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다른 한 해가 시작되는 순간을 기념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종로에는 제야의 종이 울리고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는 팔천 개가 넘는 불꽃놀이가 하늘로 쏘아지며, 뉴욕 타임스웨어에는 그 유명한 볼 드롭 행사가 치뤄진다. 내가 있는 미국 서부 시골에도 독특한 기념행사가 있다. 거기서는 찬란한 크리스털 공 대신 모두가 사랑하는 작물, 사탕무(Sugar beet)가 새해를 알린다.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다. 근처에서 가장 행사에 진심인 마을 중앙 광장에 키 큰 트레인이 종이와 철사로 만든 커다란 사탕무를 매달고 있다가, 새해가 다가오면 시장인지 이장인지 모를 사람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떨어뜨린다. 어디선가 나타난 밴드가 신나는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고 요란한 불꽃놀이와 함성이 뒤따른다. 정말이지 여기서만 볼 수 있을 광경이다.
3, 2, 1 헤아리는 소리에 맞춰 떨어지는 중인 사탕무
왜 하필 사탕무인가 하면 근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인 때문이다. 사실 지역명에 타지 사람이 떠올리는 대표 작물은 따로 있는데, 내가 사는 주변에서는 그보다 사탕무가 더 흔하다. 큰 농가는 물론이고 거기서 나는 사탕무를 가공해 파는 공장도 여럿으로, 백여 년 전 시작은 금광이었다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탕무야말로 이 지역 경제 존속의 일등공신이다.
솔직히 나는 여기 산 지 일 년이 다 되도록 이런 사실을 몰랐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동네의 저녁 공기가 퀴퀴해질 때가 있기에 남편에게 이유를 물었다가 사탕무 공장 냄새라는 답을 듣고도 동네에서 사탕무가 지니는 중요성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번에 신년행사에서 떨어뜨리는 게 다름 아닌 사탕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살짝 알게 된 수준이다.
사탕무가 뭔지도 잘 몰라서 이름만 듣고 ‘뭐 많이 단가? 깍두기 하면 맛있겠네’하는 생각을 했고 아직까지도 조금은 미련이 남아있다. 현지인은 그걸로 뭘 해 먹는지 궁금해서 시엄마한테 사탕무로 만드는 음식은 뭐가 있는지 묻기도 했는데, 시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이 그걸 먹을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뭐에 쓰이는 식물인지 내가 조금도 몰랐단 소리다.
사탕무는 사탕수수와 더불어 설탕의 원료가 되는 두해살이풀이다.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는 사탕수수와 달리 추위에 강해 러시아와 미 북서부를 비롯한 온대, 냉대 기후에서 많이 키운다. 키우기 까다롭지 않고 설탕을 얻는 과정도 당분이 풍부한 뿌리를 얇게 저며 얻은 즙을 정제, 건조하는 것으로 비교적 간단해 현존하는 천연설탕 중 가장 저렴하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천연설탕의 최대 60%, 전 세계적으로도 55% 정도가 사탕무 추출 설탕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음료에 천연설탕이 들어갔다고 하면 대체로 사탕무 설탕이다. 가령 남편의 중학교 친구 집이 큰 사탕무 농가 겸 공장인데 마운틴 듀 만드는 회사와 계약해서 그 음료에 들어간 천연설탕은 거의 다 그 집 설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나니 궁금한 게 몇 가지 생겨 온라인으로 찾아봤다. 첫째로 알아본 건 한국의 사탕무 농작 여부였다. 구글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로 키워서 여타 채소처럼 식재료로 파는 경우는 있지만 설탕을 목적으로 대량재배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직접 사탕무를 키우고 설탕을 뽑는 것보다 수입하는 편이 더 저렴한 까닭이다.
두 번째로 찾아본 건 사탕무 설탕과 사탕수수 설탕의 차이였다. 둘은 영양 성분 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맛과 성질이 살짝 달라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는 경우에는 세심하게 구분해 사용한다고 한다. 궁금한 건 안 참는 주의라 두 개를 가져다 맛을 비교해봤는데, 내 입에는 미묘하게 다른 듯 만 듯 큰 차이 없이 단맛 나는 설탕이었다.
어쨌든 다른 모든 곳의 유명한 신년맞이 행사가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동안에도 이 동네의 새해맞이는 예년과 다름없이 진행됐다. 인구가 적어 이웃 동네 주민까지 죄 구경을 와도 작은 중앙광장이 다 차기 어려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신경을 안 써서 가능한지 생각해보면 아마 후자다. 마스크를 생활화한 한국인인 나는 현실 부정을 하고 싶지만 모인 인파 중 마스크 쓴 사람이 안 쓴 사람보다 적었다.
나중에 카톡으로 상황설명했더니 온 엄마 답장
커다란 사탕무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밖에 나서기는 했으나 사람 득실거리는 데 끼고 싶지 않았던 나와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한 집 사는 시가 식구가 전부 마스크 없이 광장으로 나섰으니 우리만 거리를 유지했다고 뭐가 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차창 밖에서 맨얼굴을 내놓고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기는 애들을 보는 기분이 미묘했다.
작년 한 해가 너무 기대치 않은 사건사고의 연속이던 탓인지, 아니면 눈앞의 사탕무와 다른 세상 같은 광경이 낯설어 그랬는지 2021년 맞이는 신나거나 들뜨기보다 다소 얼떨떨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 기대하기보다 또 무슨 사달이 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할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모든 게 조금은 더 괜찮아지기를, 개개인의 삶은 이럭저럭 평탄할 수 있길 소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