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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리 Feb 02. 2023

2005년 도쿄에서, 연애편지

가장 좋아하는 편지


오늘은 토요일이야.

내게 있어서 토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야.

 

토요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니지만

이날은 그냥 느낌이 좋아.

 

토요일에는 일이 일찍 끝나.

일찍이라고 해봤자 평일보다 1시간 빨리 마치는 정도지만

1시간이면 예리를 만나러 가기에 충분한 시간인걸.

 

토요일에는 여유 있게 책도 읽고

밤늦게까지 TV를 보기도 해.

그리고 매주는 아니지만 예리를 만날 수도 있어.

그래서 나에게 토요일은 행복한 날이야.

오늘처럼 비가 내려도 말이야.

 

일을 마치고 진보쵸 헌 책방으로 갔어.

 

이곳 책방은 정말 푸근하고 따뜻함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책에서 나는 은은한 향,

책장 넘기는 소리,

자명종 초침소리마저도 크게 느껴지게 하는

서점 특유의 고요함,

그리고 항상 흐르는 조용한 클래식 등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야.

 

딱히 살 책을 정해놓고 온 게 아니었기에

서가대에 꽂힌 책들을

따뜻한 봄햇살을 쐬고 있는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바라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구경하다가

스타벅스에 들려 쉬는 중이야.

 

 따뜻한 카라멜마키아토 한 잔,

비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네온사인,

파스텔톤 조명 그리고 옆자리에서 떠드는 아저씨들......

 

이렇게 가만히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보고 있으면

투명하리만큼 기분이 차분해지는 걸 느껴...

 

그리고 그 투명함이 깊어질수록

지금 내 옆에 없는 예리 생각이 더욱 뚜렷해져 가.

 

예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2005. 2. 19

비 오는 토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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