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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Oct 18. 2020

임밍아웃, 저 임신했는데요.

저도 임신은 처음이라


임신을 했다. 아니 해버렸다. 결혼 3년차인 우리는 내년즈음, 이제 아이를 가져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날 불쑥,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예기치 못한 축복이었다.


처음엔 큰 병에 걸린 줄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 내 몸을 잘 아는데 이유없이 감기 증상이 지속되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심지어 어떤 날은, 지하철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을 뻔 했다.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지하철에 올라타서는 ‘저 정말 죄송한데 너무 어지러운데 자리 좀 양보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정신없이 말한 뒤 양보해주신 자리에 털썩 앉아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임신이 아니면 다음 날 큰 병원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2019년 7월 4일 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밤


그리고, 아주 희미한 두 줄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아이를 가져도 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임신을 한 순간, 여자로서 기쁨 보다는 두려운 감정과 난감한 감정이 먼저 찾아왔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아이를 가져도 되는 걸까. 나는 일하는 여성이고, 심지어 두 달 전에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디렉팅 그룹을 창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엄마 보다는 일하는 여성, 그저 채자영으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했고 당연했다.


임신 3개월 차, 우리가 사랑하는 Paris에서 새로운 생명을 축복했다.


기쁨은 서서히 나를 찾아왔다. 한 생명이 내 몸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고 신비했다. 이전에 모성애가 마치 마법처럼 한 순간, 나에게 찾아오는 줄 알았는데 모성애라는 것도 열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와 교감하며 서서히 찾아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여전히 실감이 안나고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워낙에 많이 듣고 보았기 때문이다. 육아는 지옥이다. 라는 말부터 결혼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정말 많은 것이 변화한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이야기들. 그런 말들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앞으로의 삶은 더이상 내가 예측할 수 없었고 그만큼 미리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마 나의 삶은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첫 임신. 나는 아직 아이가 나에게 어떤 기쁨과 환희를 줄지 알지 못한다. 다만 격언처럼 내려오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다.’라든지 ‘아이를 낳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라는 둥의 말을 의지해 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너무 당연한 듯 말하는 ‘격언’ 따위의 옳은 말은 내 가슴을 관통하지 못한다.




현재 8개월의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밀레니얼 워킹맘’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당시와 10개월이라는 긴 임신 기간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쁨과 축복의 길이라기 보다는 두려움과 혼란의 길이었어요. 왜냐하면 저에겐 기대 보다는 걱정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시기였음을 깨닫습니다. 주변에 늘 힘든 이야기들과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들만이 격언이 아닌 살아있는 일상의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조금 더 즐겁게,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가는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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