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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ad Feb 24. 2020

아프지 말길

시은의 몸에서 두드러기가 났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달걀말이에 따뜻한 흰 쌀밥을 먹으며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관절에서 시작돼 점점 배나 허벅지, 면적이 넓은 곳으로 퍼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살이 접히는 어느 곳에라도 작고 크고 오돌토돌하게 살이 부어올랐다. 너무 간지러워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며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시은에게 가진 약 중에 그나마 괜찮겠다 싶은,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소독약을 발라 주었다. 어제도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오후 서너 시가 다 되어 미뤄왔던 현대 미술관에 함께 가자고 했건만 시은은 아무래도 쉬어야겠다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몸에 열이 올라 이런 것 같다며 밖에 나가면 더 낭패를 볼 것 같다고 했다.

푹 자고 일어나라는 말을 하고 혼자 나선 미술관에는 사람이 많았다. 멕시코에 와서 다녀 본 미술관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비중 있게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다. 사진, 설치, 영상 작업이 고루 섞여 있었는데 우리나라 국립 현대 미술관이나 자그마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보는 느낌이라 퍽 괜찮았다. 핸드폰 요금을 다 썼는데 미술관에서는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다. 전시를 보고 나와 공원으로 향하면서 여러 번 봐 두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과야바 맛을 골랐다. 아깐 분명 해가 쨍쨍해 더워 땀이 났는데, 저녁에 가까워져 건물 그림자가 길어지고 날이 서늘해져서인지 아이스크림을 먹자 으슬으슬한 추위가 느껴지는 듯했다.

인터넷을 잡아 시은에게 연락하니 다행히 두드러기는 많이 가라앉았다고 했다. 나올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한 두시간쯤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말했다. 헌데 머리가 아주 어지럽고 아파서 속을 게워냈다는 말에 그냥 천천히 집으로 걸어 가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북적한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자꾸 기침이 났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건만 혼자 눈치가 보여서 마른 기침을 억지로 삼켰다.

지구에는 심각한 전염병이 돌고 있고 우리나라를 삼키고 있다. 병은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돼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세계 많은 국가에서 (내가 듣기론 멕시코에서도) 중국인의 입국을 허하지 않고 있고, 최근 이스라엘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도 한국인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몽골인 등 동양인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수없이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들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할 테고 저 사람이 저기 앉아 혼자 기침을 하고 있다면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까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여기선 지구 반대편의 전염병에 대한 심각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감염자도 없고, 아무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는다. 한국 공항에 들어갈 때 마스크 꼭 끼고 들어오라는 주변 사람들의 당부 탓에 며칠 전 큰 마트에 가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샀다. 재고가 아주 많았고 값도 저렴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석에 있는 제품들이었다. 한국에 요새 얼마에 판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고 비교해보니 거의 다섯 배 차이가 났다. 대여섯 개를 집었다가 내가 이걸 사서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싶어 내려두었다.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대비는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아플 게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아파 나의 당신들에게 병을 옮길까 그게 두려웠다.

공원에 좀 오래 앉아있을 심산이었지만 집에 있는 동생 걱정도 되고, 자꾸 헛기침이 나오는 것도 신경 쓰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어오는 길에 해가 거의 다 졌다. 나갈 때와 같은 모습으로 동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은 갈 줄 알았던 두드러기가 금세 가라앉아 다행이었다. 이렇게 빨리 나을 줄 몰랐네. 오늘 다른 멕시코 친구와 클럽에 가려 했으나 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동안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도 없었다.

아홉 시가 다 되어 나은 시은이와 밤 거리를 나섰다. 타케리아에 가서 그 애가 좋아하는 파스토르 타코를 먹기 위함이었다. 곧 혼자가 될 동생에게 당부했다. 내가 가면 이제 밤에 이렇게 나오지는 말아야 해. 멕시코는 따뜻하지만, 밤엔 위험한 얼굴을 하는 나라이니까.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 대답하는 동생이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아픈 것보다도 무서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픈 일이다. 매일 아침 한국 뉴스에는 전염병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늘고 있다. 외가댁이 있는 대구, 가족들이 모여 사는 경남지방에도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늘어간다. 아직 온전히 피부로는 와닿지 않는 전염병의 실체를 마주하러 가는 내게 시은은 또 말한다. 언니 너무 무서워, 가지 마. 그냥 여기 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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