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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Dec 19. 2020

향수는 이제 고질병

양쪽에 고향을 두고 살기

    집을 떠나 살아본 사람이면 대부분 향수병을 앓은 경험이 있을 거다. 나도 종종 남의 향수병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한 번씩 웃는다. 내가 이럴 줄 몰랐던 때문이다.

    나는 집을 떠나서 아주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냈다. 처음 한국에서 타지 생활을 했을 때는 물론이고, 바다를 건너 놓고도 그랬다. 다른 나라에 여행으로 잠시 방문하는 것과 사는 건 확실히 달라서 이리저리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고 이런저런 일에 부딪혀도 훌쩍 떠나지 못했다.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가족 생각을 하긴 했다. 중간중간 몸이 좋지 않거나 만성 우울이 도질 때면 더 그랬다. 하지만 그건 향수를 앓는 것보다는 방문 밖 거실에서 가족이 모여 티브이 보며 웃는 소리를 듣다가 깼는데 낯선 방에 있을 때 얼떨떨해하는 것에 가까웠다. 잠에 겨운 동안은 어리둥절하다 머리가 맑아오면 가볍게 웃고 넘어가는 감각 말이다.


    그래서 해외 살이 7년 차 봄, 극심한 향수에 시달리게 됐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겉으로 봐서 전과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얼마든지 실시간 문자와 영상통화 등으로 가족 및  친구와 연락하고 있었고, 못해도 이 년에 한 번은 한국에 다녀가는 것도 그대로라 이듬해 한국에 갈 계획도 잡혀있었다. 심지어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이 내가 사는 나라를 방문해 얼굴을 본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체 뭐 때문이지? 뭔데 갑자기 입에 대지도 않던 라면이 반가워서 마트에 가면 컵라면을 사고, 아주 작은데 비싸기만 한 한국 음료를 사 마시고, 보통 찾지도 않던 한식을 만들어 먹을까? 한국의 친구들과 늘 하던 대로 헛소리 카톡을 주고받다 보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오고 가족과 영상통화라도 하면 이상한 얼굴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지?


    깨달음은 뜻밖의 순간에 왔다. 해가 좋아서 퇴근 후 남편과 산책을 간 날이었다. 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남편이 문득 생각난 듯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비탈진 자리는 눈만 오면 동네 애들이 전부 플라스틱 썰매를 들고 모이던 곳인데….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내게 한국은 언제나 ‘돌아갈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으로 잠시 밖에 나와있지만, 공부를 마치면 당연히 돌아가 살 곳 말이다. 익숙한 집에 그대로 살지 않더라도, 타지로 가도 버스를 타거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내 터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냥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미국도 정말 내 살 땅이라는 감각이 생경했다. 찬찬히 살펴보면 유학하며 미국에 내린 내 뿌리는 내가 막연히 짐작한 것보다 더 단단했고, 미국인 배우자를 두는 것으로 더 깊어지기까지 한 채였다. 자각은 명쾌해서 나는 조금은 내 향수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자기가 겪은 정체성의 위기를 떠올리며 내게 공감했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자란 미국인이지만, 어릴 적부터 한국과 연이 있었고 어떤 부분은 대단히 한국적이다. 한국어가 유창한 건 물론이고 입맛도 기본 정서도 한국인에 가깝다.


    한국에서 삼 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한국이 몹시 그리워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판단 체계는 지극히 미국적이고, 그 체계를 가능하게 한 국가에 강한 애착을 느끼며 택한 삶의 방식과 잡은 진로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집으로 느껴지고 정서적으로 그립고 애달픈 곳은 한국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단다.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내가 느끼는 바와 너무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정말 감상이 꼭 같았다. 어떤 국제결혼 부부는 상대방의 나라에 살면 서로 자기 고향을 너무 그리워해서 제3 국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는데, 나와 남편은 저마다 자기 고향을 그리는 게 아니고 저도 반반 나도 반반으로 갈려 한국에 있으면 미국을, 미국에 있으면 한국을 함께 그리워한다.


    2020년에 나와 남편은 한국에서 거의 반년을 보냈다. 처음 몇 개월은 본래 예정되어있던 방문이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일할 기회, 그러니까 한국에 있을 핑계를 만들어서 늘인 시간이다. 우리는 한국에 있는 동안 그리워한 음식을 잔뜩 먹고, 가족과 가능한 한 많이 부대꼈다. 코로나로 그밖에 누굴 많이 만나지는 못하였어도 그리움을 견딜 힘을 많이 충전했다.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했다. 둘 다 고향이 양쪽에 다 있으니 어디에 있어도 다른 한쪽을 그리워하는 게 너무 웃기고 이상하다고. 하지만 한 번 뿌리내린 마음의 고향은 그대로 고향이라 앞으로도 우리 삶은 좋든 싫든 이렇게 굴러갈 것이다. 언제까지나 향수를 고질병으로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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