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에세이 35. 지구 끝의 온실
(본 글은 yes24 블로그에도 업로드되었습니다/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통화 중에 갑자기 물었다. “너는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더 살기 힘든 것 같아?” 나는 당연히 여자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남자라고 답했다.(그 친구도 여자다.) 나는 여성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 사건들과 유리천장 등등의 이유로 반박하려 했다가, 그 친구의 대답을 듣고 말을 멈추었다. “여자들은 서로 돕고 살잖아. 조금 모자라도 챙겨주는데 남자들은 안 그렇잖아. 경쟁도 심하고.. 도태되면 짓밟아 버리는 것 같아.”
김초엽의 신작 ‘지구 끝의 온실’을 다 읽고 그 대화가 떠올랐다. 이 책은 모든 것을 죽이는 유해먼지 ‘더스트’로 덮인 2050여 년대의 나오미, 아마라 자매의 이야기와 더스트가 사라진 2120년대의 연구원 아영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분리되어 보였던 두 이야기는 식물 ‘모스바나’를 통해 연결되고 결국 미쳐 사람들이 몰랐던 진실이 알려지게 된다.
처음 부분에서 미래시대 사람들은 돔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역사 수업, 소위 기억 수업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미래세대가 짐작하듯 돔은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의 극한인 곳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지 않았지만 돔 밖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 정비공 지수와 온실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사이보그 식물학자 레이첼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며 살아남은 프림빌리지도 있었다. 생체실험에서 도망쳐 나온 아마라, 나오미 자매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인 그곳은 불안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평화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영을 도와주는 ‘루단’ 외에는 명시적으로 남자이면서 연대 안에 속한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나는 작가가 연대의 힘을 여성의 특성에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신체적 약함과 약자끼리의 도움, 그리고 아름다움은 경쟁에 그리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모스바나’의 특성이기도 하다. 만지면 성가신 정도의 독성이 있고, 독특한 푸른빛을 내며 이리저리 식물에 기생하며 무리 지어 자라나지만, 그 자체로는 짓밟으면 밟히는 이끼류 넝쿨식물. 그러나 그 식물은 계속 환경에 맞춰 변화하며 더스트의 농도를 약화시켰다. 그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진 명예를 얻을 순 없었어도 번식하고, 기생하여 생존했다. 그리고 그 푸른빛의 아름다움은 아영의 기억에 남아 비밀을 캐는 열쇠가 되었다.
물론 프림빌리지의 사람들도 마냥 착하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지수가 말했듯 레이첼의 해독제와 자신들의 안전을 거래하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레이첼과 온실을 종교 삼아 의지하는 약한 모습도 보였다. 또 모스바나의 부작용으로 피해가 생기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와해되고, 마을을 떠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레이첼의 식물 ‘모스바나’를 퍼뜨리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그들이 뿌린 씨는 세계 곳곳으로 번져 더스트의 1차 감소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역사, history, 즉 남자의 이야기에서 여성 조력자의 이야기가 사라지듯, 이 책의 역사에선 뛰어난 과학자들이 만든 더스트 분해제의 역할만이 남았다. 작가의 말에서 나온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은 다정함과 믿음, 연대로 그 약속을 지킨 여성들이었다.
이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생각해본 관계도 있다. 지수와 레이첼의 관계이다. 지수와 레이첼의 관계는 서로 정비를 제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더스트 분해제와 식물을 제공하는 일종의 거래관계이다. 그러나 그 거래관계 이상으로 따뜻함을 원했던 지수는 레이첼의 수술 중 몰래 충동적으로 뇌 안의 감정 안정화 장치를 켠다. 레이첼은 그 이후 지수가 원했던 커피 원두를 복원하고, 고맙다는 말이 쓰인 쪽지를 소중히 보관하는 등 조금씩 변화를 내보인다. 그러나 레이첼이 정작 끌림을 말했을 때, 지수는 그것이 자신의 수치 조절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결국 상처받은 레이첼은 떠나버린다. 이 글을 읽고 지수와 레이첼과의 끌림을 일종의 이성애적 끌림으로 이해했었다. 그러나 지수도 레이첼도 서로에게 보였던 다정함으로 쌓인 믿음이 그 수치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던 것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 늙었을 때에도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냈고, 애증이 아니라 존경으로 표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며 코로나 시대가 떠오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서로 단절되고 타인이 확진자 일까 봐 걱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런 팬데믹을 해쳐나갈 것은 병에 대한 공포, 타인의 대한 경쟁보단 연대다.
‘해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 속의 유리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 책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다.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변화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