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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Feb 04. 2023

일본 여행 4일 차(1)_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설경과 함께 숨을 고른 마지막 오전

여행 마지막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산 로손표 롤케이크와 복숭아 요구르트로 조식을 먹고 창밖을 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알고 보니 이 고장에 8년 만에 찾아온 적설량 10cm 이상의 폭설이었다고 한다. 이번 여정의 날씨가 참 독특하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계절에 가까운 풍경을 다채롭게 볼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긴 뒤 나왔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급작스러운 눈의 기습에 대응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차분하게 제설하는 민과 관의 협력이 왠지 두터운 사회적 자본을 느끼게 한다.

12월이지만 열도의 날씨는 한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화했다. 미처 풍화되지 못하고 겨울을 맞은 은행잎은 눈 위에 화석이 되어 버렸다.

하얀 거리를 30분 정도 걸어 노리타케 정원에 도착했다. 노리타케의 숲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장소다. 1904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유명 도자기 제조 업체로 살아있는 노리타케가 2001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존 공장 부지에 조성한 문화 공간이다. 도자기가 전시된 뮤지엄과 직영점뿐 아니라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과 잘 조성된 정원이 아름답다. 내가 갔을 땐 쌓인 흰 눈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유유자적하는 일시적 한량으로서 제설하는 분들에게 내심 응원을 전하며 산책을 즐겼다.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사실상 마지막 관광지였는데 나고야의 도심 속 고즈넉함과 설경을 즐기기에 적절했다. 눈을 뒤집어쓴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여러 조형물이 소소한 행복까지 느끼게 했다.

바로 옆에는 대형 쇼핑몰인 이온몰 나고야 노리타케 가든이 있다. 공원에서 해맑게 눈싸움하는 젊은이들이 덜 젊은 이의 입가에 미소를 누리게 했다. 안에 츠타야 서점이 있어 구경하고 싶었으나 아직 열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좋은 여행은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미처 닿지 못한 것조차 하나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렇게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는 아쉬움보단 고마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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