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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군 Mar 29. 2022

출산 후에야 알게 되는 남편의 역할

#3 생명탄생의 감동은 잠시 접어두자

예정일을 약 이주일 앞둔 시점에서 산부인과 원장님과의 진료 및 상담 끝에 우리는 제왕절개로 출산 방법을 확정했다. 마지막까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중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내와 논의했는데, 마지막 초음파 검사에서 측정한 아이의 머리가 자연분만으로는 쉽지 않겠다는 의료진의 의견을 십분 수렴하는 쪽으로 결정한 셈이다. 


제왕절개로 결정되자 나머지 많은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날 바로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기본적인 수술동의서 등을 작성했다. 

애매하게 띠가 갈리는 시점이 출산 예정일이 잡혀 있었고, 설 연휴까지 겹치면서 정확히 원하는 날짜의 출산은 무리가 있었고, 그다음 날 첫 수술일정으로 예약했다. 


분만 횟수가 많은 병원이다 보니 다행히 입원실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에서는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응급 산모가 있을 경우 입원실을 뺏길 수도 있으니 참고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실제 수술 당일 정말로 예정된 입원실이 전날 밤 응급으로 출산한 산모 덕에 만실이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알고 보니 비일비재한 일들이더라. 


다행히(?)도 VIP실 등은 몇 개 남아있었는데, 이제 와서 수술일정을 바꾸거나 병원을 옮길 수는 없기에 그대로 입원을 결정했고 병원에서는 일반실 자리가 나면 병실 변경도 가능하다 했기에 일단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수술은 아침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당일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사실 살면서 조리원 가방이라는 걸 얼마나 생각해보고 정리해보겠는가. 

기본적인 입원기간 4일 외 조리원 14일 동안 나의 출퇴근에 필요한 준비와 산모를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여행용 트렁크에 담아보니 화물용 트렁크 2개가 가득 차버린 것에서도 모자라 추가 쇼핑백이 1개 더 나왔다. 

남들도 이렇게 많은 짐을 준비하나?라는 생각도 할 법했으나 이미 출산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비교는 사치에 불과했다. 


수술 당일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준비해서 도착한 병원은 첫 수술 타임이라 그런지 비교적 조용했는데, 여기서부터 남편이 생각한 일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진다. 



산모 신원 확인과 동시에 간호사는 산모를 데리고 수술복을 갈아입히러 가버리고, 다른 간호사는 입원 수속 서류를 들고 열심히 내 앞에서 설명을 이어간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입원 수속을 마치고 그 새 옷을 갈아입고 온 아내를 잠시 볼 찰나에 다시 간호사는 "산모님은 절 따라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데리고 사라진다. 

갑작스럽게 복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동안 멀리서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이렇게 빨리?'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았던 어떤 남자가 두리번거리기 시작하고, 한쪽 구석의 문이 열리면서 인큐베이터에 담겨 있는 신생아와 간호사가 등장한다. 

정말 랩을 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아이 손가락, 발가락 모두 5개씩 있고요. 관절 모두 잘 움직이고요. 눈에 이상 없고, 귀 정상이고요....."라는 설명이 계속 이어지고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네..네.."를 반복하며 고개를 부산히 끄덕인다. 

이내 모든 게 사라진 복도에서 잠시 서 있는데,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남편분은 입원실로 가서 대기해주세요"

'어? 아까 그 상황은 뭐지? 나랑 다른 상황인가??'와 같은 생각이 이어질 때 즈음에 이미 나는 간호사의 이끌림에 어쩌다 보니 선택한 VIP병실 앞에 서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프로세스가 달랐던 게 아닌가 싶은데, 그 시점에는 뭔가 조금만 상황이 다르게 느껴지면 긴장감이 갑자기 치솟는 생경한 기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입원실에서 근 1시간을 조용히 앉아있는 동안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수술 자체는 15분 내외로 간단하다고 들었는데, 왜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지. 수술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산모는 무사한지. 아이는 괜찮은지. 이런 류의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어가는 와중 갑작스레 병실 문이 열리고 침대가 한대 들어온다. 


정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수술을 마친 아내의 모습은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고, 뭔가 감동적인 말을 내뱉을 틈도 없이 간호사는 "남편분 이쪽 잡고 세게 당기세요!"라고 외친다. 

수술 침대에서 입원실 침대로 산모를 옮기고 나서도 속사포로 그녀들의 설명은 이어졌고, 여러 개의 링거가 꽂힌 상태의 아내는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나른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다. 


한 시름 놓았을까 싶어도 산부인과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편분은 저 따라오셔서 아이 확인해주셔야 해요"



신생아실로 불려 갔으나 아직 내 아이는 수술실에서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역시 인큐베이터에 담긴 신생아가 올라왔는데,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간호사는 말한다. "남편분 사진 찍으세요"

"네? 네."

찰칵. 찰칵.

"기다리세요"라는 말과 함께 아이는 신생아실로 바로 입장해버리고 다시 덩그러니 서 있는 나에게로 다른 간호사가 또 다가와 몇 장의 설명지와 리플렛을 전달해주며 말을 이어간다. 


"출생신고는... 아이의 상태는... 신생아 촬영은.. "계속된 설명에 네네를 이어가는데 너무 빠르게. 그리고 자주 바뀌는 상황에 적응할 틈 따위는 주지 않는 산부인과의 부산함은 점점 감동과는 동떨어진 사무적인 현실로 나를 이미 충분히 끌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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