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 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촉촉 Feb 01. 2022

인간답다는 것의 의미

이야기 話 3. 머핀과 치와와

회원가입을 하거나, 다운을 받을 때 우리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만난다.


'캡챠'라고 하는 데, 봇과 사람을 구분하는 도구라고 한다. 초기 버전은 글자를 찌그러뜨린 버전이었지만, 요새는 이렇게 도로에 관한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구글에서 개발중인 자율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AI에게 습득하게 하는 머신러닝 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ai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런데 몇만자리 곱셈 덧셈 같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연산과 전세계의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검색하는 AI가 우리는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사진들을 모른다는 게 참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을 빗대는 밈으로 치와와와 머핀이 유행한 적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인간이라면 쉽게 치와와의 눈과 블루베리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유무를 AI는 외형의 유사점을 이유로 구분하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그 차이점에서 이 연극 '머핀과 치와와'가 나왔다.
그런데 이 연극 중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AI 라이카의 머신러닝을 위해 그림들을 분리하던 도루(조의진 분)는 머핀 사진을 보고 치와와라고 우긴다. 라이카는 틀렸다며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도루는 생명체에는 눈의 빛이 있다며 맞다고 우긴다. 그렇다면 구별하는 라이카가 인간인가? 도루가 인간인가?



지난 1월 30일까지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한 '머핀과 치와와' 연극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연극 '머핀과 치와와'는 인간 지성의 집대성인 AI(인공지능) '라이카'가 전 가정에 필수적으로 보급된,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은 근미래의 이야기를 그린다. '라이카'의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던 인간들은 어느 날 이미 멸종해버린 동물과 인간이 결합해 신체가 변화하는 현상을 마주한다. (중략)
작품은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기후 위기를 맞아 물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아 로봇과 구분할 수 없는 생활을 한다.
출처 : 뉴스컬처(NEWSCULTURE)(http://www.newsculture.press)


1.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가

가장 첫 장면에서 니키는 로봇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살짝 무릎을 굽히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컨테이너 벨트를 움직이며 박스를 옮기는 모습은 최초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 같다. 물론 컨테이너 벨트에서 내려왔을 때는 바닥을 유영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인어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라이카는 경제활동을 이유로 다시 그녀를 컨테이너 벨트 위로 보낸다.
그 이후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마냥 자유로운 모습은 아니다. 무기력하게 누워 사진에서 머핀과 치와와, 신호등을 구분하는 일을 하는 '도루'와 영상을 평가하며 데이터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자자' 역시 라이카의 영향 아래 있다. 뒤늦게 나오는 '사자'는 연구자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라이카의 계속적인 간섭을 받는다. 이 장면들에서 배우들은 다른 등장인물이 아니라 화면 속의 라이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 4명이 모두 모인 첫 장면은 물을 배급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이다. 그러나 그들 4명이 한 가지 주제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원하는 것만 이야기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니키와 도루, 사자와 자자가 엮이지만, 소통을 한 것 같지 않다. 기억을 회상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외칠뿐이었다.
연극을 본 처음 느낌은 AI로 인해 생각하는 힘이 사라지는 시대, 인간의 노동이 쓸모 없어지는 사회와 파괴되는 환경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본인을 라이카의 관리자로, AI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자자'가 한 말대로 "생각하지 마, 생각할 필요가 없어."라고 일괄하는 장면이 이 연극이 궁극적으로 경고하는 바 라고 생각했다. 이후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가지 검색을 해보다가 작가의 말이 들어간 기사를 봤다.


결국 신효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성'이다. 니키가 인어에 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신효진은 관객에게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인간성을 어떻게 정의하냐고 묻자 오히려 "글쎄요. 인간성이라는 게 무엇일까요?"라고 되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인간성이라는 개념은 딱 머핀과 치와와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인 것 같아요. 우리는 머핀과 치와와를 구분하지 못하는 AI를 보면서 우월감을 느꼈던 전적이 있잖아요. 그게 대단하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언어를 구사할 수 없거나 지능이 낮은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가 아닐까요. 제가 그리는 세계에서는 다른 존재를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 일말의 인간성을 지닐 수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니키가 계속해서 인어를 상상하는 것처럼요. 모든 것이 자동화된 편리한 세상이 정상이라고 여겨짐에도 사라진 동물이나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그 순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는 거죠.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파괴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비장애인, 신체가 정상인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규범 자체를 뒤흔드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던 거죠."
출처 : 뉴스컬처(NEWSCULTURE)(http://www.newsculture.press)

나는 단순히 생각이라는 이성의 힘을 생각했다면 작가는 아마 그 생각을 통해 자신과 다른 존재를 포용하고, 단일화가 아니라 다양화로 갈 수 있고, 그것이 생각의 힘이자 인간성이라고 파악한 것 같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기술, 특히 비대면 기술이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아마 그런 기술 발전의 대표적인 예가 식당에 설치되고 있는 키오스크일 것이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한다는 장점이 있다지만, 신기술에 적응하기 힘든 노년이나 장애인 등에 대한 배려가 없는 형태이다. 아니 그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으로서 인간성을 지키는 발전인 것일까? 키오스크는 비용이 인간의 존엄 위에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AI는 수천, 수만의 데이터를 수집해 치와와의 눈과 블루베리를 외형적으로 구별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통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일 뿐, 결국 인간의 직감과 생각이 아닌 숫자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2. "어떻게" 이야기했는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이 연극의 등장인물은 니키, 도루, 자자, 사자다. 하지만 중요한 출연진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ai '라이카'다. 등장인물 네 사람의 교류는 단편적이고 띄엄띄엄 이뤄지지만, 라이카와 등장인물들은 적어도 말이 되는 말을 하는 듯하다. 다만 AI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인식하지 못한다며 말을 돌려버린다. 그런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 인간들은 처음에는 좀 짜증을 내다가도 금방 순응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갈등이 모호하다고 느꼈다.

조너선 갓셀의 「스토링텔링 애니멀」에 따르면 픽션의 구조는 "인물 + 어려움 + 탈출 시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연극의 인물들에게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탈출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건 생각하는 힘을 뺐은 AI와의 갈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인류의 문제를 보여주는 작가의 방식일 수도 있다. 마치 천천히 삶아지는 개구리가 자신이 삶아진 걸 모르는 것 같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부분은 보이지만, 오염된 물때문에 힘들어하는 '도루'의 고통은 그 몸짓으로 끝나고, '사자'는 진실을 추구하면서 끝없는 말들을 쏟아내지만 마지막이 너무 급작스럽게 끝난다. '니키'도 인어를 찾아헤매며 답답해 하며 울음을 터트리지만 결국 '라이카'에 순응한다. 그나마 관리자였다가 ai에게 버림받은 도루 정도가 자신의 상황에 언어로 강력하게 항의해서 관객이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 있고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지만, 곧 그도 AI가 틀어주는 asmr 영상에 빠져들어 멍하게 되어버린다. 결국 모든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갈등의 원인, 즉 어려움에 순응하는 듯 하다.

아마 디스토피아를 보여주기 위해 ai 가 통제하는 모습 등을 잘 표현했고, 거기서 무력한 인간들을 보여줬다. 이게 무엇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지, 등장인물들도 자신이 왜 그런지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놔서 관객이 관찰하듯 알아채라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좀 어려운 느낌이었다.

 또, 인어이야기나 '도루'의 아내 이야기 등 이미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동물과 결합된 가면을 쓰고 나오는 장면도 있는데, 그게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은유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연극을 보면서는 개인적으로 니키가 인어에 대해 집착과 그 동물의 결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느껴졌다.


이 연극은 하려는 이야기는 명확했다. 그래서 그걸 나같은 평범한 관객도 어떤 걸 이야기하고 싶구나라는 것은 큰 그림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갈등으로 인물끼리 얽히는 것이 아니라 내면과 싸우다 보니 이미지는 재밌으나, 각 인물의 불만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통찰력이 있었다면 그리고 미리 알고 들어갔다면 좀 더 재밌게 봤을까. 조금은 아쉬운 관극이었다.

--


출처 : https://www.bbc.com/news/business-48842750

https://smart.science.go.kr/scienceSubject/robot/view.action?menuCd=DOM_000000101001003000&subject_sid=126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54566632200344&mediaCodeNo=257

http://www.newsculture.press/news/articleView.html?idxno=503961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tech-plus&logNo=222468309199

https://www.bloter.net/newsView/blt202010140013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이 인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