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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Mar 17. 2024

바쁘다 바빠, 도쿄 여행(1)

도쿄에 간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겨울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피에 나름 진심일 때여서, 혼자 도쿄의 몇 군데 카페를 점찍어 두고 돌아다녔다. 산미가 많았던 커피, 돈가스 덮밥집에 들어가 '나마 비-루' 한 잔을 시켜 먹었던 일, 지유가오카의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감탄하며 구경했던 것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2박 3일이었을 텐데 그다지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아직 더듬더듬 히라가나며 가타카나를 읽을 수 있었고, 한자도 지금보다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아 있을 때였으니까. 나도 영어를 못하지만 그들도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당황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 남편과 도쿄에 놀러 갔다가, 이번에는 제법 크게 당황했다. 리무진 버스 티켓 발매원과 버스에 짐을 실어주시는 분, 호텔 프런트, 식당 카운터, 편의점 매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얼굴을 한 사람들이 영어와 일어를 섞어 가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검은 머리(?) 일본인들과 비율은 1:1 정도가 아니었을까. 일본의 이민 정책이 어쩌고 하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외국인 이민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인구 구성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니, 어쩌면 10년 후의 일본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보다 훨씬 더 재밌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0년 후의 서울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이번 일본 여행의 목적은 네 가지였다. 크래프트 비어를 파는 맥줏집 방문, 위스키 구매, 문구점 순례,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가기. 3박 4일의 기간 동안 얼추 모든 목적을 달성하긴 했는데, 체력의 문제로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날 오후에 긴자로 넘어와서 걸을 때 이미 허리가 끊어질 듯했다. 가려고 한 곳이 많다 보니, 우리는 카페에도 한 번 들르지 않고 부지런히 쇼핑과 밥과 맥주 사이를 걸었다. 욕심이었다. 다녀와서 일주일 동안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시켜야 했다. 그래도 열심히 발품 팔아 사온 위스키 네 병을 보고 있으면 좀 흐뭇하다. 일본 위스키가 3병, 국내보다 훨씬 싸게 파는 스카치 위스키 한 병. 워낙 사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조금 비싸게 사긴 했지만, 그래도 환율이 낮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서 사는 가격과 비교하면 비행기 티켓값 정도는 벌었다. (이 글은 야마자키 12년 산을 마시면서 쓰고 있다.)


맥줏집은 다섯 군데를 다녀왔다. 신주쿠의 '워터링 홀', 원래 스웨덴 브루어리인 '옴니폴로', 마찬가지로 원래 스코틀랜드 브루어리인 '브루독', 오쓰카 역 근처의 '타이탄즈 크래프트 비어', 그리고 '나마쨩 브루어리'. 모두 좋은 곳이었지만 가장 인상 깊고 재미난 곳은 나마쨩 브루어리였다. 이곳은 '스모크'가 특징인 곳이다. 맥주 중에 원래 훈연한 향과 맛이 나는 '라우흐비어'라는 종류가 있는데, 여기는 거기서 좀 더 나갔다. 일단 가게 안에 들어서면 '훈연'의 냄새가 풀풀 난다. 훈제 맥주는 2종이 있었고, 메뉴판을 보면 온갖 것에 '훈제'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훈제 베이컨, 훈제 오리, 뭐 그런 것은 평범하고, 훈제 감자 샐러드(여기에 곁들이로 나온 바나나칩과 땅콩에도 훈제향이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훈제 초콜릿까지. 시켜보지는 않지만 피트하기로 유명한 '탈리스커' 등의 위스키도 팔고 있었는데, 우리가 좀 더 훈연했다는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바 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훈제한 것이 분명한) 고등어 구이에 맥주를 먹고 있었다. 다음 번에 도쿄에 오면 저것도 꼭 먹어 봐야지. 


짧은 기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밀도 있게 돌아 다녀서 인지 한번에 모든 여행의 기억을 담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주에 이어서 마저 적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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