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ssine Mar 03. 2024

휴가는 대단한 날이 아니야.

일상에서 즐기는 소소한 휴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3년 동안은 휴가를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그러다 과감하게 휴가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이제는 회사에 훌륭한 구성원들도 있고,무엇도다도 내가 며칠 없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편히 하루쯤은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굿 초이스라고 생각한다.


휴가라고 하면 대단하게 계획하고, 먼 곳이나 특별한 곳을 가야만 할 것 같았는데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올해부터는 주말을 포함한 시간을 휴가로 잘 활용해볼까 한다. 엄청난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고 싶었던 카페나 갤러리 그리고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는 것이 나의 일상에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 날, 그래서 더 특별한

그 첫 번째 시간이자 올해 나의 첫 휴가는 2월 29일이었다. 바로 다음날이 3월 1일, 삼일절로 휴무일이기도 했고, 지난 몇 주간 강도 높은 업무로 지친 나에게 쉼을 꼭 주고 싶었다. 그래야 다가올 3월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2월에 29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날이 특별한데,

더욱 특별한 계획은 갤러리를 갔다가 사진관에 들러 나의 현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방문하려던 갤러리 인근에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북촌 사진관이 있어서 바로 이거다 싶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3일 전 예약했다.


휴가라 기분을 내고 싶었기에 헤어숍에 들러 머리를 다듬었고, 북촌을 거닐 때 똑깍똑깍 소리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평소 좋아하는 구두도 신었다.


이번에 방문한 전시장은 북촌에 있는 이음더플레이스다.(종로구 삼청동 35-3)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전시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사진으로만 보던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을 직접 마주하고 싶어서가 더 컸다. 그래서 시간도 계획하여 그곳에서 서울의 석양을 보기 적합한 늦은 오후에 전시장에 입장했다.


전시나 이벤트가 있을 때만 이 공간이 오픈되기에 시기를 잘 맞춰 방문해야 한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에는 이응미응 더플레이스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었기에 딱이었다.




이응미음 더플레이스 아트페어 안내 포스터(왼쪽) / 이음갤러리의 마당과 물길(오른쪽)



이음더플레이스에 들어서니 멋진 한옥의 자태와 더불어 큰 마당이 매우 인상적으로 반겨주었다. 마당에 서서 대문을 바라보니 멀리서 경복궁의 일부가 보였다. '과거에 이 한옥에는 어떤 분들이 살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계동이나 북촌의 작은 한옥과는 다르게 꽤 큰 규모인 것으로 보아 양반가의 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한옥집의 옛 주인은 너무도 멋진 뷰를 아침마다 내가 서있는 이 마당에서 맞이했을 텐데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이음더플레이스의 마당



마당에서만 있고 싶었지만, 늦겨울 찬 바람이 불어 따뜻한 전시장으로 어서 들어갔다. 30여 명의 작가들이 함께한 이번 전시 작품은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 작가분들의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내부의 한옥 구조에 어우러진 작품들이 마치 집이라는 공간처럼 편하게 볼 수 있어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전시장에 음악은 없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이곳과 잘 맞았던 것 같다. 한옥의 역사와 이 공간에서 함께했던 이야기 그리고 숨결들을 상상하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특별한 공간에 오면 이 곳에서 있었던 과거 이야기들을 상상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채워간다. 마치 소설을 써내려 가듯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대화 등등. 이러한 상상도 즐거운 행복이라 말할 수 있냐고 묻는 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 같다.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며 전시장을 거니는데 약간씩 삐걱대는 옛 한옥의 바닥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고, 지붕 너머로 고양이 울음소리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본채인 전시장의 일부. 마치 집에 들어온듯한 편안함이 있다. 물론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나 역시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고, 회사의 라운지를 가변성 있게 변경하여 연 2~3회 정도 전시회를 개최하기에 옛 공간의 현대적인 재해석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화이트 큐브형 전시장이 아닌 일상 및 생활과 어우러진 전시장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공간연출의 방향이기도 하여 이 한옥 갤러리는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곳임에 틀림없었다.



한옥에서 마주한 현대적인 가구들의 조합



본채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큰 창문의 뷰가 나오는데, 여기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곳이다. 통유리로 바라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이번 전시회에서 콜라보한 인테리어 가구회사가 있었는데, 매우 한국적인 가구의 선들과 함께 달항아리 작품들이 잘 어우러졌다. 창문을바라보려고 소파에 앉아 한참동안 노을이 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그저 좋았다.

평안했다. 고요했다.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업무에 대한 생각도 거의 나지 않았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한 휘게(hygge)*이자 휴가의 진정한 의미를 담은 시간이었다.


*휘게(덴마크어 hygge)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한다.



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이음더플레이스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클로징시간이 다 되어 이쯤에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이 아쉬움은 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으로이어졌다. 지금의 모습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푸르른 모습의 이음더플레이스의 마당도 보고 싶다.



오늘을 기록해줄래?

이제는 북촌 사진관으로 향할 시간이다.

셀프 스튜디오라 내가 셔터만 누르면 되기에 즐겁게 촬영했다. 나는 표정이 좀 풍부한 편이라 사진을 찍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20분 동안의 촬영 시간이 되시 전 마무리하고 사진을 셀렉했다.


2024년 2월 29일,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웃는 모습, 너무 웃어서 주름진 눈가, 어색한 미소 등 이 모든 순간순간의 모습들이 시간이 지났을 때도 오늘을 기억하며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올해 첫 휴가를 통해 내가 느낀 일상 속 휘게(Hygge)는 대단한 것이 아니였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서 그 곳의 공기, 소리와 뷰를 추억으로 담아 오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주는 편안함이 내가 타인을 대할 때 선함으로 이어져 가는 것.

이것이 내가 이번에 느낀 휘게스러움의 정의가 될 것 같다.














일요일 연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