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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유 Oct 10. 2016

당신은 누구십니까? (1)

                                                                        

열망.

熱望.
희망도 아니고 소망도 아닌, 말 그대로 열망.
뜨거운 거. 너무 뜨거운 거.

  저녁 6시 40분.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데 너무 뜨거웠다. 신발이 뜨거웠고 손잡이도 뜨거웠다. 하물며 엘리베이터 버튼도 뜨거운 것 같았다. 아니다. 내가 뜨거운 거였다. 손이 뜨거웠고, 얼굴이 뜨거웠고 마음이 뜨거웠다.

  내 뜨거움이 전해졌었는지, 남편은 6시 5분에 땡퇴를 하고 엉덩이에 불이 난 사람처럼 달려와주었다. 이미 곱게 화장을 마치고 평소 잘 입지 않던 옷을 꺼내입고서 자신을 맞는 아내를 낯설게 바라보더니 씩-하고 웃는다. 그렇게 좋으냐는 물음이겠지. 나는 대답 대신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가 밥상을 차린다. 오후 6시 35분. 눈치빠른 세살 난 딸 아이는 엄마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어째 고분고분하다. 앉은뱅이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그것도 거꾸로) 국을 데워 그릇에 담고 압력솥 뚜껑을 열어 뜸이 잘 든 밥을 밥 그릇에 소복이 담아낸다.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치킨 너겟을 넉넉히 구워두었다. 샐러드 위에 치킨 너겟을 담고 소스를 얹어 식탁 위에 올렸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시늉을 하는 딸 아이를 무릎에 앉혀 얘기했다.
  "수안아, 엄마가 오늘은 어딜 좀 나갔다 와야 해."
  "나갔다 와야 해?"
  "응. 엄마 오늘 친구 만나러 갔다가 올테니까 수안이는 아빠랑 맘마 맛있게 먹고 아빠랑 코- 자고 있어. 엄마가 친구 만나고 금방 올게."
  아이의 표정은 어리둥절하다. 엄마에게도 친구가 있어? 하는 표정. 그리고 아빠랑 코 자라고? 하는 표정.
  나를 닮아 예민한 아이는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27개월 간 엄마랑만  밤잠을 청하던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잠들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늦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러둬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오늘 정말 중요한 친구를 만나야 되거든. 그래서 수안이가 코 자는 시간 전까지 돌아올 수가 없어. 수안이가 졸려도 참고 엄마를 기다리거나, 너무 졸리면 아빠랑 코-자고 있어. 그럼 엄마가 다녀와서 수안이 꼭 안아줄게. 알았지?"

 27개월 만의 첫 밤 외출. 돌아올 시간을 기약하지 않은 밤 외출이었다. 이제 아이는 많이 자랐다. 어쩌다 외출을 했더라도 해가 지면 발을 동동 구르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갓난이 엄마 노릇은 졸업했다. 아이는 아빠와도 곧잘 지냈고, 놀다가 밤 11시가 돼 잠을 청할 때도 있었으니 오늘 외출 만큼은 마음 가벼이 다녀오리라. 시계를 보지 않고! 그래, 시계를 보지 않고! 남편은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라며 웃어보였다.
  외출 채비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볼이 빨갰다.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너무 뜨거웠다. 왜 이렇게 열이나지. 중얼거리자, 남편이 말했다.
  "좀 진정하고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좀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식힐 필요가 있었다. 너무 뜨거우면 덴다. 그것이 손이든 마음이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거리로 나서자 자동차 불빛이 이리저리 휘휘. 해가 진 후 도로의 풍경이 어쩐지 낯설었다. 갑자기 비현실감이 몰려왔다. 매일 걷던 거리가 달리 보였다. 정신이 자꾸만 흐트러지려하는 걸 다잡으며 지하철 입구를 향해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 한 무리가 떼지어 계단을 올라왔다. 나는 잠시 휘청-하며, 난간을 붙잡고 인파를 피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조금 지쳐보였고-. 그에 비해 나는 지금 너무 상기돼 있다. 집으로 가는 길도 아니다. 생전 처음 가는 동네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이름도 생경한. 장강명.씨를 만나러.

 이름에 이응이 세개나 들어있다. 장강명. 이라니. 그래서 이 이름을 발음할 때에는 왠지 고려가요의 후렴구를 부르는 느낌이다. 장강명. 장강명. 장강명. 세번쯤 발음하고 나면 뒤 이어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를 덧붙여야 할 것만 같은.
  어찌 이름도 저리 선명할까. 또 명쾌할까. 쾌걸 조로같은 이름. 마치 그 자신이 쓰는 글처럼.
 사진 속 그의 얼굴은 꽤 잘 생겼다. 전형적으로 인기있었을 것 같은 복학생 오빠 같은 외모랄까. 좀 생각있어 보이는 얼굴. 마초스럽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깊은 사색으로 무장한, 왠지 말걸기 부끄럽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뭐야? 나한테 지금 관심 있는거야?' 혼자 헛물켜며 가슴이 두근거릴 것만 같은, 있어보이는 남자.
  그런데 글은? 고운 외모와는 달리 거침이 없다. 뭘 베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칼처럼. 그냥 뭉툭하게 싱크대 안에 쳐박혀 있는 여분의 식도가 아니고, 뭐라도 자르고 나서야 칼집에 순순히 들어가는 매일 쓰는 칼 같은 글이다. 때로 짐승의 피가 뚝뚝 흐르는.
  정체가 뭘까. 궁금하다. 아 정말 궁금하다. 흔드리는 지하철 안에서 결혼 7년차의 애딸린 아줌마가, 게다가 심지어 뱃속에 28주 된 아기를 기르고 있는 임신부가, 온 신경을 다해 한 외간남자를 궁금해한다. 그는 작가이고, 나는 독자라는 합법적인 관계하에, 아주 합법적으로, 아주 공공연하게 궁금해한다. 가슴 떨리게, 이마가 뜨겁게, 손에 땀이 나게,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실비실 흘러나오게. 나는 이제 점점 서른 중반의 아줌마도, 애엄마도, 아내도, 주부도 아니어간다. 좋아하는 문학 선생님의 시 낭독회에 찾아가는 수줍은 여고생으로 회춘한다. (마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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