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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5. 2015

22 손님은 왕이 아니야

유럽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22

손님은 왕이 아니야

유럽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유럽을 떠나던 날의 일이다. 파리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항공편 안. 여객기가 이륙 과정에 들어갔을 당시 한 승객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자 승무원이 아주 예의 바르게,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매우 간곡하게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80일 동안 유럽의 저가항공을 네 번 이용했던 나는 이런 풍경이 낯설었다. 승무원의 저런 예의바름이 전엔 분명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런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던 이지젯 항공편 안에서의 일이다. 비행기는 탑승 후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이륙했다. 그 한 시간 내내 나와 내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은 계속 씩씩댔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당시 이지젯 측이 내세운 이륙 지연 이유는 갑작스런 날씨 악화였다. 때문에 승객들은 비행기에 탑승한 채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이륙 지연을 알리는 기내 방송도 탑승한 지 한참이 돼서야 나왔다. 방송이 나오자 한 네덜란드인이 손을 들었다. ‘오, 항의를 하려나 보군!’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음… 뭐지? 그는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식이었다. 화가 나 표정이 복잡해진 사람은 동양인, 혹은 미국 영어를 재빠르게 구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 기내 방송이 나왔다. 잘 도착했다, 참 그리고 오늘 조금 늦어서 미안! 이런 느낌의… 짧은 유감 표시가 다였다. 옆의 미국인이 그걸 듣더니 나를 향해 양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흔히 유럽은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말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도 이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내가 느낀 유럽도 그랬다. 식당에 가면 주문하는 것도, 음식이 나오는 것도, 계산하는 것도 한 세월이었다. 자판기를 사용하려고 가게에 들어가 지폐를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하면 어디든 하나같이 “쏘리”라고 말했다. 가게에서 뭘 사면 잔돈을 집어던지기 일쑤였고, 비닐봉지에 구매품을 담아주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돈을 주고 비닐봉지를 사면 비닐봉지를 던져주고, 그러면 그걸 주워 스스로 물건을 담아야 했다.


내 느낌은 이랬다. 이곳은 자신이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서비스 외엔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구나. 고객 감동? 그런 걸 내가 왜 제공해야 하냐는 듯한 느낌.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는 마치 교환할 돈과 서비스를 명확하게 설정한 계약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식당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느낌이다. 나는 너한테 돈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겠지만, 먼저 온 다른 테이블 고객의 주문과 서빙과 계산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널 위해 서두를 이유는 없지 않느냐. ‘서둘러서 해야 한다’는 건 네가 나한테 준 돈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이다. 이런 느낌?


이지젯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너를 도착지까지 날라주면 그뿐이다. 날씨가 안 좋아서 늦게 이륙한 게 우리 책임도 아닌데 미안해하고 보상해야 할 이유가 뭐냐? 더 인상적인 건 서비스를 제공받는 유럽인 대부분이 이에 익숙해 보인다는 점이였다.


우리나라엔 마음에도 없는 과도한 친절이 넘쳐난다. ‘손님은 왕이다’란 말이 상식처럼 퍼져있다. 과거 기자였던 당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은행과 기업서비스센터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온갖 미친 사람들이 방문하거나 혹은 전화로 행패를 부린다. 재밌는 건 그게 또 먹혀 들어갈 때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블랙 컨슈머가 자라나기 좋은 영토다. 손님은 왕, 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다녀온 많은 이들이 말한다. 한국만큼 편리한 나라가 없다고. 크게 공감하는 바다. 귀국 당일 오후 8시, 전자제품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유럽에서 잃어버린 노트북 충전 어댑터를 구매할 수 있을까 해서다. 문에는 ‘업무가 종료됐습니다’라는 안내판과 함께 ‘업무종료시각은 오후 6시’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문 너머로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하고 문을 두들겨 직원을 만나 “가능하다면 노트북 파워 어댑터를 구매하고 싶다. 수리하러 온 건 아니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어댑터를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엔 스마트폰 액정을 고치러 갔다. 뮌헨의 수리기사는 결국 고치지도 못했으면서 “일단 두 시간을 달라”라고 했었는데, 이날 수리에 걸린 시간은 7분에 불과했다.


대한항공 비행기는 별 걸 다 신경 써주는 승무원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했고, 전자제품 서비스센터의 일처리는 시간을 불문하고 기절할 만큼 신속했다. 뿐만이 아닐 테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우리나라 서비스 업종 대부분은 친절과 속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편리한 대한민국’의 토대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별별 같잖고 황당한 스트레스 말이다. 뿐인가. 이런 문화 때문에 버릇이 잘못 드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일전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면 상무’는 그런 사람의 전형이다. ‘편리한 대한민국’의 토대는 곧 ‘피곤한 대한민국’의 토대이기도 한 게 아닐까?


파리 메트로에서 매표창구 직원은 “표를 버려서 나갈 수가 없다”라는 내게 “그럼 나갈 수가 없겠네요. 그러니까 표 관리를 잘했어야죠”라고 말했다. 황당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직후 직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내 눈엔 그게 그렇게 쿨할 수가 없었다.


유럽에서 손님은 왕이 아니었다. 손님도 서비스 제공자도 동등한 입장의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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