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구례로 넘어왔다.
주암면 창촌리 <기획자의 집>에서 구례로 오는 길은 지류인 대황강변을 지나 본류인 섬진강 강변도로를 타고 오게 된다. 굽이굽이 강변도로를 시속 50-60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좌로 우로 기우뚱거리며 유연해진다. 여태껏 지그재그를 그리며 사는 삶이 괜찮다고 그저 즐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구례에 가까워지면 섬진강 넓은 물을 보게 되는데, 툭 트인 강 풍경에 찬란한 볕이 하루 중 언제든 봐도 아름답다. 아니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지난해 이 맘 때엔 순천의 촌 중에 촌인, 창촌리에서 한껏 녹아보리라 했다. 가을 초입까지 공사를 끝내고 이사를 들어와 겨울까지는 집을 최적화시키느라 애썼고. 봄에는 우연히 진주, 구례, 순천의 일들이 연결되어 적은 수입이지만 로컬 프로젝트들을 이어가고 있다. 여름 들어서는 <기획자의 집> 좌표를 중심으로 인근의 가볼 만한 명소들을 종종 찾아다니며 남도를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시금 이리저리 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한 곳에서 뭉근히 똬리를 트는 일은 내 평생에 없을 듯하다.
구례 프로젝트는 연말까지 이어지는 컨설팅 일이다.
좋은 콘텐츠와 성장 가능성을 가진 지역 업체들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치유농업’의 방향으로 육성시키는 과업이다. 다행히 중앙정부로부터 거리상 심리상 먼 곳이라, 지원사업에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고집 센 대표님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결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딱 좋은 거리감으로, 내 할 일을 하는 데에 불편치 않다.
구례읍은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들이 잘 집적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시내감과 시골감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인근에 다니던 사찰이 있던 터라 자주 와서 낯설지 않지만, 로컬 컨설턴트 입장으로 다시 만나는 구례는 더 많은 매력과 힘이 느껴지는 지역이다. 읍에서 5분 거리만 가도 지리산 자락 꽤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컨설팅도 그런 산골마을인 산동마을에서 있었다. 도시에서 살던 부부가 귀농하며 직접 일궈온 팜스테이 비즈니스를 하는 곳인데, 아내 분께서 약선요리 전문가라 치유음식으로 좋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농장에 들어서면 그동안 풀 베고 과수원과 텃밭 가꾸고 스테이 손님을 치르며 고군분투해 오셨음이 느껴진다. 다행히 서비스에 대한 진심은 지침 없이 잘해오고 계셔서 예약이 끊임없이 차고 잘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한옥으로 된 숙소의 앉은자리가 참 좋아서 인상적이었는데, 건물을 지을 때 스님이 오셔서 직접 위치를 잡아주셨다 한다. 섬진강과 둘러싼 지리산 줄기의 풍경이 온 기운을 모아주는 듯하다. 방문을 열면 은은한 편백나무향이 나는 정갈한 방에 뽀얀 이부자리가 인상적이다. 매번 이부자리를 다림질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다른 정성인들 어떨까.
잘해오신 일들을 이제는 보기 좋게 잘 정리하는 브랜딩이 필요한 단계다.
무엇보다 방문객들에게 배포할 리플릿 홍보물이 급했는데, 이번 과정 중에 제작 대행을 해드렸다. 예산이 많지 않아서 디자인 AI프로그램을 이용해 진행했다. 그 사이 AI 디자인의 정교함과 퀄리티가 정말 좋아져서 손발 잘 맞는 외주 디자이너를 만난 듯했다. 이건 좀 놀라운 정도여서, <기획자의 집>도 향후 크리에이티브 작업에 대한 예산과 가능 범주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오늘 리플릿 더미제작본으로 미팅을 했는데 최종 컨펌이 떨어지고 제작발주를 넣기로 했다. 제주에서의 경험도 그랬지만, 로컬이 가진 한계 상황이 여러모로 사업의 능력치를 키워주는 면이 있다고 본다.
기획자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방식은 ‘안목 키우기’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좋은 것, 내 눈에 그런 것과 일반 대중이나 특정 사람들 눈에 그런 것들까지 지속적으로 보고 배우고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기획이 늘 마트 신선코너의 샐러드 야채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나의 안목이 탁월하거나 일반에 소구 되는 색깔을 가지게 되면, 더없이 좋다고 본다. 고밀도의 고사양의 고농축의 일들을 통해 다시 성장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오전 일찍 컨설팅을 마치고, 오후 일정 전에 2시간 넘는 귀한 짬이 생겨 몇 자 적어 올린다. 이런 것도 좀 더 부지런하게 해야 하는데 참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나는 언젠가 글쓰기가 좀 더 편해질까.
*주 : 아, 썸네일 이미지와 아래 이미지는 지금 진행 중인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유망예술페스타' 프로젝트 컷.
-기획, 브랜딩
-페스타 현장 구성
-대외 홍보
-2024.7~2024.12월까지