한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엄마랑 동생 말대로 “잘 다녀”야 되는데. 그래서 지금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이보다 더 신중할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럽다. 어떻게 잘 다녀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