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림책 작가로 살아볼랍니다~
육아는 내가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고강도 정신노동이다.
5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육체도 물론 힘들지만 이해가 안 가는 아이의 돌발 행동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육체의 피로는 껌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이건 물론 아이만의 잘못은 아니다~ 육아도 일도 어느 하나 잘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워킹맘의 불안이 장마를 앞둔 날씨처럼 맘에 오락가락 비를 내리는데 눈치 없이 아이가 한몫 보태서 기어이 태풍으로 몰아치게 만든다. 여하튼 나는 아이를 키울 때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이 널을 뛰는 경험을 자주 하고 아이도 이런 엄마를 자주 만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소중한 건 1초의 고민 없이 아이라고 답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가 너무 이뻐 진짜 눈에 넣고 싶다가도 울고 불고 떼쓰는데 일가견이 있는 아이를 보면 내가 전생에 뭔 큰 죄를 지었나 한숨을 들이켜다가 참지 못하고 욱하고 화내버리면 가슴에 돌덩이를 품고 하루 종일 불편해하다가 밤에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내일부터는 화내지 않고 잘해줄 거라고 다짐하며 잠들지만... 또다시 내 안의 불헐크가 불쑥불쑥 나온다. 불헐크는 우리 아이가 지어준 별명이다.
이밖에 화난꾼, 화대장이라는 별칭도 있다 ㅎㅎ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기질이 같아도 힘들고 달라도 힘들고 다행히 궁합이 잘 맞아서 별 어려움 없이 지내면 이보다 귀엽고 좋은 친구가 어디 있으려만 난 안타깝게도 어려운 숙제 같고 아이님을 모시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오냐오냐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한테 미안하면서도 억울한 감정이 늘 공존하는 그런 관계다.
많은 육아책과 영상을 봤지만 알듯 말듯하며 뭔가 2% 해결 안나는 느낌은 100% 딱 우리 아이와 맞는 케이스는 없는 것 같고 아이의 짜증 가운데에서도 책에서 코치한 긍정 의도를 파악하면 아이는 그다음에 더 센 언어로 나를 기죽여 후속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메일이라도 보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아이의 성격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것 같고 동그란 네모 같은 느낌~ 서로 상반된 느낌의 융합 복합체 같은 어렵고 신비로운 존재~ 아직도 아이를 알 것 같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고 이쯤 자란 게 뿌듯하지만 불안함 맘도 샴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내가 불안해서인지 정말 아이가 정서불안이었는지 유독 힘들던 4살에서 5살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주 잠깐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다녀본 적이 있다. 그때도 딱히 상담이 와 닿지는 않았다. 몇 번 보고 알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고 정말 우리 아이가 정서 불안일까 부정하고 싶었고 나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불쑥불쑥 던지는 말들에 상처 받고 돌발 행동에 불같이 화내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면서 아이와의 대화에서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엄마 나 헬*카봇이랑 메가로돈 상어 큰 거 갖고 싶어”
“장난감 많잖아~ 나중에 생각해볼게~ 빨리 자자”
놀고먹고 자는 것만 잘해도 효자라는데 먹고 자는 걸로 힘들게 하는 아이는 늦은 밤에 또 짜증을 부리려고 시동을 켜고 있었다.
“엄마는 왜 내 말을 안 들어줘?”
기도하는 심정으로 빨리 자기를 바라는 맘에 아픈 팔을 뻗어 최선을 다해서 토닥토닥 두들기를 정성스럽게 하고 있었는데 말똥말똥한 눈으로 따지듯이 묻는 아이말에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엄마 말을 잘 들어줘?” 하고 되물었다.
가만 생각해보던 아이는
“아니”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엄마는 양치해라 밥 먹어라 손 씻어라 의자에 올라가 뛰지 마라 등등 한 번도 아니고 한 20번 말해야 너는 겨우 듣잖아”
재우기도 힘들지만 그전에 양치시키는 것도 하나의 난관이었는데 보통 20번을 말하고 경고도 하고 화도 내다가 겨우 잡아서 양치시켜도 울다가 치약을 삼킬 때도 있고 달래도 안 하려고 하는 게 일쑤여서 재우기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진다.
“맞아” 그날따라 순순히 인정하는 아이말에
“엄마는 계속 같은 말 반복해서 말하느라 입이 점점 커지고 반대로 귀가 작아져서 도현이 말을 잘 못 듣나 봐”
아이는 내 입과 귀를 번갈아 보더니 뭔가 크게 깨달은 것 같은 얼굴로
“나 이제부터 엄마 말 잘 들을 거야~” 하면서 눈을 감는 게 아닌가!!!
그날따라 정말 내 입이 커 보이고 귀가 작아 보였나ㅎㅎ
내가 말했지만 무슨 책 속에 있던 얘기를 들려준 것 같이 근사하게 느껴졌고 무슨 계시처럼 이걸 바로 그림책으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힘들었던 점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금방 스토리로 만들었다.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도 해보고 엄마의 바라는 점도 담고 그러면서 스토리가 점점 재미있어졌다.
잠든 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나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페르소나였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웃다 보니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불안감이 좀 사라진 듯했다.
물론 아이의 행동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아이를 보는 눈이 좀 편안해졌다.
아이도 자라고 나도 자라는 시간이 육아인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말 안 듣고 화냈다가 부둥켜안고 뽀뽀하며 다시 잘해보자를 반복하지만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 같다.
서로의 감정을 숨지기 않고 드러내며 물론 엄마인 내가 더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엄마의 감정도 아이한테 설명하며 뭔가 부족할 땐 그림책을 이용하면서 은근슬쩍 나의 감정을 어필하고 그러면서 아이의 감정도 받아들인다.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도 나고 아이의 행동에 화내는 것도 나의 감정이다.
아이 또한 엄마를 사랑하고 순간 엄마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의 불편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늘 행복하게 사는 동화책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사소한 일로 울고 때론 까르르 숨넘어가게 웃기도 하고 별일 아닌 일에 짜증내고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 미치는 그런 감정이 난무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 그림책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아이마다 다르고 엄마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바뀌는 변화무쌍한 게 육아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진실은 지금 아이와의 일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건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소중한 시간을 뭐가 됐든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멋진 작업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와 나의 소중한 이야기,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책을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그림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맘으로 그림책 작가로 도전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