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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Jan 30. 2017

[긴 단락 일곱] 회사와도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을까

퇴사를 잘 하는 방법

연애하는 동안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했었는지와 상관없이, 이별하는 과정이 최악이었다면 그 연애는 내 인생에서 최악의 기억으로 남는다.

만나지 말걸- 괜히 그딴 XX를 만나서-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등등... 내가 되뇌었던 후회의 말들만 해도 얼마던가...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역시 추억이고, 경험이며, -아름답든 쓰라리든- 교훈을 남긴다.


회사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좋고 마음에 드는데 회사를 -자의로-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질리고, 지치고, 힘들고, 지긋지긋해져서 떠난다. 그때쯤이면 내가 얼마나 힘들게 구직을 하고 취업을 했었는지는 생각도 안 난다. 오히려 뭐하러 내가 그 난리를 쳐서 여길 들어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드라마에서처럼, 상사 얼굴에 사직서를 던지고 시크하게 문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인터넷에서 봤던 것처럼 전사 메일로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남겨놓고 때려쳐버릴까 상상도 하고...


그러나 현대인에게 직장이란
얼마나 큰 의미인가


또 인생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에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달도 아니고- 적어도 일이년, 길게는 몇년을 보냈을 이 회사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부정하며 떠나버리는 것은 내 인생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거지같은 회사생활도 무언가 배움을 남기고, 남은 생에 한번쯤은 그 배움의 덕을 보리라. 장담한다. 정말로 인생은 예측불가니까.


결국 내 지난 삶을 온전히 긍정하기 위해,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엮일지도 모를 1%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퇴사하는 뒷모습은 아름다워야한다.


나는 이제 겨우 세번 퇴사해봤을 뿐이지만, 욕 먹지 않고 아름답게 퇴사한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하고싶다. 아니, 사실은 노하우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퇴사할 때 잊지 말아야할 것들'이다. 당연하지만 사직서를 쓸때면 분하고 억울해 잊어버리곤 하는 그 '기본'들.

인맥, 관계, 뭐 그런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잘 퇴사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지난 커리어와 아름답게 이별해야 그동안의 내 인생 역시 의미있게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되도록 아름답게 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회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만 두는 것으로 하면 조금 쉽다.

Bad! 월급이 너무 적어서 못 다니겠어요
Better! 사정이 생겨 조금 더 급여가 많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요.

대부분 '때려치우는' 상황까지 갔다면 회사를 원망하고 있을 경우가 많다. 박봉이거나, 일이 과하게 힘들거나, 상사가 부당하게 대우한다거나... 그래서 내가 본 많은 퇴사자들은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터뜨리며 사직서를 제출하곤 했다. 업계에 비해 월급 너무 적어요- 일이 너무 힘들어요 등등...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문제였더라도, 나의 마지막 모습은 '월급 안 올려준다고 나갔다', '일 힘들다고 못 버티고 나갔다'가 되어 버리는게 이 사회더라... ... 사실 잘못된 게 없는 퇴사 원인이지만, 슬프게도 이 말들은 나를 한 순간에 근성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게 만든다...


퇴사의 원인은 되도록 '회사'가 아니라 '나'를 주체로 하는 것이 낫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지금의 업무강도를 버틸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 퇴직하셔서' 조금 더 급여가 많은 직장이 필요해요, 등. 한끗 차이지만 회사를 납득시키기도 빠르고 나의 퇴사를 좀 더 당위적으로 만들어주는 묘한 힘이 배가된다.

물론, '내 건강상태로 버티기엔 업무량이 너무 과합니다 '부모님 모시고 살기엔 급여가 너무 적습니다.' 라고 직구를 던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차피 바뀌지 않을 -그러니까 내가 버티다 못해 그만두겠지 않겠는가- 회사에는 굳이 돌을 던져봤자다. 조직이 변하는 것은 개인이 바뀌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걸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 현명한 회사라면 내가 '나 때문'이라고 말해도 그 맥락을 찰떡같이 이해할 것이다.


사실 100% 내 마음에 쏙 드는 회사란 이 세상에 있을리가 만무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내 퇴사의 원인은 '회사와 나 사이'에 있지 온전히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기도 하니까. 상대의 잘못만 힐난하지 말고 현명하게 헤어지자는 이야기.



굳이 고마웠던 일을 떠올려보자.

Bad! 진짜 이노무 회사 내가 왜... !@#$$%$^
Better! 그래도 이 취업난에 날 뽑아준건 참 고마웠지...

앞 단락도 말했지만, 내가 본 수많은 퇴사들은 이미 퇴사자들이 참고 참고 참다가 극에 달했을 때 이루어졌기에, 퇴사자들의 마음에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불만과 짜증이 가득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렇게 된 게 회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적어도 한번은 있었을, 회사에 고마웠던 일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나는 갓 졸업한 날 뽑아준 이 회사가 그땐 참 고마웠는데... 생각지도 못했을 때 받았던 보너스 참 좋았지... 등등 뭐라도.

힘든 회사생활에 치이고 치이다보면 막판에 남은건 악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회사에서 적어도 세번은 즐거웠고, 적어도 한번 이상은 이 회사에 고마웠지 않을까! 이것마저 아니라면 나의 지난 회사생활은 너무도 서글프다. 그 일들을 굳이 굳이 떠올리면, 마지막 그날까지 웃으며 출근할 기운이 생길 것이가.

그리고 악에 받쳐 있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던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사의 인사는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 작게든 크게든 꼭.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나의 회사 생활은 꽤나 의미 있는 경험이고 삶이었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마지막 날까지 내일도 나올 사람처럼.

Bad! 때려치는 마당에 무슨 일을 해, 그냥 대충 떼우다 안 나올거야...
Better! 마지막 날까지, 담당자 여기 있습니다.

퇴사를 1주일 남긴 사람, 퇴사를 한달 남긴 사람... 여하튼 사직서가 수리되고 난 뒤의 '퇴사 예정자'들은 회사에서 참 애매한 위치다. 새로운 일을 맡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건 한명으로 칠 수도 없고 안 칠 수도 없고- 뭐 그런 위치랄까?...


뭐 굳이 나갈 마당에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마지막 날, 퇴근시간 직전까지 부디 한명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 말자!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간사하여, 내가 지난 몇년간 얼마나 일을 잘 했든 상관없이 마지막 한두달간의 인상이 내 이미지를 좌우한다. 이 일을 잘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날의 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괜찮은 직원'으로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온갖 데이터베이스 다 들고 튀어서 엿먹여보고도 싶고, 제대로 인수인계 안 해줘서 일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꼴도 한번 보고 싶겠지만, 내 이런 행동들이 회사에 줄 수 있는 데미지는 생각보다 별로 크지 않다. 크게 한방 먹일 수 있는 것 아니라면 차라리 조용히.. 아름답게 떠나자! 아자!


물론, 사람의 일이란 그야말로 한치앞도 예측할 수 없어서,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이 사람들 중에 미래의 상사, 혹은 내게 다른 일을 열어줄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야하는 것도 조금 있다. :)




+ 덧붙여,

헤어질때가 된 커플은 지지부진 끄는것보단 오히려 헤어졌을때 아름답게 남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끝이 나야, 새로운 것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


분명히 이 회사와 나의 인연은 끝난 것 같은데,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두마디 덧붙인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 아주 잘.

특히 소규모 회사에 다닐 수록, '나 그만두면 이 일들 다 누가 해~' 란 마음에 꾸역꾸역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직원이 한명이든 두명이든, 회.사.란 곳은 존재 그 자체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나 하나 그만둔다고 진짜 안 돌아가는 회사는 어떻게 망해도 망한다. 결국, 나 없어도 회사는 잠시 불편할 뿐, 다시 안정적으로 굴러갈거니까 부디 걱정 말고 그만둬도 된다... 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회사 걱정 해준다고, 내가 어려울 때 회사가 내 걱정 해 주진 않는다. 절.대.로.


이 세상엔 의외로 할 일이 많다. 굶어죽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여기 나가면 뭐 먹고 살아~ 라는 걱정은 그만. 이 세상엔 '만족스러운' 일은 많지 않지만, '할 일'은 무지하게 많다. 하기 싫은 일, 나가기 싫은 회사 꾸역꾸역 버텨냈던 내 근성이라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터이니, 굶어 죽을까봐 못 그만두겠다는 핑계는 그만! (한 가정의 가장 제외...)

정말 아닌 것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앞으로의 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다른 일을 찾는 게 현명하다.



퇴사경험이 뭐 그다지도 자랑이라고.... 나는 이따위 글을 쓰고 앉았을까... 싶기도 하다.


퇴사를 고민하거나 결정하는 것- 그 자체로도 힘든 일인데... 잘 그만둬라~ 아닌 것 같으면 얼른 그만둬라~ 별 별 잔소리를 글로 다 적어놓았지만, 사실은 이런 글을 읽지 않아도 될만큼 지금의 회사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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