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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Jun 16. 2024

오래된 일기장에서 발견한 것.

나를 만들어 온 것들


책상 정리를 하다 우연히 오래 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약간의 괴리감과 불안감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2018년의 일기장에는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날, (사실 그 날 어떤 이유로 어떤 상황으로 엄마네 찾아가 자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엄마 품에서 잠든 밤의 감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제서야 그때의 일기장을 다시 꺼내 읽고 (물론 우연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기록을 한다. 그때의 그 마음, 내가 스스로 잊고 있었던 나의 뿌리, 나의 근원, 나의 시작점. 그것으로 다시 찾아기 위하여.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깨끗하고 쾌적한 집과 환경 덕에 나는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것을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데, 나는 그들이 아닌데,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가 아닌데. 왜 그렇게 보이려고 혹은 살아가려고 그런 '척을 하고 있는지. 나를 키운 것, 지금까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이 고통과 상실, 불안감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 2018년 4월의 일기 중 -


나는 왜 늘 불안할까? 나는 왜 늘 편안하고 안온하게 굴지 못할까? 물론 이전과 다르게 많이 지금 있는 나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감사하는 마음 덕에 불안함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나는 불쑥 불쑥 원치 않게 찾아오는 경쟁 심리와 자기 증명의 욕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오히려 과거에는 이런 마음이 찾아오면 아무런 생각없이 그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했다. 그러한 행동을 나를 빠르게 성장 시켰다. 끝없이 끝없이 성장했다. 계속해서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이 마음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알고 달려가는 것인지 스스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나아가는 삶으로 바뀌었다. 


성장의 속도가 늦춰지자 나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몸과 마음이 이전에 비해 꽤 건강해졌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특히 두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성스레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이 작은 변화는 나에게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지금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나는 어떤 모습을 원하고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답답함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속도대로 나아가지 못하니 한 편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시 이전처럼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의 삶을 돌볼 여유와 지혜가 생겼으니까. 어쩌면 지금은 과거에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성공'이라는 모습에 근접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나를 찾아오는 불안을 어김없이 마주했다. 




눈물을 훔치며 견뎌냈던 그 방에, 오랜만에 다시 머무니, 내 안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 실은 '행복'이나 '풍요로움'이 아니라 '고통'과 '결핍'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2018년 4월의 일기 중 -


이 불안은 왜 뜬금없이 나를 찾아와 괴롭히는 걸까. 이러한 고민으로 여전히 그래서 다시 신발끈을 꽉 졸라매고 달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이 일기장은 말해주었다. 내 안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 실은 행복이나 풍요가 아니라 고통과 결핍이라고. 고통과 결핍을 이겨내며 나는 여기까지 왔다. 아마 그 기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삶으로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고통과 결핍은 나의 원동력이었고, 나의 뿌리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고통과 결핍은 불안과 동반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고 또 앞으로 더 달라지겠지만,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혹은 내가 과거에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로 나아간다. 


오늘 다시 발견한 이 일기장 속 글을 기록하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나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그러니까 나는 원래 불안한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 불안함은 습관처럼 나를 찾아오고 있음을, 그 불안의 기저에는 고통과 결핍이 있고 이는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내는 잔인하고도 강력한 원동력임을 잊지 말자. 그러니 '척'하지 말고, 다시 마음의 바닥으로 내려가 솔직한 나를 마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찾아내자.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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