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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Apr 28. 2024

자기 탐구 영역(2) - 혈당

어쩌다 보니 연속혈당측정기가 생겨서 나의 혈당에 대해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강제로) 가지게 되었다. 동전만 한 사이즈의 센서를 팔뚝 안녕살 부분에 박아 두고(?) 있으면, 휴대폰 앱으로 내 혈당 수치를 블루투스로 자동으로 보내준다. 앱에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기록해 두면 그것과 혈당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 아침까지 열흘 동안의 혈당 측정을 완료해서 센서를 제거했다. 분명히 센서를 달 때는 바늘이 엄청 크고 굵은 느낌이었는데, 떼어내고 나니 정말 가늘었다. 남편은 몸에 바늘이 남은 게 아니냐며 의심할 정도였다. 그렇게 지난 열흘간 혈당을 측정하면서 발견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공유하려고 한다.


먼저, 열흘간 먹은 음식 중에서 나의 혈당을 가장 높은 수치까지 치솟게 만든 것은 바로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였다. 단 음료를 자주 먹는 편은 아닌데, 퇴근 후 7시에 필라테스를 가는 날은 운동 후에 너무 배가 고파서 뭔가 이런 꾸덕한(?) 종류의 음료를 한 번씩 먹고 가게 된다. 시험 삼아 오후 다섯 시 반쯤 음료를 마셨더니 93이었던 혈당이 무려 220까지 치솟았다. 갑작스럽게 혈당이 치솟자 인슐린이 열심히 분투했는지 필라테스가 끝난 8시 무렵에는 다시 90 정도로 내려왔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녁 식사 직전까지 쭉 혈당이 떨어져서 저혈당 수치인 65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이따금 운동 끝나고 나서 저녁 먹을 무렵에 손이 떨리던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또 다른 특이한 현상으로는 러닝을 하는 중에 혈당이 확 올랐다가 운동 후 1시간 정도 지나면 훅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근력 운동이나 필라테스만 할 때는 그런 현상은 없었다. 러닝을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대체로 공복에 가까운 상태 - 혈당이 100보다 낮은 - 가 많고, 대체로는 제법 힘들다 싶은 상태로 20 ~ 30분 정도를 달린다. 운동을 하면서 당이 부족해지면 글리코겐을 당으로 분해하고, 그것마저도 다 쓰면 지방을 분해해서 쓴다고 한다. 그런 메커니즘의 영향인지, 아니면 혈당 조절에 문제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남편의 경우 공복인 상태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곤 하는데 남편에게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 남편에게는 충분히 힘든 운동이 아니어서 그런가?


마지막으로는 식후에 움직이는 것이 혈당에 정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후에 걸을 때와 그냥 가만히 있을 때 혈당 치솟는 기울기가 다르다. 그 때문에 혈당 앱에 식사 기록을 남기면 식후 얼마 동안 1천 걸음을 걷도록 안내가 나온다. 걸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산책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산책 대신에 가벼운 집안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혈당이 오르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다. 혈당을 핑계 삼아 저녁 식후에 남편을 데리고 잠시 산책하는 것도 좋았다. 혈당 측정 전에도 회사에서 점심 식사 후에 산책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외에도 건강상 이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고. 산책은 확실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열흘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는 길지 않아서 몇 가지 더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것을 못했다. 정말로 식사 순서만 바꿔도 혈당에 영향이 있는지,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기 전에 채소를 먹으면 혈당이 덜 오르는지 같은 것이다. 라면도 자주 먹는 편인데 열흘 내에 라면 먹을 일이 없어서 측정을 못해본 것도 아쉽다. 하지만 떡볶이는 혈당에 있어서 최악의 음식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고, 뜻밖에 카레도 상당히 혈당을 높인다는 것도 확인했다. 남편과 같은 기간 동안 같은 기기로 측정을 했기 때문에, 같은 음식에 누가 더 혈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그렇지만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몇 주씩 연속혈당측정기를 달고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어떤 음식을 먹거나 움직일 때 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이 장치를 한 번쯤 건강한 사람이 써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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