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집 앞에서 냐옹 냥냥 거리는 소리가 난다. 자주 오는 동네 고양이 녀석들이다. 두 마리인데, 내가 지어준 이름은 흰밥과 누룽지. 흰밥이는 이 동네에 이사 온 첫날부터 멀찌기서 눈도장을 찍던 녀석. 다섯 살은 넘어 보이는 하얀 고양이다. 누룽지는 1년이 안된 아직 어린 삼색 고양이인데, 길 건너 중국집에 사는 고양이 가족의 일원이다.
흰밥이는 딱 봐도 품종묘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흰색털과 몸매를 가졌다. 초록빛 눈동자도 묘한 분위기를 내고, 느긋한 움직임이나 걸음새가 멋져서 가끔 산책하러 나오는 어느 집의 귀염둥이인가 보다 했다. 지내다 보니 길 건너 떡집에 자주 들락거려서 백설기 같은 떡집 고양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봄의 어느 날, 오랜만에 본 흰밥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디서 심하게 싸운 듯 털도 듬성듬성 빠지고 목덜미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다리도 절뚝거리며 다녔다.
왜 집에서 치료를 안 해주지..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상태였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흰밥이의 몰랐던 과거사를 들려주었다. 지난해에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떤 차가 와서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그냥 두고 갔는데, 이후로 이 마을에 살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이 딱하게 생각해서 이 집 저 집에서 사료나 물을 내놓고 오며 가며 먹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동네 고양이패들과 자주 신경전을 벌이더니 한바탕 육박전을 했는지 저 꼴로 다니는 것 같다고 하셨다. 흰밥이는 창촌 전체가 제집이 된 자유 고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날, 나도 사료그릇 하나를 내놓았다. 흰밥이가 몇 번 밥 먹으러 왔고 얼마 안 가 조심스럽게 빨간약도 발라주고 물티슈로 얼굴도 닦아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누룽지는 흰밥이가 우리 집 사료를 먹고 한 주정도 지났을 때 같이 나타났다. 초면부터 엄청 안기고 애처롭게 냐옹소리를 내는 성가신 녀석이었다. 동네 맛집인 중국집에서 살다 보니 구김 없이 순박한 녀석이다. 흰밥이는 사료그릇을 비우면 적당히 집 앞을 배회하다 제 갈길을 가는데, 이 놈 누룽지는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집 앞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 지낸다. 중국집보다는 기획자의 집인가. 나의 출입을 체크하는 듯 나가면 나간다고 들어오면 들어온다고 냐옹거린다. 그렇게 사료그릇이 두 개가 되었다.
서울 일정이 꽤 길어서 2주 정도 집을 비우고 왔던 날, 어김없이 누룽지가 대문 앞에서 반겨주었다. 에옹… 앵앵… 앵앵.. 하는 소리가
‘이번에는 너무 길었어. 많이 기다렸다구.’
하는 듯했다.
"흰밥이는?"
하고 물었더니, 어디선가 '야옹-' 하는 흰밥이 소리가 들렸다. 어디 있나 하고 둘러봐도 안 보여서 이리저리 살피니 한번 더 운다. 소리가 위에서 들리는 거였다.
"어머나, 너 거기 있었니?"
흰밥이가 옥상 가장자리에 턱 걸터앉아서 내려다보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어느덧 기획자의 집 이야기에 스며들었다. 대문과 옥상을 차지했고, 가끔 뒷마당을 넘보기도 한다. 내 아침과 저녁의 고요를 깨고 냥냥 거린다. 무명(無名)이던 것들이 무엇으로 불리어지며 관계의 얼개가 생긴다. 그 안에 온기가 돌면 이야기의 씨앗이 자라고, 무명(無明)의 한계가 껍질을 벗고 명(明)으로 나아간다. 몇몇 유튜브 영상 속에서 봤던 길냥이 구조 히어로들처럼 살뜰하게 내실을 내어주지는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런 작은 상상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너네들에게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