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만차인 주차장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는 당신과 친구가 나오는 장면
* (글감에 추가되어 있는 조건) 당신은 방금 자존심을 구기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고 친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친구의 차는 덩치 큰 트럭이다.
나는 양 어깨를 움츠리며 시트 등받이에 몸을 구겨넣듯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서 제 팔뚝만한 커다란 핸들을 돌리며 주차장 입구로 진입하던 제프리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리 둘이 탄 트럭이 커다란 파도를 타듯 울렁거리며 멈추었다. 차체의 육중한 무게를 받은 유압식 브레이크가 크게 쉰 소리를 내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내가 한숨을 쉰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정말 한숨을 쉬었을 지도 모른다.
"젠장, 차 세울 곳이 없군."
제프리가 투덜거렸다.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차가 많이 들어찬거야. 지금이면 집에 처박혀서 핫초코나 홀짝이고들 있을 시간 아니냐고."
나는 눈만 치켜 뜨며 전면의 유리 건너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제프리의 말대로 주차장에는 빈 자리가 없이 빼곡하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주차장의 지금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생각을 둘 다 하고 있다는, 무언의 상호 동의인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잠시 후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이 야심한 시각에 차가 너무 많군... ..." 나는 중간에 잠깐 뜸을 들인 후 다시 말했다. "부탁받은 일을 하기엔 아주 좋은 조건이야."
제프리는 그 말에 나를 잠깐 멀거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그 일 하기엔 정말 좋은 조건이네. 빈 차가 이렇게나 많으니까 말이야."
제프리는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봐, 도대체 왜 그놈한테 가서 그런 일을 의뢰받은 거야? 철천지 원수 같은 그놈한테 무슨 빚이라도 진거야?" 제프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돈이라면 내가 빌려줄 수도 있다고. 네가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차창 밖에 주차된 자동차들을 태워버릴 듯 노려보았다. 제프리가 그놈이라 지칭한, 러스트 스트리트의 마피아 두목 '알 브래들리'에게 내가 먼저 전화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문제는 돈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나는 저격총에 빚맞은 느낌이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면 그만인데, 빚맞으면 고통은 고통대로 느끼고 어떤 놈이 날 쐈는지는 한참을 캐낸 후에야 알 수 있다. 내가 안고 있는 이 문제가 왜 벌어졌는지 알아내려고 했을 때 짙은 안개에 둘러 쌓인 듯 앞길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 너머에서 희미하게 떠오른 이름이 바로 알 브래들리였다. 나는 그가 이 함정을 팠다는 사실만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뿐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알 수 없었다. 아니, 명확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를 직접 대면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 글감 자체가 느와르 느낌이 풍겨서 한 번 시도해 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까지는 상상안한 채로 분위기만 풍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